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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제도 바꿔야 법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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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제도 바꿔야 법원개혁'

‘사법개혁 모임’ 결성 주도한 문흥수 부장판사

“법리적으로는 국민 일반의 의사, 즉 민심이 헌법의 정신이다 민(民)은 천(天)이다”“하늘인 백성 아래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법관은 법관다워야 하며, 검찰관은 검찰관다워야 한다”“판사나 검사는 유한하지만 판결과 공소장은 무한하다” 서울지법 문흥수 부장판사의 말이다.

지난 15일 사법제도 개혁을 모색하기 위한 법관들의 모임이 발족했다. ‘법의 지배 확립을 위한 사법부 독립과 법원민주화를 생각하는 법관들의 (사이버) 공동회의’라는 긴 이름이 정식 명칭이다.

발족 취지문에 따르면 “부정부패가 도를 넘어서 온 국민이 방황하는 사법위기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은 사법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법관들이 책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식적인 판사회의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상의하달의 일방통로가 되어 버렸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사이버 공간에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모든 문제를 진솔하게 논의하고,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법리적 검토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이 모임을 주도한 사람이 문흥수 부장판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 사시 21회,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 서울고법 판사,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 창원지법 부장판사, 수원지법 부장판사, 현재 서울지법 부장판사. 이상이 그의 간략한 이력이다.

문판사는 법조계에서 “원래 그런 사람”으로 통한다. 그가 화제가 된 적은 여러 번이다. 지난 1996년 창원지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경남 창원갑 선관위원장을 맡던 중 4.11총선 당시 선거비용 실사결과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선관위원장직 사퇴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97년에는 당시 신한국당이 기습처리한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국회 통과 절차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위헌제청을 냈었다.

99년 대전의 이종기변호사 관련 법조비리사건이 터졌던 당시에는 법관 전용 전자게시판에 사법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게시해 화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그의 사법현실 비판은 계속된다. 2000년 3월에는 월간 법조에 게재한 ‘사법권의 독립 - 새천년 우리 사법부의 나아갈 길과 관련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지난 5월엔 법률신문에 기고한 ‘법률과 사랑’이란 글을 통해 사법체제를 비판했다.

그의 일관된 주장은 “현재 법원은 마치 거물 변호사 양성소처럼 돼 있다”, “모든 법관들이 퇴직 후 변호사로 나서는 우리 나라 법관들의 운명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언젠가 변호사를 할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어느 법관의 마음 한 가운데 남아 있는 한, 그는 진정한 법관이라고 할 수 없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법관인사시스템 개혁이 핵심**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모든 판사를 한줄로 줄세우는 시스템, 판검사가 옷을 벗지 않으려면 승진에만 신경써야 하는 인사제도, 법관들을 행정부나 입법부 또는 거물급 전관변호사들에 비해 약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취약한 신분보장제도 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법원장에 의한 법관 파면제도로 악용되는 10년 마다의 판사재임명제도, 법관의 사직을 강요하는 승진발탁제도, 평정자의 주관에 좌우되어 승진의 근거가 되는 근무평정제도의 개혁을 요구해 왔다.

그의 이런 주장이 일관되게 지속되어 온 소신임을 대법원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법관들의 모임 발족에 대한 대법원의 반응도 ‘그저 지켜 보겠다’로 결정되었다 한다. 이번 모임이 정치적, 조직적 집단행동으로 비화할 우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관 인사제도의 개선은 이미 법원 인사제도개편위원회 등에서 단계적 개선안이 마련돼 시행중인 장기발전 과제이며, 이번 모임 역시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순수한 토론모임이 될 것으로 보아 방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전관예우와 법조비리는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법조계의 고질병이다. 그 근본적 대안으로 ‘판사는 평생 판사로 끝낼 수 있는 시스템’을 주장해 온 문흥수 판사가 이제 또 다시 개혁을 위한 조직적 의견수렴을 시작했다.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평가되는 법조계, 그래서 수차례에 걸친 사법개혁 시도가 한계에 부닥쳤던 전례에 비추어 이번 시도가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문흥수 판사의 평소 소신을 살펴본다는 취지에서 그가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중 몇 대목을 발췌 소개한다.

***‘법률과 사랑’**

어느 사회의 정신적 기초를 좌우하는 것은 종교와 법률이다. 그런데 IMF를 맞아 종교인들과 법률가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회의 기본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결과 국민들은 종교인들과 법률가들에게 IMF이전보다 더 큰 불신과 비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법률가의 역할은 사회의 썩은 곳을 샅샅이 찾아내서 추상과 같은 심판을 내려 국민들로 하여금 정도(正道)를 가도록 만드는 데 있다.... 국민들은 기대 가능성이 더 큰 사회적 강자들에 대해 보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번번히 허물어지면서 국민들은 법률가들에게 점점 더 등을 돌리고 있다.

판결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덜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판사들을 한 줄로 줄을 세우고 모든 인사권을 대법원장에게 집중하고 있는 현재의 관료사법 시스템하에서 판사들은 일을 함에 있어서 국민들을 덜 의식하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판사나 검사는 유한하지만, 판결이나 공소장은 영원하다. 그러나,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에는 지나치게 현세기복(現世祈福)적인 면이 있다. 이러한 경향 내지 분위기는 청사(靑史)에 길이 남는 판,검사가 되기 보다는 목전의 승진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 수 있다. (법률신문 2001년 5월 3일)

***‘정도(正道)’**

장관이 되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을까? “개인의 영광이고, 가문의 영광이며……”. 외형지향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게 한다. 한 마디로 후진사회의 표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이 출세에 마이너스가 될 것 같으면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고, 그 결과 비극적 희극들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것이리라....

언제나 正道를 가야한다는 것을 깨우쳐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속이려고 드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민(民)은 천(天)이다. 하늘인 백성 아래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법관은 법관다워야 하며, 검찰관은 검찰관다워야 한다. (법률신문 2001년 6월 7일)

***‘진리와 자유’**

인간은 자아가 살아 있는 한 고통이 계속된다. 나 자신을 위하여 인생을 살려고 들 때 거기에는 언제나 장해와 갈등, 초조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존재한다. 나를 내세우고 나에 속한 것들을 자랑하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나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하여 살아갈 때 이러한 현상은 계속된다....

고차원적인 인간의 종교와 철학들이 자아로부터의 해탈 내지 해방을 인간존재의 완성으로 보고 그를 찾아서 노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때 무한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로서 사는 삶’의 경지에 무한한 사랑과 자유, 평화와 기쁨이 있다. 이것이 참으로 잘 사는 길이다. (법률신문 2001년 3월 8일)

***민심과 헌법정신**

우리는 영원한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떠한 수준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조직에서나 인사권자가 황제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것 같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수준이 크게 다르겠는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자들은 겸허히 국민 일반의 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직무를 시작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심 곧 천심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법원과 검찰이 그 동안 민심 곧 천심에 반하게 움직여 왔기 때문에 국민 일반의 신뢰를 상실한 것인데, 이것은 수십년간 누적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기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겸허히 국민 일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인데, 아직도 민심 곧 천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지 않나 걱정이다.

법원의 경우 국민들은 전관변호사가 양산되는 법원조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원로 내지 장로급 경륜이 풍부한 법관들이 앞을 다투어 퇴직하여 변호사로 나서는 반면, 지적 능력이 우수한 (?) 연소법관들이 중책을 맡게 되는 것을 국민들은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신분보장이 취약한 나머지 행정부나, 입법부 또는 거물급 전관변호사들에게 약한 법관들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 일반의 의사, 민심, 즉 천심을 누가 들을 수 있는가? 겸허히 마음을 비우고 영원을 내어다 보는 사람이다. 법리적으로는 국민 일반의 의사 즉 민심이 헌법의 정신이다. 헌법의 정신에 뛰어난 사람이 영원한 이야기를 써나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률신문 200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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