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 1년간 수차례 언론에 의해 문제시됐던 노 대통령의 '말'을 수사학(修辭學·rhetoric)적으로 분석한 전주대 이재현(영상예술학부)교수의 '수사적 대통령, 노무현-정치언어의 모더니즘'이란 논문이 최근 발간된 계간 <황해문화>에 실린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노 대통령 은 정치언어적 '모더니즘'을 성취한 첫 대통령"이며 "아직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수사적 '몸짱'"이라고 극찬했으며, 27일자 <청와대 브리핑>은 이를 한 면에 걸쳐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브리핑은 최근 대선자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 대통령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정치 수사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거나 설득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와 타협하면서 노무현의 모더니즘은 가다가 멈추었다"는 비판 부분은 소개하지 않았다.
***"盧 대통령 정치언어는 모더니즘적"**
이 교수는 "노 대통령이 포스트 식민지 남한의 정치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더니즘을 성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정치언어적 모더니즘은 진보진영에서 벤치마킹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라는 노무현의 신념은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양김은 불리한 상황에서 타협이라든가 지역 감정에 바탕을 둔 계보정치 따위로 돌파해야할 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이런 것들 없이는 정치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며 전 대통령들과의 차별성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노 대통령은 이전까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제도적으로 고착된 '비근대적' '권위주의적' 수사를 걷어내고 수평적 의사소통의 모더니즘적 수사학을, '천부적' 자질을 통해 반영해 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변호사로서의 훈련과 성공 그리고 정계 입문 이후 청문회 등을 거친 정치적 '피트니스'를 통해 일정한 정치적 몸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아직까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수사적 '몸짱'"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김재규 이래 쾌거"**
이 교수는 특히 노 대통령의 대표적 '실언'으로 평가되는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발언에 대해 "안중근 이래의 장거이며, 김재규 이래의 쾌거"라고 극찬했다. 그는 "수십년간 권위주의적 화법의 우산 아래에만 머물러온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며 "일찍이 국왕을 단두대로 보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통과의례를 거친 적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마침내 처형하는 체험을 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그 근거를 밝혔다.
그는 "노무현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그는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이 아니며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발언한다"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은 아주 얄미울 정도로 노회하게 담론과 발화의 테크닉을 부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또 방일시 일본 공산당 당수를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노무현이 발화한 것은 공산당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허용을 전제로 포함하는 가정법의 복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노무현이 아니라 야당의 빈약한 한국어 해독능력"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노 대통령이 취임 초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말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스스로에게만 반칙과 특권을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들면 권위에 맞서는 것이고 대들지 않으면 굴복하는 것으로 검사들로서는 이미 지고 시작한 게임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또 중국 조선동포들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해 서명을 하면서 "희미하게 써지네요. 마음은 진한데…"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마음의 농담(濃淡)'이라는 비유를 쓴 아주 타이밍이 끝내주는 탁월한 수사법"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브리핑, 논문서 盧에 대한 비판은 싣지 않아**
이 교수는 그러나 어려운 정국을 돌파해온 이같은 노무현의 수사학도 빛이 바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청와대 브리핑> 이같은 비판은 게재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노무현조차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아가며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는 관료 제도 속으로 후퇴해 이른바 통치를 하려고 시도한다"며 "자신의 정치 수사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거나 설득할 수가 없 는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와 타협하면서 노무현의 모더니즘은 가다가 멈추었다"며 "결국 수사학에도 윤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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