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4일 지난 대선 후보 경선자금과 관련, "십수억원 정도 썼을 것"이라고 규모를 처음으로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선거가 있는 해엔 6억원, 평년엔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어 2년에 걸쳐 노무현 대통령 측이 합법적으로 모을 수 있는 자금은 9억원이어서, 이 금액을 초과한 액수의 출처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경선자금에 대한 자진 공개 및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은 물론 당시 경선을 완주한 정동영 의장까지 논란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치 쟁점화를 극구 경계하는 분위기다. 검찰도 노대통령 발언으로 크게 부심하는 분위기다.
***盧 "솔직히 애기하라고 꼬여서 얘기하게 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십수억원 들었을 것"이라며 경선 자금 규모에 대해 밝혔다. 노 대통령은 "경선을 마치고 당 선관위에서 30억원의 합법적 경선자금을 인정해주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만약 실제로 그랬다면 훨훨 날았겠다는 생각을 후보로 확정된 뒤 가진 적이 있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경선자금 규모를 밝힌 경위에 대해 토론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오늘 솔직히 얘기하라고 해서 그 동안 비밀로 해왔는데 꼬여서 얘기하게 됐다"며 '우발적 발언'임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경선이 끝나고 관계자에게 '얼마를 썼느냐'고 물었더니 10억 조금 더 들었다고 하더라"면서 "기탁금 2억5천만원, 캠프 조직비용, 경선기간 숙박비 등을 대강 합치면 10억 조금 넘는 액수가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그 때 보면 후보 일행만 해도 수십명이다. 자동차 길이를 보면 위세를 안다. 나는 그러나 경호차도 없이 다녔고 한두대였다"며 '저비용 후보'였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밝힌 십수억원은 해수부장관을 마치고 노무현 캠프를 차린 시점인 지난 2001년 3월말부터 경선이 끝난 2002년 4월까지의 지출비용을 합산한 것"이라며 "본격적인 지출은 2001년 11월 무주대회에서부터 이뤄졌다"고 부연 설명했다.
지금까지 "경선자금 자료는 이미 폐기했다"며 공개를 거부해온 노 대통령은 이날도 경선자금 공개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포함해 경선자금을 밝히는게 법과 정의를 바로잡고 정치개혁을 하는데 꼭 필요하다면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결단할 수 있지만 지금 대선자금만 갖고도 고통스럽고 힘든 만큼 경선자금 문제는 공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민주, “검찰수사 자청해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대통령 발언이 있자, 경선자금 문제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와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노 대통령의 경선자금 발언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이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선거법상 한도를 넘은 것”이라며 “민주당은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을 고발했기 때문에, 검찰이 끝까지 추적하고 정상적인 사법처리가 안된다면 탄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경선자금 문제는 공방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노대통령 발언에 대해서도 조 대표는 “대선자금으로 고통스러우니 경선자금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어떻게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느냐”며 “자기가 꼭 검찰총장처럼 얘기하면서 자꾸 검찰에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이어 “(노 대통령이) 진실을 고백한 뒤 ‘정치권에 이런 관행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사면하자’고 해야 한다”며 경선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한화갑 전 대표를 염두에 두고 “어떻게 어떤 사람은 구속하자면서 자기만 고통스럽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장전형 민주당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이 진실하기 위해서는 경선자금의 입구와 출구도 밝혀야하며, 자금의 불법성 여부도 고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십 수억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아서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명백히 밝혀야한다”며 “규모를 밝힌 것으로 스스로를 면죄하려는 행위는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공정, 편파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은진수 수석부대변인은 “얼떨결에 ‘경선 때 십수억원을 썼다’고 실토했는데, 4억을 받아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화갑 의원의 경우에 비춰 형사불소추권의 보호막 뒤에 숨지말고 즉각 검찰의 수사를 자청해야 마땅하다”고 가세했다. 그는 “대선자금, 경선자금 비리에 관련해선 무턱대고 ‘남들보다는 덜하다’는 궁색한 생떼쓰기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는데, 너무나 떳떳치 못한 태도”라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당, 경선자금 쟁점화에 촉각**
반면 열린우리당은 경선자금 논란의 정치쟁점화를 극구 경계하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은 물론 당시 경선을 완주한 정동영 의장까지 논란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당은 이날 노 대통령의 경선자금 발언에 대한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다만 공보실의 한 관계자는 “경선 당시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이 어떻게 선거를 치렀는지를 잘 알고 있는 민주당 사람들이 이제와 경선자금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존립이 불안한 민주당의 마지막 카드가 네거티브 전술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검찰 당혹, "수사팀에서 참고할 것"**
검찰은 노대통령 발언에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대통령의 발언을) 수사팀에서 참고로 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언급,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검찰의 딜레마는 지난달 31일 민주당이 노 대통령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을 경선자금과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옴에 따라 대검은 이 사건을 중수1과에 배당, 이미 고발인 조사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노대통령의 '십수억 발언'이 터져나오니,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울 밖에 없는 형편이다.
검찰은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와 대선자금 수사도 적절한 시점에서 일단락짓기로 한 상황에서 경선자금 수사가 불거짐으로써 앞으로 한화갑 전대표 구속수사 등에서 적잖은 형평성 논란에 휘말려들 것을 내심 우려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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