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버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프랑스 롤랑가로에서 아시아 돌풍이 계속될 수 있을까?
지난 해 프랑스오픈 남녀단식 우승자들과 강호들이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형택은 남자단식 32강에 올랐고 여자단식에서는 중국의 희망 정 졔가 16강에 오르는 파란을 연출해 주목된다.
***아시아돌풍의 주인공 이형택과 정 졔**
지난 2000년 US오픈에서 16강에 올라 한국 테니스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줬던 이형택은 클레이코트에 약점을 갖고 있어 프랑스오픈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예선 3회전에서 패했지만 15번 시드를 받은 샬켄(네덜란드)가 본선 1회전을 포기해 ‘럭키루저’로 본선에 진출한 이형택은 1회전에서 스웨덴의 로빈 소더링을 맞아 두 세트를 먼저 내줘 패색이 짙었지만 자신의 전매특허인 강력한 스트로크로 연달아 세 세트를 따내 역전승을 일궈냈다.
1회전에서 큰 고비를 넘긴 이형택은 27일(현지시간) 펼쳐진 2회전에서 홈팬들의 성원을 받았던 올리비에 파티엥스(프랑스)를 세트스코어 3대0으로 제압해 32강에 진출했다.
여자단식에서도 아시아돌풍은 이어졌다. 중국의 정 졔는 28일 지난 해 우승자 쥐스틴느 에넹을 제압해 상승세를 타던 타티아나 가르빈(이탈리아)을 꺾고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선수로는 1992년 호주오픈에서 32강에 올랐던 리 팡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지난 해 처음으로 세계랭킹 1백위권에 진입했던 정 졔는 올해 들어 30위권에 들어있는 선수들을 연파하며 53위까지 순위가 수직상승했다.
***롤랑가로는 강서버의 무덤**
프랑스오픈이 펼쳐지는 롤랑가로는 붉은색 클레이코트로 유명한 곳이라 하드코트에서 펼쳐지는 US오픈과 호주오픈, 잔디코트인 윔블던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클레이코트는 하드코트나 잔디코트에 비해 표면에서 닿은 공의 속도가 빠르지 않을 뿐 더러 바운스도 크다. 대포알 같은 강서브를 구사하는 선수들은 공의 스피드가 배가 되지 않아 자신의 서브 효과를 내기 쉽지 않고 자연스레 랠리가 많아지기 때문에 끈기가 요구된다.
1980~90년대 세계남자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존 매켄로, 지미 코너스, 보리스 베커, 스테판 에드베리가 유독 프랑스오픈에서 약점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27일 광(光)서버로 불리는 앤디 로딕이 탈락하자 “1973년 호주오픈이래 처음으로 미국 남자테니스 선수들 단 한명도 32강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1973년 호주오픈에는 미국 남자선수가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프랑스 오픈 남자단식에 미국선수 10명이 출전했는데 8명은 1회전에서 패했고 로딕과 스패디아는 3회전에서 세계랭킹이 낮은 프랑스 선수들에게 고배를 마셨다”고 지적했다.
강한 타구를 근간으로 하는 하드코트에 익숙해 있는 미국 선수들이 클레이코트에서 펼쳐지는 프랑스 오픈에서 충격적인 몰락을 한 셈이다.
***프랑스 오픈의 생명력은 클레이코트에 있다**
반면 프랑스오픈에서만 좋은 성적을 내는 클레이코트 전문가들도 존재했다. 이들은 베이스라인 플레이어로 일발필도의 강서브 보다는 절묘한 그라운드 스트로크로 승부를 내는 스타일의 라틴계 선수들이 많았다. 단신이지만 풋 워크가 좋았던 마이클 창(미국), 피말리는 랠리를 즐기며 2000, 2001년 프랑스 오픈 2연패를 이뤘던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이나 클레이코트에서 31연승행진을 해 올해 프랑스 오픈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른 기예르모 코리아(아르헨티나)가 그들이다.
롤랑가로 영어투어를 가보면 가장 심혈을 기울여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는 게 붉은색 클레이코트와 라코스테를 비롯해 1920~30년대 맹활약한 프랑스 테니스 4총사들의 동상이다. 프랑스오픈의 상징인 '피같은 붉은색의 흙'이란 뜻의 불어 테레 바튀에(Terre Battue)가 영어투어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될 정도다.
프랑스 오픈의 생명력은 클레이코트에 있다. 강타로 1, 2구안에 랠리가 끝나는 테니스경기에 질린 팬들은 랠리가 거듭되며 아기자기한 스트로크 대결이 펼쳐지는 프랑스오픈의 매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랜드슬램대회 16강신화를 노리는 이형택은 29일 23번 시드 펠리시아노 로페스(스페인)와 대결할 예정이며 중국의 정 졔는 30일 14번 시드의 파올라 수아레즈(아르헨티나)와 맞붙는다.
다른 그랜드슬램대회보다 인내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프랑스오픈에서 이형택과 정 졔가 계속 돌풍을 이어갈 수 있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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