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부터 개막되는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 예선에서는 두 개의 빅 카드가 펼쳐질 예정이다. 전통의 라이벌 잉글랜드, 프랑스의 경기와 네덜란드, 독일의 경기가 팬들이 고대하는 맞대결이다.
이 가운데 1974년 월드컵 결승전을 시작으로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여러가지 화젯거리를 남겼던 네덜란드와 독일은 '축구전쟁'이란 신조어를 널리 퍼지게 한 주인공답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예측된다.
***독일 "네덜란드에 위축되지 않겠다", 네덜란드 4-3-3으로 전형 바꿔**
최근 평가전에서 루마니아에게 1대5로 패한 데 이어 독일출신감독 마테우스가 이끄는 헝가리에게도 0대2로 무릎 꿇었던 독일은 유로 2004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특유의 '게르만 투혼'으로 국제대회에서 기대이상의 성적을 냈던 독일축구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루디 푈러 독일 감독은 9일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경기력을 향상시켜야 하지만 네덜란드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다.
푈러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소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승점을 따기 위한 좋은 기회로 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반면 네덜란드의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 5,6월 친선경기에서 각각 벨기에와 아일랜드에게 패하자 4명의 주축선수들과 상의한 끝에 9일 익숙하지 않았던 4-4-2 전형을 버리고 독일전에서 4-3-3 전형으로 바꿀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10일 "네덜란드 최전방 공격수로 최고의 선택은 반 니스텔루이다"라며 '터줏대감' 클루이베르트 보다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니스텔루이에게 신뢰감을 표시했다.
스코틀랜드와의 플레이오프끝에 어렵게 유로2004 본선에 합류한 네덜란드의 아드보카트 감독이 너무 경험많은 선수들을 선호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네덜란드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이미 2002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예선탈락하자 공개적으로 선수들을 '가치관을 잃어버린 세대'라며 비꼬았을 정도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결국 반 데어 바르트, 스나이더, 헤이팅가 등 '젊은 피'를 긴급수혈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문제는 재능이 뛰어난 클루이베르트, 반 니스텔루이, 다비츠 등의 스타급선수들을 팀으로서 융합시키는 일이다.
***네덜란드 '토털축구' 허문 <빌트>의 보도**
네덜란드와 독일(당시 서독)의 대결은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불을 뿜었다. 1970년대 초반 아약스의 '토털 축구' 돌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네덜란드의 사령관 요한 크루이프와 아약스에 이어 유럽축구를 평정한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하는 수비수 프란츠 베켄바워의 경쟁은 당시 최고의 화제였다.
네덜란드는 서독팀이 공을 한번 잡기도 전에 페널티킥으로 선취점을 올렸지만 파울 브라이트너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수비진이 방심한 사이 동물적 골감각을 갖고 있던 게르트 뮐러를 막지 못해 1-2로 패했다.
결승전이 펼쳐지기 전날 서독 황색 일간지 <빌트>는 '크루이프, 샴페인 그리고 나체의 여자들'이라는 제하의 기사로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당시 보도에는 "몇 명의 네덜란드 선수들이 반나체의 여성들과 힐트루프 호텔 수영장에서 파티를 벌였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나와있다.
요한 크루이프 등 대부분의 네덜란드 선수들이 <빌트>의 악의적 보도에 발끈 하고 나서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서독이 치사한 심리전을 동원했다"며 맹비난을 해 이 사건은 두 국가간 축구전쟁의 서막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축구전쟁의 원조 네덜란드와 독일**
1988년 유럽선수권대회 네덜란드와 서독의 경기는 '축구전쟁'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당시 네덜란드 감독 리누스 미헬스나 수비의 핵 쿠만의 말처럼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오렌지군단 3총사'로 칭해진 훌리트, 반 바스텐, 레이카르트가 맹활약한 네덜란드는 준결승에서 서독과 맞닥뜨렸다. 도를 넘어선 태클과 신경전이 난무했던 이 경기에서 네덜란드는 반 바스텐의 결승골로 2대1의 승리를 거두며 74년 월드컵 결승의 패배를 깨끗이 설욕했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약 9백만명의 네덜란드 남성 인구 중 60%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승리를 만끽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특수를 타고 국내에도 번역소개된 <축구전쟁의 역사>는 이날의 경기를"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네덜란드를 5년이나 점령했고 네덜란드 인들은 대부분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물론 함부르크의 그날 밤은 전쟁이 끝나고도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독일인들은 여전히 가슴에 독수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저항군이었고 독일인들은 나치 점령군이었다"고 묘사했다.
서독전에 승리해 큰 고비를 넘긴 네덜란드는 결승에서 당시 소련을 제압하며 국제대회 '무관의 설움'을 풀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전에서 다시 만난 두 팀은 프랑크 레이카르트(전 네덜란드 감독)와 푈러(현 독일 감독)가 볼썽 사나운 실랑이를 펼쳐 라이벌 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레이카르트는 푈러에게 트리핑 반칙을 범하며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푈러는 심판에게 더 심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항의했고 푈러도 옐로우 카드를 받게됐다. 이후 감정이 격앙된 푈러는 프리킥때 네덜란드 골키퍼에게 달려들다 부딪쳤고 이때 레이카르트가 푈러에게 침을 뱉어 두 선수는 결국 동시에 퇴장당했다. 혼란속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독일은 2대1의 승리를 거뒀고 '압박축구' 대유행을 이끌며 월드컵 우승을 차지해 통독을 자축했다.
네덜란드 인들은 전광판에 나오는 득점과 실점, 즉 승패 이상으로 훌륭한 게임을 했느냐의 여부가 늘 관심거리다. 아직까지도 네덜란드 인들이 1974년 월드컵의 진정한 우승팀은 독일보다 '아름다운 축구'를 했던 네덜란드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과 게르만 병정을 연상시키는 정신력을 갖고 있는 독일은 축구에서 설령 경기내용엔 뒤져도 결과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월드컵 3회, 유럽축구선수권 3회 우승을 하며 세계축구사의 한 획을 그었던 독일과 '축구강소국(强小國)'의 대표주자 네덜란드의 경기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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