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현 게이트가 국가 사정(司正)권력 전체를 마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 게다가 경찰청 조사과(사직동팀)와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진승현 게이트에 얽혀들고 있고, 이들 사이에 음해설까지 등장했다.
한 사건에 핵심 사정기관들 모두가 총동원되었지만,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상호공조는 커녕 오히려 도처에서 불협화음을 노정시키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지만, 이번엔 ‘해도 너무 한다’는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현재 관심의 초점은 신광옥 법무차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시 진씨로부터 1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았느냐 여부다. 진씨는 최택곤씨를 통해 줬다고 하고, 최씨는 진씨로부터 그런 돈 받은 적 없다고 하고, 신 차관 역시 결코 받은 적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의혹은 최씨와 진씨 그리고 신 차관에 대한 검찰조사를 통해 조만간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1억원 수뢰 여부 뿐 아니라 신 차관이 민정수석 재직시 진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는지, 검찰에 진씨사건 조사에 관한 압력행사를 했는지 역시 반드시 규명해야 할 과제다.
또한 신 차관외에 10여명의 이른바 '진승현 리스트'가 13일 검찰에 확보됨에 따라 진씨의 정관계 로비 실체에 대한 수사는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향후 사태의 진전에 따라 이 문제는 정권 핵심부를 직접 강타할만한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진씨가 거짓말을 했거나, 최씨의 사기행각 혹은 배달사고일 경우라면 문제가 크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 차관이 정말 1억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민정수석 재직시 진씨를 직접 만나고 검찰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점만이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파장은 가히 예측불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란 자리는 국가 사정 권력의 중추이며, 정권이 공직사회 전반의 기강을 통제하는 핵심장치다. 그간 권력형 비리사건이 많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이 직접 연루된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추가 확보된 '진승현 리스트'에 누가,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는지에 따라 정권 전체를 뒤흔들 부패 스캔들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진행추이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가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국가 중추 사정기관 한데 얽힌 총체적 난맥상 노정**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점만으로도 현 정부 사정 권력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승현 게이트 한 건에 국정원, 청와대 민정수석 직속인 경찰청 조사과(사직동팀), 검찰 등 사정 핵심기관이 모두 얽혀들고 있는 것이다.
먼저 국정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연루자는 김은성 전 제2차장과 정성홍 전 경제과장, 그리고 전직 간부인 김재환 전 MCI코리아 회장이다. 검찰은 현재 진씨의 돈이 국정원 내에 퍼진 것을 확인됐고, 정치권에 전달된 혐의도 추적중이다. 김은성 제2차장이 검찰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도 확인됐고, 그가 이른바 '진승현리스트'를 작성, 보관해 왔다는 점도 새롭게 밝혀졌다.
다음은 청와대 민정수석 직속인 경찰청 조사과(사직동팀). 검찰이 진씨를 조사하기 이전인 작년 1월 사직동팀이 진씨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는 사실이 이번에 새롭게 밝혀졌다. ‘진씨가 대통령 친인척과 여권 실세들을 팔고 다닌다’는 첩보에 따라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 경위를 조사중이다.
검찰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작년에 단순 경제사범으로 구속 처리한 진승현사건을 재조사하게 된 과정부터가 문제다. 또한 이미 작년 조사 당시 이번에 1억원 전달자로 지목된 최택곤씨, 그리고 신 차관이 연루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도 새롭게 드러났다.
최씨는 지난 9일 호주로 출국하려다 인천공항에서 출국금지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잠적했으며, 검찰은 최씨 신병확보에 실패했다. 검찰이 최씨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내사 중이었다면 언제부터 어떤 혐의로 내사 중이었는지 정확히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신병확보에는 실패한 것이다.
이처럼 진승현 게이트 하나의 사건에 국정원, 검찰, 경찰청 사직동팀이 모두 얽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사정권력 전반에 대한 재점검 필요론 대두**
이들 사이에 공조가 이루어진 흔적은 없다. 오히려 알력의 흔적만 드러난다.
국정원 간부가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확인됐다.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는지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다. 사직동팀의 조사내용이 검찰 수사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또 최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은성 국정원 제2차장이 검찰수사에 압력을 느끼자 검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거짓정보를 흘려 나를 음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 차관 역시 어디라고 분명히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에 ‘음해설’을 말했다.
국정원, 검찰, 경찰청 사직동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한 사건에 얽혀들면서 진실규명을 위한 공조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정반대로 서로가 음해설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 정부 사정권력 전반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신 차관의 수뢰 여부나 진씨와의 만남 여부등 진실규명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최우선의 과제다. 하지만 그 차원을 뛰어 넘어 하나의 비리사건에 국가 중추 사정기관들이 한꺼번에 얽혀들면서 난맥상을 보이게 된 구조적 문제점을 찾아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정권 핵심과의 연루설이 떠돌았고, 사정기관이 그 매개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나라가 온통 벤쳐 열풍에 빠져있던 시기, 정치권과 권력기관이 모두 나서 음성자금 만들기가 횡행했고, 그 과정에서 잇따라 게이트가 터지게 되었다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그간의 수사결과는 의혹만 남기고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다.
급기야 이용호 게이트는 특검제가 실시되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진승현 게이트도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이후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며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검찰의 재수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되풀이될 경우 또 다시 특검제가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국가 사정권력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일대 쇄신이 없는 한 이러한 사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일단 검찰의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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