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트 스코어 10대9로 앞선 상황에서 유승민의 강한 드라이브를 왕하오가 받지 못해 금메달이 결정되는 순간 유승민은 김택수 코치에게 달려가 격렬히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대표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지만 코치로 변신해 유승민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던 김택수 코치는 자신이 먼저 유승민 선수에게 펄쩍 뛰어 안기며, 금메달의 쾌거를 이룬 유승민 이상으로 환호했다.
***유승민 뒤에는 김택수가 있었다**
23일(현지시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결승전에서 유승민이 승리했다. 상대실책과 과감한 선제공격으로 1세트를 따내 기선을 제압한 유승민은 펜홀더 이면타법으로 맞선 왕하오를 세트스코어 4대2로 제압했다. 1988년 유남규 이후 16년만의 올림픽탁구 남자단식 금메달이었다.
유승민의 이날 승리요인은 공격적인 리시브와 선제공격이었다. 유승민은 초반부터 포핸드 드라이브 대결에서 왕하오를 압도했고 상대서브의 방향을 미리 예측해 곧바로 공격을 하는 과감한 작전으로 첫 세트를 따낸 게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유승민은 "왕하오 선수에게 이긴 적이 없어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경기를 시작하고 작전이 잘 먹혀 들어가 어느 정도 기대를 했다. 왕하오와의 경기에서 선제공격을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라고 승인을 밝혔다.
중국의 류궈량 코치도 "유승민이 왕하오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 경기초반 유승민이 왕하오를 당황케 했다. 왕하오는 스피드에서 유승민에게 뒤졌고 너무 조심스런 경기운영을 했던 게 패인이다"라고 시인했다.
세트스코어 3대1로 앞선 상황에서 유승민은 5세트를 듀스끝에 왕하오에게 내줘 흔들렸지만, 유승민의 뒤에는 대표선수 생활도 같이 한 큰형 같은 김택수 코치가 있었다. 김택수 코치는 대표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으나 주세혁에게 대표권을 양보하고 코치직을 자청한 맏형같은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그는 평소 훈련과정에 번번이 중국의 벽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자신의 한을 토로하며 "반드시 중국의 벽을 넘어야 한다"며 유승민에게 중국의 약점을 뚫기 위한 하루 10시간의 강훈련을 시켰다.
다 잡았던 5세트를 뺏기는 순간, 김택수 코치는 유승민 이상으로 아쉬워하면서도 유승민에게 "아직도 앞서고 있으니 차분하게 하라"는 말로 다독거렸다.
안정을 되찾은 유승민은 6세트를 놓치면 왕하오에게 진다는 각오로 더욱 과감한 드라이브 공격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왕하오에게 공격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유승민은 공격실책이 나와 고전했지만 9대9 상황에서 귀중한 1점을 얻어 자신감을 되찾아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지난 16년간 철옹성같았던 만리장성을 부수는 순간이었다.
유승민과 왕하오의 결승전 맞대결은 코치들간의 대결도 관심을 끌었다. 김택수 코치와 중국의 류궈량 코치는 선수시절 국제무대에서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친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코치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쏙 빼닮은 유승민과 왕하오에 심혈을 기울여와 결승전을 바라보는 눈길이 남달랐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이면타법의 세계 1인자였던 류궈량을 강한 드라이브 선제공격으로 제압했던 김택수 코치는 유승민의 승리로 첫번째 코치대결에서도 류궈량을 이긴 셈이었다.
***솔직한 유승민, "아직 내 실력은 왕하오보다 못하다"**
성인무대에선 왕하오에게 과거 6차례나 번번이 고개를 숙였던 유승민은 이날 승리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고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22살 나이에 걸맞지 않는 겸손함과 솔직함을 보여 주위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중국은 천하무적이었다. 이번에도 그 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 중국이 최강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왕하오를 이겼지만 (내가) 실력에서 밀린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는 부담이 컸고 나는 부담이 없었기에 나온 결과다. 대진운도 경기운도 따랐다.
앞으로 중국선수들의 나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질 것이다. 나는 아직 수비와 집중력이 부족하다. 계속 도전하는 마음으로 약점을 보완해 진정한 챔피언이 되겠다. 국민들도 중국처럼 탁구를 많이 사랑해달라."
이처럼 솔직하고 당찬 유승민이기에 그의 앞날, 더 나아가 한국탁구의 앞날은 밝은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