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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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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신영복 고전강독 <2>

제1강 고전강독 서론

여러분과 한 학기동안 같이 읽을 교재가 학교 문구점에 있는 복사점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구입해야 됩니다. 교재가 없으면 강독할 수가 없습니다. 복사하여 제본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교 바깥의 복사점에서 주문제작했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요. 학생들이 복사점으로 원본 원고를 가지고 가서 맡겼는데 가격 흥정을 썩 잘해왔었어요. 그 까닭을 물었더니 가관이었지요. 그 복사점 이름이 ‘신영복’사점이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우기고 주인도 값을 깎아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가격이 지금도 학교 문구점의 제작가격에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교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중국고전의 극히 일부분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매우 기초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고전 문헌을 섭렵한다는 것은 평생을 걸려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5천년 동안 전승되어 내려오는 문명이 세계에는 없습니다. 이집트만 하더라도 문자해독이 불가능합니다. 해독에 필요한 모든 자료가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피라밋이 파라오의 무덤인가 아닌가를 판별할 수 있는 확실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실상입니다. 중국문헌만이 고대로부터 해독이 가능한 유일한 문헌입니다. 그 규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지요.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특히 우리의 강의는 전공과정이 아니고 교양과정에서 비전공자들이 대상입니다. 강사인 나도 비전공자이구요. 그런 점에서 중국의 기본적인 고전을 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등을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대의 신유학(新儒學)과 심론(心論), 선종불교(禪宗佛敎)의 개요를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추가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 이후 시기는 그 당대의 시와 산문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공자가 아니고 나 역시 전공자가 아니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전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고전뿐만이 아니라 역사학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고전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현대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과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재문안을 선택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설정하였습니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감옥에서 표시해두었던 것을 기초로 만든 것입니다만 크게 2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변혁기 읽기**

첫째는 BC 7세기- BC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 즉 한 마디로 사회변혁기를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입니다. 주(周)왕실을 정점으로 하는 고대의 종법(宗法)질서가 무너지면서 시작된 일대 변혁기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 시기는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군사력 경제력 사회조직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무한경쟁시대입니다.

주(周)왕실은 지도력을 잃고 대신 중원을 호령하는 패국(覇國)이 등장하게 됩니다. 수십 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에는 12제후국으로 그리고 전국시대에는 다시 7국으로 그리고 드디어 진(秦)나라로 통일되는 역사의 격동기입니다.

이 시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그리스시대와 같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축의 시대(axial era)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초의 사회조직, 즉 국가를 건설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최대한의 담론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현대적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변혁기와 거대담론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대적 상황이라는 인식이 고전강독에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 담론을 재조명하는 일은 후기 자본주의에 대하여, 특히 그것이 요구하는 세계체제와 일방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투기성과 비생산성에 대하여 비판적 전망을 체계적으로 조명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이것이 21세기라는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문명의 문제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최대한의 사회건설담론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고전강독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 담론을 기본적 주제로 할 것입니다.

***새 패러다임 모색**

둘째는 고전강독의 전 과정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을 화두처럼 걸어 놓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이 화두는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상적인 모델을 전제하고 그 모델을 현재와 현실 속에 실현하려고 하는 소위 건축적 의지가 바야흐로 해제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지적 상황입니다. 관념적인 모델을 미리 설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실천을 받아오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교조적이거나 관념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해서는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주 언급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발표한 ‘존재론으로부터 관계론으로(From Substance-centered Paradigm to Relation-centered One)’에서 문제제기를 해두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서론 부분에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서구 특히 서구 근대사가 그 패러다임에 있어서 ‘존재론적‘임에 비하여 동양적 패러다임은 그 기본에 있어서 ‘관계론적‘입니다. 존재론적 패러다임은 개별적 실체를 기본단위로 인식하고 개별적 실체들이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 가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회든 국가든 개별적 실체들은 각각 독립적 의미와 행동원리를 가집니다. 다만 그것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구조와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회론(社會論)이라는 것이지요.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패러다임은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여러 주제를 가지고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 학기 동안에 여러분과 강독하게 될 고전구절들은 대체로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를 재조명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강독의 참뜻**

고전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학에 관한 최근의 저서에서 읽은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1차대전 때였다고 기억됩니다만 알프스산맥에 주둔한 일개 소대가 있었습니다. 젊은 소대장이 일개분대를 정찰임무를 주어 내보냈어요. 그런데 정찰분대가 떠나자 이내 폭설이 쏟아졌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연일 계속해서 내리 퍼부었다고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에피소드입니다. 그래서 젊은 소대장은 그 일개분대가 틀림없이 폭설과 폭풍에 전원 조난당했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일주일인가 지난 후에 당당하게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정찰분대가 무사 귀대하였습니다. 반가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그 험한 풍설 속에서 무사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어요.

대답은 산맥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어느 계곡으로 행군할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설동(雪洞)을 파고 피신할 것인지 등을 모두 지도를 보고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그 풍설을 극복하고 행군할 수 있었고 무사히 귀대할 수 있었다는 의기양양한 답변이었어요, 그래서 소대장이 그 지도를 받아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지도는 알프스산맥의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산맥 지도였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펼쳐들고 있는 고전강독 교재가 이를테면 알프스산맥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산맥 지도인 셈이지요. 그러나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은 그 구조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역사학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과학과 이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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