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구대성 투수가 5일 야후 BB스타디움을 찾아 오릭스 나카무라 단장에게 탈퇴를 신청했다.
구대성은 나카무라 단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유계약을 선언한 셈이다. 나카무라 단장은 5일 <닛칸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35세의 구대성은 연령적으로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교섭의 여지가 없었다. 확실한 선발로서 확보해 두고 싶지만 구대성은 미국에서 뛰고 싶다는 희망이 강했다"라고 밝혔다. 신문은 "구대성과 교섭을 하지 못한 게 합병 신구단 오릭스 버펄로스에게는 오산이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구대성은 동메달이 걸린 한일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거둬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주가를 높였다. 구대성 투수는 승부처마다 특유의 체인지업과 두둑한 배짱으로 일본타선을 요리해 '일본 킬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시드니 올림픽의 맹활약으로 해외진출을 노리던 구대성은 메이저리그에서 신분조회를 받기도 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오릭스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미국의 AP통신은 "국제무대에서 기량이 검증된 구대성이 뉴욕 메츠를 제치고 오릭스를 택했다. 메츠는 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대형투수를 놓친 셈"이라며 구대성의 오릭스 진출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던 구대성이 일본에 간 것에 대해 야구계에서는 "구대성이 아니라 한화가 일본을 택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뉴욕 메츠도 구대성 영입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한화가 메이저리그를 외면했다는 평가다. 일본구단에 선수를 보낼 경우 상당액의 이적료를 챙길 수 있지만 자유계약 신분으로 진출해야 하는 메이저리그로부터는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한미 프로야구 협정에는 공개입찰제도(포스팅시스템)가 명문화돼있지 않아 국내 구단이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이적료는 받을 수 없었다.
구대성은 한때 '이치로 선풍'을 일으키며 일본정상에 섰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진출해 주축투수로 활약했지만 성적은 기대에 못미쳤다. 빈약한 팀 타선의 지원도 문제였지만 구대성에겐 운도 따르지 않은 면이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구대성은 1백16과 2/3이닝동안 99개의 탈삼진을 잡아내 아직 구위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동기생인 이상훈, 김홍집과 함께 '좌완투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구대성은 1993년 빙그레에 입단했다. 이후 구대성은 1996년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시즌 MVP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3세이브를 올리며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현재 미국 프로야구의 뉴욕 양키스는 구대성에게 신분조회를 요청한 상황이며 양키스 이외에도 2~3개팀이 구대성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년전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접었던 구대성의 향후 진로는 스토브리그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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