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를 넘긴 노장선수들과 신예선수들이 조화를 이룬 한국 여자핸드볼이 눈물의 은메달을 거머줬다. 한국은 29일(현지시간) 헬레니코 인도어아레나에서 열린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34대34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2대4로 석패했다. 하지만 평소엔 관심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가 4년주기 유행병처럼 올림픽때만 부각되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또다시 극복한 값진 은메달이었다.
***피말리는 80분 대접전, 승부던지기에서 갈려**
한국은 전반전부터 체력이 뛰어난 장신군단 덴마크를 맞아 끈질긴 수비와 특유의 빠른 몸놀림을 통한 슛으로 좋은 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덴마크는 한국의 수비라인 위에서 내리찍는 듯한 중거리슛을 계속 터뜨렸고 전후반 60분 경기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체력적으로 덴마크에 뒤지는 한국은 신예 문필희가 가세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지난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도 덴마크와 결승전을 치를 때 뛰었던 골키퍼 오영란이 투혼을 발휘했다. 한국은 1차연장전 3분여를 남기고 주포 이상은이 골을 성공시켜 29대27로 앞섰지만 허순영이 2분간 퇴장당했고 수적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연속골을 내줘 2차연장전에 돌입했다.
한국은 2차연장전에서도 문필희가 중거리슛과 바운드슛을 연달아 작렬하며 33대31로 앞서 승부를 마감하는 듯 했지만 덴마크에게 종료 10초전 뼈아픈 중거리슛을 내주며 또다시 동점이 됐다.
긴장되는 승부던지기 순간. 한국은 임오경과 문필희의 슛이 장신의 덴마크 골키퍼 발에 걸렸고 이날 경기에서 1백%의 페널티킥 드로우를 성공시켰던 덴마크는 승부던지기에서도 실수없이 골을 연달아 넣었다.
경기가 끝난 뒤 덴마크 선수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한국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코트 위에 모여 서로를 격려했다.
***열악한 조건에서 또다시 꽃피운 한국 여자 핸드볼**
지난 1988, 1992년 올림픽 2연패로 대표적인 올림픽 효녀종목으로 각인됐던 한국 여자핸드볼은 2003년 아시아지역예선에서 조2위로 밀리며 아테네 올림픽 본선진출에 적신호가 켜졌지만 한국은 임영철 감독의 지도아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본선에 합류했다.
한국은 해외파 노장선수들인 임오경, 오성옥, 오영란 등을 대거 수혈했고 우선희가 대활약하며 올림픽 본선티켓을 땄지만 2003년에만 여자 실업팀 2개가 해체됐고 학생 선수들이 줄어드는 등 국내 여건이 좋지않아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해 올림픽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다. 다만 재기에 성공한 이상은, 우선희의 공격력과 체력적으로 부담이 덜한 문필희, 최임정 등 신예선수들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1976년 몬트리얼 올림픽이후 단 한번도 패한적인 없는 소련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따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7백일 지옥 같은 강훈련을 통해 '살아도 코트에서 살고 죽어도 코트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고병훈 감독이하 모든 선수들이 피땀흘린 결과였다. 한국은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우승하며 올림픽 2연패를 차지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핸드볼 큰잔치'란 타이틀하에 열렸던 대회가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실업팀의 잇따른 창단으로 한국 핸드볼은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는 듯 했지만 이런 지원과 관심도 오래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국여자 핸드볼팀은 4년마다 한번 돌아오는 올림픽무대에서 꼭 좋은 성적으로나마 국민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한 투자와 관심없이 영원한 효자,효녀종목은 없다**
임영철 감독은 결승전 후에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앰블란스에 몇번 실려갈 정도로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했다. 오늘의 패인은 덴마크 국민의 열렬한 응원때문이었다. 전국민이 핸드볼을 지원해준 덴마크에 밀려서 졌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임영철 감독은 "서울에 초등학교 핸드볼 팀은 하나밖에 없다. 다른 지역도 똑같다. 올림픽만 끝나면 핸드볼을 잊어버린 무관심이 이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여자핸드볼 뿐 아니라 평소엔 경기가 언제 하는지도 몰랐다가 올림픽만 되면 유행병처럼 주목받는 비인기 종목은 꽤 많다. 하지만 '벼락치기'훈련과 투혼만으로 언제까지 비인기 종목이 한국의 강세종목이 될 수는 없다. 꾸준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없이 올림픽에서 영원한 효자, 효녀 종목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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