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공세가 난무하는 시대이다. 사실을 먼저 가려내려는 엄밀성과 정직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NLL 논란도 그렇고 혼외자녀 문제에 연루되어 물러난 채동욱 검찰총장 건도 그렇다. 감성적으로 대중들에게 먹혀들어갈 만하면 사실 확인을 생략하거나 왜곡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거기다가 언론의 대중 추수주의(대중의 인기만을 좇는 주의)적 조명과 암묵적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사실과 상관없이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국 그들이 세상을 원하는 대로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비단 정치권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진영 논리가 다층적으로 생산되는 정치권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상적 담론의 영역들에서도 이런 비극들이 재현되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일은 참담하다. '입양특례법이 출생신고를 의무화했고, 아동 유기의 주범이다. 개정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그 중 하나다. 잘 모르고 그것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의 충정 어린 발언들이 있었고, 언론들은 사실 확인과 검증이라는 기본적인 보도준칙을 뛰어넘어 비성찰적으로 이 말을 홍수처럼 재생산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를 의무화하지 않았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입양특례법은 개정 과정에서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대중의 상식이 되어버린 말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는 일은 좀 예의가 모자라 보일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국민의 눈높이를 존중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글은 상당한 모험을 거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8월 5일 개정된 입양특례법에서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사실은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필자가 아는 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출생신고는 보편적 의무였다. 대한민국의 국민 중에 아이를 출산한 부모 중, 누구는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있고, 누구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 있었는데,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면서 비로소 출생신고를 강제하도록 법을 개정한 적이 없다.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 문제를 다루는 법이 아니다. 출생신고에 관한 사안을 다루려면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입양특례법이 출생신고를 의무화했다는 주장은 허위이다. 그러므로 이 허위에 기초해서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정직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벌이는 선동이다. 어떤 문건에 서명하도록 부탁받은 사람은 진실한 정보를 충분히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에 대한 정중한 존중 없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그렇게 해서 설사 100만인 서명을 받아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종의 대중조작에 해당하는 결과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모든 리서치는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이 잘못된 리서치는 그 결과를 인정받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리서치에 기초해서 정책을 수립하거나 입법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회를 부실사회가 되게 하는 지름길이다. 서명운동 역시 다르지 않다. 100만 명 서명이라는 결과물이 외견상 혁혁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정책입안이나 입법의 정당성을 담보하려면, 서명자에게 제공된 정보가 진실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수불가결하다.
불법 관행, 아동의 신분 세탁을 불렀다
이 지점에서 어떤 이들은 아래와 같이 말할 것이다.
"필자의 논의 전개는 법률문자주의에 얽매여 있다. 지난 60년 동안 비록 불법이긴 했지만 미혼모들이 자기 낳은 아이를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지 않고 입양을 보낼 수 있었는데 지난해 8월 5일부터는 입양이 가정법원의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정법원의 판결 절차 개시를 위해서는 입양판결 대상 아동의 법적 신원이 존재해야 하니까 아이의 출생신고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지 않았나. 결과적으로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출생신고 의무화의 효과를 발생시켰다. 세상에 어느 미혼모가 결혼하기 전에 낳은 아이를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겠느냐."
얼핏 보면 틀린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둬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지난 60년간 묵인되어 온 불법 관행이 더는 버틸 자리가 없게 된 것이지, 원래 장려할 만한 합법적인 사항이 불법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 불법 관행으로 인해서 지난 60년 동안 입양산업의 그늘에서 아동 신분의 세탁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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