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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마라도나에 아르헨이 노심초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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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마라도나에 아르헨이 노심초사하는 이유

[프레시안 스포츠] 포클랜드戰 원한 푼 ‘신의 손’ 골

‘축구영웅’ 마라도나가 18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중태에 빠져 병원에 후송되자 수백명의 팬들은 도로를 가로막고 병원을 지키며 ‘마라도나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란 말이 새겨진 피켓을 들고 밤을 지샜다.

병세가 호전되고 있는 마라도나에 관한 소식은 아르헨티나 전역에 TV를 통해 중계될 정도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겐 최고로 중요한 뉴스다. 그렇다면 마라도나가 비록 세계적 축구스타이긴 하지만 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이처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할까? 정답은 마라도나가 포클랜드 전쟁의 원한을 풀어 준 ‘신의 손’골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사진>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국민, “영국은 해적”**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아르헨티나인들은 영국인을 ‘해적’으로 부른다. 영국이 19세기초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침략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아르헨티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도 이런 의식은 피할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 축구가 영국인들에 의해 시작돼서 인지 아르헨티나에는 리베르 플라테(River Plate), 라싱(Racing), 뉴웰의 올드 보이스(Newell’s Old Boys)등 영어 이름을 쓰는 팀이 많으며 축구용어도 스페인어 대신 윙, 코너, 포워드라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아르헨티나에게 축구를 전파시킬 때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경기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축구를 통해 자신들의 우월감을 표시했고 아르헨티나인들은 영국인에 이 같은 태도에 복수심을 키워갔다.

***포클랜드 전쟁과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

두 나라간의 첨예한 대립양상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으로 본격화됐다. 스페인에게 독립한 뒤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도 계승했다고 주장한 아르헨티나는 무력점령을 감행했고 1833년 이래 포클랜드 제도의 주인이었던 영국은 이에 격분해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은 남극의 전진기지이며 근해에 석유까지 매장돼 있는 포클랜드 영유권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75일 간의 전투끝에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받아냈다. 국력을 총동원했지만 패전국가가 된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의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이로부터 약 4년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포클랜드가 아닌 멕시코 아즈테카 경기장에서 맞붙었다. 외신은 당시 두팀의 경기를 단순한 월드컵 8강전이 아닌 포클랜드전쟁 2라운드로 평가하며 주목했다.

팽팽한 0대0승부를 깬 것은 유명한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이었다. 후반전 들어 공격의 고삐를 당기던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손으로 골을 넣었다. 하지만 그 동작이 너무도 절묘해서 주심과 선심은 마라도나의 헤딩슛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골키퍼 피터 쉴튼과 잉글랜드 선수들은 격렬한 항의를 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마라도나의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에 또 한 골을 내준 잉글랜드는 후반 종료 10분 전 게리 리네커의 골로 추격했지만 경기를 뒤집진 못했다. 잉글랜드에게는 억울한 패배였지만 아르헨티나로서는 통쾌한 승리였다.

1978년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정상에 올려 놓은 명장 메노티 감독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정당하지 않았던 마라도나의 신의 손 골을 더욱 좋아한 이유는 정상적인 골보다 영국인들의 마음을 좀 더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한 바 있던 로베르토 페르푸모는 “1986년 월드컵 우승은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에겐 잉글랜드를 제압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며 당시 아르헨티나 국민의 심정을 대변했다.

***희망잃은 아르헨티나인들의 위안은 오직 축구**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보르헤스의 “축구는 재앙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르헨티나의 축구열기는 대단하다. 온 국민이 축구에만 정신이 팔려 경기장사고가 끊이지 않고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망가졌다는 자책의 뜻도 포함돼 있는 뼈아픈 표현이기도 하다.

2002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계속되는 경제위기에 신물이 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은행과 관공서앞에서 축구 유니폼을 입고 데모를 했다. 그들이 축구유니폼을 택한 이유는 단결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축구뿐이라는 사실도 숨어 있었다.

하지만 희망을 잃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줘야 했던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2002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아르헨티나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잉글랜드와의 대결에서도 패해 체면을 구겼다.

“새벽2시 마라도나가 있는 병원근처 성당에서 미사를 본 신부가 인파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처럼 흉할 정도로 살찐 모습의 악동 마라도나에 대해 아르헨티나인들이 더욱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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