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도 있다. 과적 화물차들을 추적하고 단속하는 '과적단속원'들이다. 캄캄한 밤, 도로 위 무법자가 돼 질주하는 과적 화물차를 전속력으로 쫓고 과태료를 부과한다. 심장이 '쫀득' 해지는 긴장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버텨내야 한다. 그런 이들이 없다면 혈세를 들인 도로는 얼마 못 가 웅덩이 투성이가 될 테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해 도로 위 '공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에 소속된 비정규직이다. 전국 18개 국토관리사무소에서 '국도 관리원(도로보수원+과적단속원)'이란 이름으로 11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1년을 일했든 20년을 일했든 똑같이 150만 원을 받는 무기계약직이다.
▲ 도로 보수 작업 중인 도로보수원들. ⓒ프레시안 |
공무집행방해죄 못 내세우는 공무집행자
이용준(41) 씨는 충북 보은에서 과적 차량을 이동 단속한다. 그는 자신을 '공무집행방해죄를 내세우지 못하는 공무집행자'라고 표현했다. 현행법상 공무집행방해죄는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는 죄'다. 국도관리원은 공무원이 아닌 탓에 과적 차량이 단속에 응하지 않고 행패를 부려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수신호를 보내 서라고 한다고 서겠어요. 경찰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니까…. 멈추라고 해도 무시하고 무섭게 달려나가는 게 다반사예요. 한 번은 앞에서 멈추라고 손을 흔드는데 그대로 달려와서 코앞에서 딱 멈추더라고요. 내려서 '너 한 번만 더 여기 서 있으면 다음엔 뭉개버린다'라고 하는데…. 정말 위험해요. 몇 번 죽을 뻔했어요."
한밤중 추격적을 벌인 끝에 과적 차량을 잡는다 해도, 계측기 위에 바퀴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심한 경우엔 칼을 들고 덤비기도 하고, 돌멩이 들고 '죽인다'며 달려드는 운전자도 있다. 화물 운임이 너무 저가라 과적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모르지 않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면 어쩔 수 없다.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어간다.
"바닥에 패드(무게를 재는 기계) 깔아놓고 바퀴 올리라고 하면, '웽' 하고 패드를 밟고 지나가요. 뒤로 약간 다시 움직이라고 하면 또 '웽' 하고 후진을 해버리고요. 면허증 보여달라고 하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옥신각신하는 데 써요. 단속 불응으로 최고 500만 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그러면 '다음에 눈에 띄면 뭉개버린다'는 협박이 나와요. 공무집행 방해를 하는 거지만 공무집행방해죄는 아닌 거예요."
▲ 과적 의심 차량의 무게를 재고 있는 과적단속원 모습. ⓒ프레시안 |
과적단속원 비정규직 비율 76퍼센트
이에 따라 이들은 수년째 공무원으로 직위를 변경해달란 요구를 하고 있다. 이 씨는 "과적 단속 업무는 무기계약직이 할 일이 아니라 공무원이 해야 하는 공무"라며 "과적 단속 실효성이 별로 없단 비판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단속 담당자 수백 명을 싼값에 비정규직으로 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국토교통부 산하 전국 18개 국토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과적단속원의 비정규직 비율은 76퍼센트를 넘는다. 국도관리원 관리규정에 따르면, 전체 과적단속원 788명 가운데 기능직 공무원은 70명, 청원 경찰은 11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602명은 '계약직'으로 분류돼 있다.
심지어 일부 사업소에는 기능직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고 이 씨는 말했다. 그는 "충북 보은과 충남 예산에는 정원표 상 공무원 정원이 각각 3명과 2명이 배정돼 있는데도, 단속 현장에는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며 "사실상 과적 단속 전체 업무를 공무원이 아닌 비정규직이 수행한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 도로 청소차를 청소 중인 도로보수원 모습. ⓒ프레시안 |
공무원이 죽으면 국가유공자, 비정규직이 죽으면 '개죽음'
위험천만한 도로 위에서 수행하는 일을 하는 만큼, 안타까운 사망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도로관리원 김종복(38) 씨는 "올해 6월에도 ○번 국도에서 이동 단속하던 사람 한 명이 죽었다. 수신호를 따라 후진을 하던 차가 단속원을 미처 못 봤다"며 "그런데 이런 사고가 났을 때 공무원은 순직 처리가 되지만, 계약직은 그대로 '개죽음'이다"라고 말했다.
도로보수원들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엔 △△ 지역 한 국도 가드레일을 보수 현장에서 유도 신호를 하고 있던 도로보수원이 큰 사고를 당했다. 차가 연이어 달려오다 보니 미처 보수원을 보지 못한 차가 "그대로 밀어버렸다"고 했다. 김 씨는 "산소 호흡기를 한참 달고 있다가 죽었다"며 "사무소에선 사직 처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라고 말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각 국토사무소는 더 많은 '사인 카(공사 현장에 세워두는 화살표 표시등이 달린 차)'를 구매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씨는 "보수 현장에 아무리 사인 카를 세운다고 해도, 사람이 유도 신호를 반드시 해야 한다. 사람이 없으면 대형 사고가 날 가능성이 더 커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거 안 바래요. 개죽음 안되게 해달란 거예요. 공무원들은 도로 위에서 일하다 죽으면 국가유공자가 되는데, 똑같은 일 하다 죽으면 우리는 그냥 개죽음이에요. 순직 처리는커녕, 조용히 사직 처리되고 말아요. 우리도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위해서, 그것도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고 해도, '몇 번 국도에서 누가 개죽음을 당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이 느껴져요."
ⓒ프레시안 |
같은 현장에 출동하는데 공무원만 받는 출장비
신분이 비정규직이다 보니, 작은 거 하나하나에서 서러운 차별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예컨대 도로를 청소하는 차량 운전은 기능직 공무원이 하고, 그 차량 안에 들어가서 청소하는 건 무기계약직이 한다. 같은 현장에 출동하는데도 이동 차량을 운전하는 공무원에겐 출장비가 지급되고 보수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는 무기계약직에겐 출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차별도 존재한다.
이는 현행 도로관리원 관리규정 15조가 "복무관리자(국토사무소)는 출장에 소요되는 비용을 '공무원여비 규정'에 준용하여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한 탓이다. '지급하여야 한다'가 아닌 '지급할 수 있다'로 정한 결과, 관할 사무소가 지급하지 않으면 그만인 셈이 됐다. 이 관리규정은 지난 8월 개정됐으며, 개정 전에는 출장비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관련 규정이 '개악'된 것이다.
도로관리원 이 씨는 "도로에 나가서 목숨 걸고 힘들게 일하는데, 작업할 때라도 식당에서 밥이라도 한 끼 제대로 사 먹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휴식 시간이 되면 출장비를 받는 공무원들은 인근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출장비를 못 받는 무기계약직들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공사 차량 안이나 길옆에서 적당히 끼니를 떼운다. 너무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관리규정 개정을 노동법에 반하는 '취업규칙 불이익'으로 보고, 관련 소송을 최근 제기했다. 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 받지 못했던 출장비도 소급해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잘 몰라요. 도로 옆 풀을 깎는 사람은 공익근무요원일 거로 생각하고, 과적 차량을 단속하는 건 경찰일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은 우리를 '투명인간'처럼 그냥 지나치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도로관리원들이 있어서예요."
ⓒ프레시안 |
국토교통부 "하는 일이 달라 생기는 차이…호봉제 논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국토교통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국토부 도로보수원 담당 관계자는 "도로보수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국토부에서도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며 "호봉제 도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적단속원 담당 관계자는 "기능직 공무원과 무기계약직이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며 "각각 고유의 업무를 맡는, 따로 따로 채용된 사람들이라 신분이 다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공무원 신분이 아닌 탓에 단속 업무에 제약과 불편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선 "단속당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 험한 말이나 행동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라며 "법을 집행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경찰서, 공항,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가 받는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편집자>
* 경찰서, 공항,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가 받는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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