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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YS와 손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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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 YS와 손잡나

"만나자" 제의설 계속 흘러나와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정국은 도리어 안개 속이다. “정치에서 손 뗀 것”,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계개편의 책략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는 두 갈래 해석의 정황 역시 아리송한 채다.

우선 최근 논란거리가 돼 있는 건 김대중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면담을 제의한 적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 답은 제의했다는 쪽이다.

11월 중순 김상현씨는 상도동을 방문, 화해를 위한 면담을 갖도록 청했다. “청와대로 오시지는 않을 것이고 신라나 롯데호텔에서 만났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취임 초부터 상호 협조하는 좋은 관계라야 했는데 그리 안된 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DJ의 뜻도 전했다. 그러면서 김상현씨는 정치적 혼란을 정돈하기 위해 두 분의 화해가 필요하므로 지난날의 감정을 묻고 나라의 앞날을 위해 화해할 것을 간곡히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YS는 한마디로 거부했다.
“나는 그와 지난번 만났을 때 다시는 우리 둘이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놓고 말했었다. 거기 아무 변동이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YS는 DJ의 정치보복을 얘기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 한 후 내게 대해 한 일이 검찰로 하여금 나를 조사하게 한 일이었다. 그뿐인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샅샅이 조사했다. 소득도 성과도 없으니까 강경식, 김인호 이 두 사람을 죄도 없는데 죄를 씌워 잡아들이지 않았나. 그 두 사람에 대한 구속은 두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나를 깎아 내리고 상처주기 위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맨 먼저 한 일이 정치보복이었다”라고 YS는 말했다.

거부가 너무 완강하고 단호했기 때문에 김상현씨는 어떤 말도 더 못했다 한다.

***김상현 전 의원, 메신저인가 개인 소신인가**

화해와 전진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김상현 전 의원. 86년 DJ를 대리한 민추협 공동의장 대리를 맡았지만, 87년 대통령 선거 때 DJ의 평민당에 따라가지 않고 YS캠프에 남았던 경력이 있다. 그래서 그가 메신저로 선택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상현씨는 상도동에 가서 자기 생각을 전했을 뿐, DJ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DJ-YS 면담을 통한 두 분의 화해는 나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최근엔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일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신라나 롯데호텔이라는 구체적 장소까지 거론된 것을 보면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부인이 왠지 궁색해 보인다.

어쨌든 ‘두 분의 화해는 나의 지론’이라는 김상현씨의 말은 계속된다.

“지역감정이 심화된 데는 두 분의 책임이 크다. 두 분의 과오는 87년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못한 것이다. 그것이 지역감정을 고착시키고 심화시키는 사단이 되었다. 두 분은 더 늦기 전에 만나 87년의 과오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일에 손잡아야 한다. 그건 두 분의 역사적 책임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김상현씨는 지난 97년말-98년초 YS가 대통령이고 DJ가 당선자이던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가 화해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걸 깬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다”라는 상도동 측의 지적에 동감을 표시하면서 김상현씨는 “그 때 청문회에 나오라고 한 게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 내가 대통령께 청문회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권고했어. 아마 그 때 두 차례나 뵈었을 거야. 대통령께서 ‘나오시지 않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더라. 내가 그랬지. ‘나오기나 합니까. 절대 나올 분이 아니지요. 청문회는 부르는 것으로 끝납니다. 멀쩡한 사람 잡는 데가 청문회 아닙니까. 청문회 그만두게 하시지요’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내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바로 거기서부터 두 분 사이가 잘못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의 일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1992년 화해 시도, DJ 출국으로 어긋나**

줄곳 경쟁관계이긴 했지만 민주화투쟁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이 이제는 YS의 표현에 의하자면 ‘마주치는 일은 있어도 만남(대화)은 절대로 없을 사이’로 관계가 나빠진 것은 왜일까.

과거로 돌아가 보자.

YS가 승리, 대통령에 당선한 92년, DJ는 당선자 YS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정계은퇴 의사를 전했다. YS는 “협조를 부탁한다. 우리 한번 만나자.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DJ는 얼마 후 런던으로 떠나면서 출국인사 전화를 했을 뿐이었다.

YS는 이 때의 일을 후일 이렇게 말했다.

“그가 런던으로 떠날 때 이게 사실은 망명이구나 하는 걸 알았지. 그는 내가 다시는 더 도전 못하고 재기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정치보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꿈에도 안 했는데. 그는 나를 못 믿어서, 내가 두려워서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그래도 불안해 출국한 것이야. 정계은퇴선언이 정치적 피난이라는 걸 나는 알았지만 서둘러 출국할 정도로 나를 못 믿는구나 했지.”

런던 은둔 얼마 후부터 DJ가 국내정치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국 후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YS-DJ간 거리 넓히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한보사건, DJ캠프의 김현철씨에 대한 공세, 그리고 노동법 개정을 계기로 한 대통령 하야 투쟁 등, 둘의 거리 넓히기가 적대관계로 변해간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런 관계의 전환점은 이회창 팀의 DJ비자금 공세 때다. DJ는 대통령 면담을 거듭해 신청했다. 청와대는 DJ의 면담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검찰에 수사중단을 지시했다.

물론 그게 YS의 DJ 봐주기는 아니다. 수사는 정치적 대충돌로 가는 길이기에 그 길을 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DJ 측의 청을 들어준 결과가 된 것이다.

***1997년 화해 기회도 DJ 취임 이후 무산**

97년. 이번엔 DJ가 당선되고 YS-DJ가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로 첫 대면하던 때 DJ는 이회창 후보측이 제기한 DJ 비자금수사를 중단시킨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 오랜만의 대면은 그 동안의 불편했던 관계를 좋은 관계로 바꾸는 화해의 자리가 되었다.

YS는 당선자를 청와대로 자주 초청해 면담하고, 정권인계에 최대한 협조하는 등 둘 사이는 그 동안의 소원했던 5년을 묻고 상호 협력하는 모습이었다.

당선자는 청와대 만찬을 청했고 YS는 이를 받아들여 대통령과 당선자 부부 만찬의 자리도 마련, 화해와 협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DJ는 “며칠 전 미국대사와 만났는데 대사는 김 대통령과 내가 협력하는 것이 대단히 필요하고 유익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더라. 나도 동감한다”는 말도 했다. YS는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이런 화해무드는 취임식 전까지 뿐이었다. DJ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둘의 개선되던 관계는 다시 거꾸로 곤두박질했다.

“처음부터 협력할 맘이 아니었으면 화해니 협력이니 하는 말은 안 했어야지. 왜 맘에 없는 말을 하는가.” YS가 그의 측근에게 했다는 얘기다.

DJ도 이런 YS의 동향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면담, 화해 이런 걸 희망할까.

선거를 앞둔 정치 격동 그게 또 다른 그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그 상황의 추이를 좀더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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