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아시안컵에 처음으로 등장한 뒤 우승 3회, 준우승 2회를 차지하며 아시안컵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여줬던 사우디아라비아가 26일 이라크에게 1대2로 패해 아시안컵 8강진출에 실패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경기후 헤라르트 반 더 렘 감독을 경질했다.
축구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몰락의 원인은 주축선수들의 부상도 한 몫했지만 참을성없이 경기결과에 따라 감독을 '파리목숨'처럼 여겼던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 지도부에 있다는 지적이 난무하다.
***사우디 축구협회, "2년간 반 더렘 감독에게 기회줬지만 기대이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 부회장이자 왕자인 나와프 빈 파이살은 26일 "팀이 부진한 성적을 내서 우리는 감독과 전체 코칭스태프를 경질했다. 우리는 반 더 렘 감독에게 2년간 기회를 줬지만 결과는 항상 성에 차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 더 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취재진들에게 화를 내며 "당신들은 내 경질소식을 알지 모르지만 나는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가 나에게 말할 때까지 나는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반 더 렘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선탈락한 뒤 지휘봉을 잡아 19경기 연속무패기록을 이어갈 정도로 팀을 안정시켰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일격을 얻어맞기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리히텐슈타인에게 당한 1패가 유일한 패배였을 정도였다.
***반 더 렘 감독 "나는 마술사가 아니다"**
반 더 렘 감독은 지난 22일 우즈베키스탄에게 패한 뒤 자신의 경질설이 대두되자 "우리는 여전히 아시안컵 C조에서 가장 강한 팀이다. 나를 비난하고 안하고는 당신들에게 달려있지만 나는 마술사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컨트럴 타워' 모하메드 누르와 압둘라 알 와키드, 모하메드 아멘 등 주축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어려운 상황에서 반 더 렘 감독은 사임압박까지 겹치자 최악의 결과를 내고 말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알 이티하드 클럽 소속의 이들 선수들이 강행군으로 3개의 국내대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아랍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해 지친상황에서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안컵이 개막하기 전 반 더 렘 감독도 "선수들이 지난 시즌 너무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우리는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숫자를 제한해야 한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참가하는 선수들은 아랍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사우디, 지난 10년간 13명의 감독 갈아치워**
'오일달러'의 힘을 통해 1980년대 아시아축구계의 강호로 떠오른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10년간 13명의 감독을 갈아치울 만큼 부침이 심했다.
지난 1998년 월드컵에서는 주최국인 프랑스에게 0대4로 패하자 곧바로 브라질출신의 '명장' 파레이라 감독을 경질했으며 2000년 아시안컵에서는 첫 경기에 일본에게 1대4로 진뒤 체코 출신의 밀란 마찰라(현 오만 감독)감독을 내쫓았다.
물론 팀의 성적부진에는 감독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감독이 팀 전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적극적인 지원과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은 각국 축구협회의 몫이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순간적으로 경기결과에만 집착해 감독을 계속 교체하면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모든 잘못을 감독에게 돌리고 임기응변식 감독교체를 반복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 축구의 추락은 '인내는 미덕이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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