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일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계의 도시와 환경사진전>이란 이름의 야외전시회는 전세계 80여개 도시의 환경문제와 인간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전시회는 지금은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세계적 대도시로 발전한 서울의 옛모습을 보여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전시회를 본 사람이라면 사진에 나와있는 장소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으며 현재는 어떻게 변모했는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코넬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장규식씨가 펴낸 신간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는 바로 이런 궁금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울의 변천사에 대한 역사적 조망을 통해 과거 역사의 중심에 섰던 공간을 하나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여느 답사기와는 달리 이 책은 익히 잘 알려진 명소대신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저자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한 평범한 오솔길이 괴테와 헤겔이 산책하던 곳이라 해서 '철학자의 길'이라는 관광명소로 바뀌고 파리의 낡은 카페가 피카소 등 화가의 단골집이라 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된 점을 상기시키며 서울도 근,현대 역사의 현장을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첫째 마당 역사공간 발굴하기를 통해 서울의 개화,개혁운동 공간과 일제하 종로의 민족운동 공간을 자세히 소개했고 둘째 마당에서는 프레시안에도 연재됐던 현장답사기를 실었다.
저자가 고증한 장소가운데는 인사동길 초입에 주차장으로 방치된 조선극장 터가 토월회에서 극예술연구회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신극운동의 요람이었다는 사실과 중앙고 진입로변 목용탕 맞은편의 허름한 한옥이 3•1운동 당시 만해 한용운 스님이 머물며 불교잡지 <유심>을 발행하던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저자가 주목한 공간가운데는 갑신정변의 거사공간이 당시 집권양반들의 생활거점이었던 북촌이 등장한다. 저자는 갑신정변이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삼일천하'로 끝나고 만 정변의 한계성을 북촌에 집중돼 있던 집권양반들의 공간적제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저자는 나아가 질그릇과 뚝배기로 상징되는 '서민 전통'의 문화공간으로 피마골 풍물기행을 소개했다. 저자는 종로1가에서 종묘까지 큰길 양편 시전행랑 뒤쪽으로 나 있던 골목길 '피마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고관대작들의 큰길 행차를 피해 접어들었던 그들만의 해방공간으로 평가하며 지금도 값싸고 푸짐한 음식점과 술집들이 어우러진 이 골목을 서민 전통문화의 거리로 부각시켰다.
저자는 개항 후 개화 물결이 넘실대던 거리 정동길을 걸으며 서구문화를 처음 받아들이던 1백여년 전 장면들을 생생하게 그려보고, 북촌길을 걸으며 대원군 집권에서부터 해방후 건국운동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 1백년의 자취를 되짚었다.
저자는 또한 마지막 셋째 마당에는 역사공간에 관한 기초조사와 답사의 결과물을 문화지도와 매뉴얼로 재가공해 테마기행 코스, 주제별 색인이 곁들여저 있는 '종로•북촌 문화산책'을 실어 직접 잊혀진 서울의 역사공간을 찾아보려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는 6년여에 걸쳐 서울의 역사현장과 문화공간들을 하나하나 발로 뒤지며 써내려간 문화유산 답사기로 꾸며진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하찮은 장소로 여겨졌던 서울 요소요소에 위치한 역사성을 담은 공간들이 의미있는 '관광명소'로 발전해야 한다는 바람을 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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