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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못 가린 ‘월드컵 산파’와 ‘월드컵 주연배우’

[프레시안 스포츠] 프랑스, 브라질과 0대0 무승부

20일(현지시간) FIFA(국제축구연맹) 1백주년을 기념해 펼쳐진 프랑스와 브라질의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바르테즈 대신 나온 佛 쿠페 골키퍼 선방 돋보여**

1998년 브라질과 프랑스의 월드컵 결승전을 했던 프랑스 생드니 스타디움에서 치른 재대결은 경기내용면에선 브라질이 우세했다. 전반 초반 브라질은 카푸와 호나우두가 연속적으로 슈팅을 쏘며 기선을 제압했다.

전반 12분 카푸가 또다시 슛 기회를 잡았지만 바르테즈 대신 출전한 프랑스의 그레고리 쿠페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쿠페 골키퍼는 발렌시아와의 UEFA컵 경기에서 퇴장당했던 바르테즈 대신 ‘세계최강’ 브라질과의 경기에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쿠페 골키퍼는 전반 22분 호나우디뉴의 크로스를 받은 호나우두의 슛을 다시 막아내 팬들을 열광시켰다.

곧바로 반격을 개시한 프랑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년연속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던 앙리가 골키퍼와 1대1 기회를 잡았지만 슈팅이 크로스바 위로 벗어났다.

브라질은 후반 21분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카를로스가 찬 강한 슈팅이 왼쪽 골 포스트에 맞고 나오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브라질은 이후 호나우두와 훌리오 밥티스타가 문전에서 슛을 날리며 결승골을 노렸지만 프랑스 쿠페 골키퍼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기후 프랑스의 자크 상티니 감독은 “쿠페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제 몫을 해줬다. 골을 넣진 못했지만 나는 프랑스 스트라이커들의 골 결정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최근 치렀던 두 경기의 상대는 유로 2004의 우승후보중 하나인 네덜란드와 월드컵 5회 우승국 브라질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브라질의 파레이라 감독은 “세계 축구의 최강국인 두 팀의 대결은 매우 좋은 경기였다. 두 팀은 모두 좋은 조직력을 발휘했고 경쟁력도 있었다”고 말했다.

***월드컵산파 역할을 한 프랑스**

프랑스와 브라질간의 승부가 결정나기를 바랬던 세계축구팬들은 무승부 결과에 다소 실망했지만 두 팀이 FIFA 1백주년을 맞아 펼친 경기는 큰 의미가 있었다.

프랑스가 ‘월드컵의 산파’ 역할을 했던 FIFA 창립의 중심국가였으며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5회우승을 차지했던 ‘월드컵의 주연배우’였기 때문이다.

근대축구의 종가(宗家)가 영국이었다면 프랑스는 근대축구의 조직과 기틀을 마련한 국가였다. 대부분의 세계적인 단체나 기구의 약자가 영어인데 비해 FIFA(국제축구연맹)는 불어인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의 약자이다. 그 이유는 영국이 자신들만의 자부심을 너무 세웠던 탓에 1946년까지 FIFA가입을 거부하고 프랑스를 주축으로 초창기 FIFA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1926년 프랑스 축구협회회장 줄 리메와 사무총장 앙리 들로네는 FIFA 총회에서 “현재 세계축구계는 더 이상 올림픽경기로 한정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많은 국가들은 프로선수들을 인정하고 있고 더 이상 프로선수 없이는 최고선수들로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수 없다”고 밝히며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자유로운 월드컵 대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월드컵의 주연배우 브라질**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데 1등공신국가였던 프랑스는 하지만 월드컵의 주연배우 자리는 브라질에게 넘겨줘야 했다. 월드컵이란 멍석은 프랑스가 폈지만 재주는 브라질이 부린 격이었다. 브라질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17세 소년 펠레의 등장과 함께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축구하면 브라질이라는 등식을 만들었다.

삼바리듬에 맞춘 듯한 브라질의 공격축구는 197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절정에 올라 세계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브라질은 이 대회 우승으로 월드컵을 3번 거머쥐게 돼 월드컵의 창시자의 이름을 딴 줄 리메 컵을 영구히 갖게됐다. 하지만 줄 리메 컵은 브라질에서 도난당한 뒤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프랑스-브라질, ‘아트사커의 격돌’**

반면 정작 월드컵을 만들었던 프랑스는 1958년 모로코 출신의 샛별 쥐스 퐁텐느가 13골을 몰아 넣어 3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월드컵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세계축구의 강호자리에서 멀어졌던 프랑스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미셀 플라티니를 앞세워 우승을 노렸지만 거친 경기를 펼치며 특유의 ‘게르만 정신’을 발휘한 서독에게 연장혈투끝에 준결승에서 패해 분루를 삼켰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에서 지코(현 일본 감독)와 소크라테스가 이끄는 브라질을 제압했던 프랑스는 또다시 준결승에서 서독에게 패했다. 이후 1998년 자국에서 펼쳐진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브라질을 3대0으로 따돌리며 ‘프랑스 아트사커’의 새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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