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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물러날 장관 일 하겠나

1년 내내 개각설로 공직사회 무력증 심각

“장관님 방송 출연이 잦아지면 개각설이 있다는 얘긴데, 요즘은 항상 개각설이 있으니 장관님 방송 출연도 거의 일상사가 됐지.” 익명을 요구한 한 중앙부처 고위간부의 말이다.

개각설이 나돌면 장관들은 대통령 눈에 한번이라도 더 들기 위해 방송 출연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개각설이 워낙 빈번하다 보니 장관의 방송 출연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언제쯤 개각한다고 시기까지 예고하는 개각설은 이 정부에서 처음 봤다. 일단 한번 개각설이 돌면 공무원들은 일손 놓기 일쑤인데, 요즘은 아예 일손을 잡지도 않는 지경이다.”

역대 정부에서 개각 준비작업은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극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그러다 ‘깜짝 개각’의 형태로 단행된 사례가 많다.

하지만 현 정부는 ‘언제쯤 개각이 있을 것’이란 예측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장관들은 ‘물러날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연임을 위한 로비에만 분주하고, 관료들은 무사안일과 눈치보기, 소위 복지안동(伏地眼動)이 심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너무도 빈번한 개각설이 공직사회 무기력증 만연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시기가 예고된 개각설’로 관가 뒤숭숭**

‘시기가 예고된 개각설.’ 이것은 지난해 12월 8일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출국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출국하면서 “귀국후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예고했고, 따라서 연말 개각설은 정가에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연말 개각은 이뤄지지 않았다. DJP + 민국당의 정책연합 형태로 3월 26일에야 대폭개각이 단행됐다.

두 번째는 안동수 법무장관 파동이 터진 직후인 5월말이다. 안 전 장관이 ‘충성메모’ 파문으로 5월 23일 전격 경질된 직후 민주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인사시스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많았고, 5월 31일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참석한 워크숍 등 6월초까지 당정쇄신 요구가 고조되었다.

그 결과 개각설은 또 한번 정가와 관가에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급기야 7월 13일에는 민주당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개각 계획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8.15 광복절 이후 개각이 있을 것이란 설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광복절 이후에도 개각은 없었다.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 가결로 DJP 공조가 붕괴된 직후인 9월 7일 개각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지난 10.25 재보선 직후부터 민주당에 ‘쇄신바람’이 몰아닥치면서다. 이때부터 연말개각설은 또 기정사실처럼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다 지난 13일 이상주 청와대 비서실장이 “개각에 대해선 아무 계획이 없다”고 공식 부인하면서 1월 총리를 포함한 대폭개각설로 바뀐 상태다.

이처럼 개각설, 그것도 ‘시기까지 예고된 개각설’이 너무 빈번하다. 그에 따라 관가에선 “얼마 못 갈 장관에게 잘 보일 것 있느냐”는 식의 무사안일주의, “다음 장관은 누구냐”는 눈치보기가 만연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의 고위간부가 되면 개각설에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장급 이상의 인사는 장차관이 직접 결정한다. 누가 장관이 되느냐에 따라 인사길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중앙부처 업무의 태반이 기획업무임을 감안할 때, 장관의 의지와 선호도에 따라 업무의 성패가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개각설이 횡행할수록, 특히 '앞으로 한달 후면 개각이다'라는 식의 시기예고까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는 공직자들이 “일손을 잡지도 않는다”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다.

***DJP공조 등 정치풍향에 개각 휘둘려**

왜 이처럼 개각설, ‘시기까지 예고된 개각설’이 빈번할까. 정치분석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그 이유는 대단히 복합적이다.

우선 태생적 소수여당으로서 대통령의 인사권이 독점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DJP 공조와 공조 파기, 거기다 민국당과의 정책연합 등 정치적 풍향에 따라 개각의 방향과 내용이 좌지우지되다 보니 적절한 시기에 개각을 단행할 힘이 대통령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상황돌파력’보다는 ‘신중한 관리’쪽을 선호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스타일에서 원인을 찾는 목소리도 크다.

또한 민주당내 소장개혁파들의 ‘쇄신요구’가 점점 그 수위를 높여가면서 과거엔 거의 성역처럼 여겨졌던 대통령의 인사권까지 개혁요구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도 중요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게다가 현 정부의 인재풀이 원래 좁다는 지적, 또 정권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새 인물을 등용하려 해도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확인되지 않는 설도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복합적 원인으로 현 정부, 특히 금년 1년 개각설은 끊이지 않았고, 관가의 분위기도 안정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내년 1월중 개각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1월 개각의 향배, DJ의 정치구상 드러날 것**

내년 1월 개각이 있다면 그것은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둔 선거관리형 내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정치색을 배제하고 관료 출신의 승진 발탁이 많을 것이란 전망이 그럴 듯하게 유포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예산안 처리 및 몇몇 쟁점법안 처리과정에서 민주당과 자민련 간에 미묘한 협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DJP 공조 복원의 형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지방선거에서 특정 지역의 연합공천이라도 가능하게 하려면 개각 과정에서 자민련의 눈치를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관계설정은 전혀 다른 측면에서 이번 개각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잇따른 게이트가 터져나오면서 김 대통령과 이 총재의 가족문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 총재실 사이에 “가족문제는 거론치 말자”는 합의가 이뤄지면서 여야간 상호 공격의 수위조절에 들어간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 총재직까지 사퇴한 김 대통령이 남은 임기 국정을 원만히 마무리하고, 퇴임후까지를 고려한다면 이번 개각 만큼은 한나라당이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선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이한동 총리가 물러나는 ‘총리 포함 대폭 개각’이 될 경우 국회동의 절차까지를 고려한다면 한나라당의 동의는 더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각이 있다면 정말 내년 1월중 있을 것인지, 총리를 포함하는 대폭 개각이 될 것인지, 정치적 색깔이 완전 배제된 중립내각이 될 것인지 여부 하나하나가 중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통해 김 대통령의 남은 임기 국정운영과 정치적 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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