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것은 김홍일 의원의 장벽을 돌파하는 것 뿐입니다.”
한나라당이 ‘이용호게이트’의 몸통으로 지목한 K,K,J를 실명으로 폭로하기 직전 한 중진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야당은 김홍일이라는 벽을 넘었고, 당연히 여권은 펄펄뛰기 시작했다. 김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자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여권으로서는 그 동안 성역으로 남아 있던 대통령 아들의 이름을 비리 의혹 속에서 거명한 것은 마치 ‘용의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역린(逆鱗)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역린에 대한 응징은 재빨랐다.
실명 거론의 단초가 된 정보문건을 야당에 넘겨준 제주경찰청 정보과 형사와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당직자는 즉시 구금됐고, 경찰의 한나라당 도지부 압수수색에 이어 김의원을 포함한 당사자들과 민주당의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야당 역시 실명 공개 이후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맹공을 퍼부으며 이번 사건을 권력 핵심인 대통령 아들 ‘황태자’와 검찰, 조직폭력세력이 한데 묶인 거대한 비리의혹 덩어리로 만들어 가려는 태세다.
***‘비리 몸통’이냐 ‘사생활’이냐**
야당과 언론의 폭로, 당사자들의 해명, 잇따른 고소고발 등이 이어지면서 지금 정국은 가파른 고비를 넘고 있다. 한쪽은 대통령 아들을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세우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뿐 비리완 무관하다는 자세다.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바는 이렇다.
지난 정현준.진승현게이트, 최근의 분당 백궁.정자지역 특혜분양 의혹 모두 권력실세 개입설이 나왔다. 조직폭력 세력 관련설도 일부 등장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설’일 뿐 권력 핵심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용호게이트에서 조폭 두목 출신 여운환이 등장했고, 이것을 계기로 정학모씨와 김홍일 의원의 실명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휴가길 동행을 기록한 정보보고서가 근거다. 추가로 박종렬 대검 공안부장이 등장하면서 소위 ‘檢-政-暴 커넥션’ ‘비리 몸통설’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결이 김의원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기업인과 일부 ‘과거의 주먹’들을 만나고 식사를 같이 했다는 사실까지는 드러났지만, 그가 이용호게이트 등등의 비리사건에 개입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의 측근들은 김의원이 비리와 부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항변한다. 주변 인물들이 김의원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지는 모르지만 김영삼 전대통령 아들 현철씨의 몰락을 지켜 본 그가 직접 이권이나 돈에 손대기 어렵다는 얘기다.
***제주 휴가길 등장인물 심상치 않아**
그러나 그가 무분별하게 문제 있는 인물들을 가까이 두고 이들을 통해 조폭 두목이나 소개받고 식사도 같이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자체 만으로도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주 휴가길에 동행한 사람들의 면면부터가 도무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등장인물은 정학모씨와 무기 로비스트 조풍언씨, 여운환씨, 박종렬 대검 공안부장, 그리고 E건설 윤모사장 등이다.
정학모씨는 김홍일 의원과 수십년 동안 선후배, 형님.동생 사이로 끈끈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를 야당에선 조폭 두목이라 하고, 본인과 김홍일의원은 ‘한시절의 주먹’이었을 뿐이라 한다.
그러나 정씨는 주식회사 진로에 근무할 당시에도 스포츠 관계를 맡아 했지만 진로재산분쟁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다. 당시 진로그룹 재산분쟁에는 ‘주먹’이 동원됐고 물리적 충돌도 없지 않았음을 관계자들은 기억한다.
게다가 그는 김의원에게 조폭두목으로 검거돼 형을 살고 나온 여운환을 ‘사업가’라고 소개한 장본인이다. 그것도 여씨 소유인 광주 프라도호텔로 김의원을 안내하고 식사를 같이하게 했다.
이 당시는 여씨가 이용호와 어울려 다니며 여권에 로비창구를 자임해 온 때다. 바로 이 점에서 야당은 정씨가 김의원에게 ‘주먹’들을 소개했고, 주먹들은 “황태자를 면담했다”고 떠벌이고 다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기상, 검찰, 조폭두목 줄줄이 등장**
다음 무기로비스트 조풍언씨. 그는 비행기를 예약은 했지만 동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일산의 김대통령 사저를 사들인 장본인이다. 이밖에 대우로부터 아도니스 골프장을 헐값에 인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해명에 애를 먹은 일도 있다.
그런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연 수천만달러의 무기를 파는 로비스트가 대통령 아들과 휴가를 함께 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부터가 ‘적절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또 대검의 박종률 공안부장의 등장도 문제다. 대검공안부장은 검찰의 빅4에 해당하는 요직이자 정치권, 야당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는 자리다. 야당이 가장 두려워 할 대상이다. 따라서 아무리 가족끼리 친하다지만 그가 황태자를 수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야당에겐 충격적일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여운환씨가 인사를 하러 나타나고, E건설 윤모사장등 현정권에서 갑자기 규모를 불린 호남 출신 사업가들까지 등장한다.
이쯤 되니 ‘근거’와 ‘증거’는 없지만 ‘의문’과 ‘의혹’은 자꾸만 부풀려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주변부터 돌아 봐야**
한국적 현실에서 대통령의 아들이란 위치는 그 자체로 문제거리다. 참으로 어려운 자리다. 게다가 현역 국회의원이기 까지 하다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아무 일이 없어도 소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을 상황, 어찌 보면 ‘정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권력관계다.
게다가 각종 문제 소지를 안고 있는 인물들, 수상쩍은 사람들이 다수 등장했다. 대통령 아들의 친구나 선후배라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주목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평범하기는커녕 ‘주먹’, ‘무기로비스트’, ‘검찰’, ‘건설업자’가 한꺼번에 나타나니 소문을 가라앉힐 수 없는 것이다.
혹시 이런 주변 인물들이 김의원과의 관계를 빌미로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자기 주변부터 돌아봐야 한다. 아니 그보다 먼저 의혹을 살만한 사람들과 너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닌지부터 돌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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