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LA올림픽부터 한국의 메달밭으로 자리매김한 양궁 남녀국가대표선발전이 24일부터 시작됐다.
***올림픽메달 보장하는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 '좁은문'**
남녀 개인 및 남녀 단체에서 올림픽때마다 메달을 안겨줬던 양궁은 사실상 대표선발전이 올림픽보다 더 힘들다는 '거짓말'같은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여자부문은 한국에 견줄 상대가 없어 실질적인 메달경쟁이 국내선발전에서 시작된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개인부문에서 윤미진, 김남순, 김수녕이 나란히 금, 은, 동메달을 석권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진> 윤미진
양궁 국가대표 선발방식은 4월까지 4차례 선발전을 치러 남녀 8명씩의 대표선수를 뽑는 것. 하지만 일단 피말리는 경쟁을 통해 대표팀에 합류해도 5월말까지 다시 3차례 자체 평가전을 치러야 아테네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올림픽엔 남녀 3명씩밖에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양궁의 남녀간판스타인 장용호와 윤미진도 호시탐탐 대표팀발탁을 꿈꾸는 유망주들이 즐비한 대표선발전에선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한 윤미진과 김남순의 이듬해 대표팀탈락은 실력상 백짓장 하나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신인유망주들의 돌풍이 거세다는 걸 반증한다.
신인유망주의 등장은 항상 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대회에서 5관왕에 오르며 '신궁(神弓)'으로 불렸던 김진호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꽃돼지' 서향순에게 금메달을 넘겨줬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수녕을 제치고 조윤정이 정상에 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여고생 궁사 윤미진이 화려하게 등장한 바 있다.
24일 경기에서는 기존의 남녀 국가대표 선수들이 쾌조의 출발을 했다. 남자 부문에선 장용호, 임동현, 정재헌이 선두권을 달렸고 여자부에서는 박성현과 윤미진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국제양궁연맹의 제도변경, 한국 석권 막지못해**
올림픽과 세계대회에서 한국이 양궁종목을 휩쓸자 국제양궁연맹(FITA)는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경기방식을 바꿨다. 실력외에 승부의 의외성을 높이겠다는 게 FITA의 목소리였다. 그랜드FITA방식은 8명으로 선수를 추린다음 최종 36발의 화살로 메달색깔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랜드 FITA방식으로 치른 88서울올림픽에서도 금메달 3개를 차지해 세계최강임을 과시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FITA는 또다시 올림픽라운드라는 경기방식을 채택했다. 올림픽라운드는 1대1 토너먼트대결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두둑한 배짱과 상대성에 따라 승부가 결정나는 올림픽라운드 규정속에서도 한국양궁은 굳건히 제자리를 지켰다.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바람보다 더 강한 국내 유망주 돌풍**
아테네올림픽 양궁경기가 펼쳐지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은 해안지역에 위치해 강한 바닷바람이 승부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세계최강 한국 양궁의 간판선수들은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의 바닷바람보다 더 강한 국내유망주들의 돌풍을 잠재우는 게 첫번째 과제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2연패를 노리는 윤미진과 한때 극기훈련 거부로 대표팀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던 장용호가 당기는 활 시위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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