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하고 싶었다".
'군에 가는 것은 곧 선수생활의 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병역비리 연루 야구선수들이 한결같이 한 해명이다. 하지만 두 차례 참전으로 전성기 5년을 희생한 미국 프로야구 스타 테드 윌리암스의 결단은 '병풍'으로 좌초위기에 처한 이들의 해명을 무색케 한다.
***2차대전과 한국전에 참전한 '마지막 4할타자'**
야구공의 실밥까지 정확히 볼 수 있는 초인적 시력과 신이 내린 천부적인 타격감으로 1940~50년대 미국프로야구를 풍미한 테드 윌리암스는 리그 최우수선수(2회), 타격 3관왕(2회)과 더불어 '꿈의 타율'로 불리는 4할고지를 마지막으로 점령한 타자로 잘 알려져있다.
많은 메이저리그 스타들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윌리암스가 미국인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된 이유는 야구선수로는 이례적인 두 차례 참전으로 거의 5시즌동안 메이저리그를 떠났으면서도 변치않는 기량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윌리암스는 24세이던 1943년 해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3년간 복무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56경기 연속안타기록을 세운 조 디마지오나 강속구 투수 밥 펠러 등 많은 야구스타들이 자원입대했던 터라, 윌리암스의 참전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뒤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상을 두 번이나 탔던 윌리암스는 1952년 또다시 한국전쟁에 지원해 참전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던 33세 나이에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윌리암스를 보스턴 구단과 팬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개인기록도 그렇지만 우승에 목말라 있던 보스턴으로서는 큰 손실이기 때문이었다.
윌리암스는 그러나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여해 약 2년간 43회 공중전을 치르고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와 안타행진을 이어갔다.
***윌리암스, "난 단한번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5년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재담가로 잘 알려진 뉴욕 양키스의 명포수 요기 베라는 이같은 윌리암스를 일컬어"그 어떤 야구선수도 테드 윌리암스 이상으로 존경받기는 힘들다"며 "그는 자신의 야구인생을 조국을 위해 희생했지만 자신이 항상 바라던 역사상 최고의 타자가 됐다"고 극찬했다.
1990년대 최고의 교타자 토니 그윈 역시 "만약 테드 윌리암스가 야구를 떠나있던 5년을 되찾는다면 그의 기록은 더욱 따라잡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은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윌리암스가 늘 받았던 질문은 두 가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못했는데 아쉬움은 없는가"하는 것과, "야구선수로서 두 차례 참전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윌리암스는 첫번째 질문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두번째 질문에는 "결코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야구선수 이전에 미국의 국민이다"는 한결같은 답을 했다. 그에게 있어 야구가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무대였다면, 참전은 '의무'였던 것이다.
왼손타자인 윌리암스의 안타를 막기 위해 상대팀 감독들은 3루수를 2루수, 1루수 사이에 배치하는 소위 '윌리암스 시프트(Williams Shift)'를 사용해야 할 정도였고, '윌리암스 시프트'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가를 말해주는 대명사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훗날 미국언론은 "진정한 윌리암스 시프트는 메이저리그를 떠나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라는 보도까지 했다.
물론 윌리암스와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국내 선수들도 왜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윌리암스가 '진정한 야구스타'로 자리잡게 됐는지를 곰곰히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기록달성, 고액연봉 등 스타로서 누릴 수 있는 '노른자위'를 뒤로 한 채 군 입대라는 희생을 하면서도 윌리암스는 부단한 자기노력을 통해 항상 같은 야구 정상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이 윌리암스와 같은 영웅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팬들은 떳떳한 야구선수를 바라고 있다.
'한창 야구선수로 뛰어야 할 나이에 군에 가면 선수생명이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병역을 기피한 선수들이 과연 팬들에게 어떻게 프로야구에 대한 무한애정을 요구할 것이며, 병역기피를 통해 이룩한 기록과 활약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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