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아마야구 지도자들을 위해 서울고교에서 강연회를 한 보비 발렌타인 감독(롯데 치바 마린스)이 "내년 시즌 이승엽은 외야에서 뛸 것"이라고 밝혀 이승엽의 외야수 전향이 확실해졌다.
***이승엽 외야수 전향 성공가능한가**
지난 시즌 주로 지명타자로 뛰었던 이승엽이 붙박이 외야수가 된다는 것은 일단 경기감각 면에서 긍정적이다. "수비를 해야 타격도 살아난다"고 했던 이승엽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대부분 1루자리를 지켰던 이승엽이 자칫 외야수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종범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이승엽의 외야 전향은 이미 두 달전 예견됐었다. 발렌타인 감독은 9월 30일 닛칸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이승엽이 다음 시즌 1루와 함께 외야수비에 도전한다. 선수로서 이승엽 폭을 넓히기 위해 복수 포지션을 지키는 게 유리하는 조언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발렌타인 감독으로서는 2004년 3할1푼4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베니 아그바야니와 함께 롯데 마린스의 타선을 이끈 후쿠우라를 주전 1루수로 계속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이승엽에게 사실상 외야수 전향을 지시한 셈이다. 더욱이 이승엽이 지명타자로 나와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자 발렌타인 감독은 이승엽의 외야수 전향을 고려해야 했다.
외국인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가을캠프에 참가해 외야수 수업을 받고 있는 이승엽은 세밀하고 정확한 중계플레이를 생명으로 여기는 일본 프로야구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적시타나 희생플라이 등 홈 승부를 펼칠 때 외야수들이 직접 송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야수에게 군더더기 없는 빠른 송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좌익수나 우익수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이는 이승엽은 방망이 소리만 듣고 낙하지점을 판단하고 투수의 코스선택이나 타자의 성향에 따라 수비위치를 조금씩 바꿔야하는 1루수와의 판이하게 다른 외야수비의 기본기를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승엽이 내년 시즌 외야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타격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타격엔 슬럼프가 있지만 수비엔 슬럼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내,외야를 막론하고 수비능력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승엽, 이종범의 전철 밟지 말아야**
지난 1999년 주니치 드래곤스에 활약하던 이종범은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수비위치를 바꿨다.
불같은 성격과 투혼으로'열혈남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주니치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이종범이 발이 빠르고 송구능력이 좋아 외야수로도 문제없다"고 밝혔지만, 속뜻은 주니치의 유격수 자리를 대형 신인 후쿠도메에게 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이종범의 자리를 빼앗았던 야구명문 PL가쿠엔(學園) 출신의 후쿠도메는 2002년 우익수로 전향해 고교선배 다쓰나미와 함께 주니치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이종범을 아끼던 김응용 감독(당시 해태)은 "이종범은 유격수 포지션을 맡아야 플레이가 살아난다"며 이종범의 포지션 변경에 불만을 표출했다. 김응용 감독의 예견처럼 1999년 이종범은 포지션 변경 후폭풍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종범은 전반기 막판에 극심한 타격 슬럼프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호타준족을 자랑하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에겐 큰 시련이었다.
이후 이종범은 부활 가능성을 간간이 보여줬지만 들쭉날쭉한 선발출장에 허덕이며 2001년 주니치와 결별했다.
올 시즌 이승엽은 1백경기에 출장해 2할4푼, 14홈런, 50타점의 저조한 성적으로 한국의 국민타자라는 명성에 먹칠을 했다. 이승엽은 내년 시즌이면 롯데 마린스와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야하는 부담감을 갖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다 외야수로 성공적인 전향을 해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았다.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본 투수들의 날카로운 제구력 때문에 힘든 한 시즌을 보냈던 이승엽이 내년 시즌 '붙박이 외야수'로 성공적인 부활을 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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