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TV 토론회에서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다 드릴 것"
본래 기초노령연금은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약 300만 명)에게만 지급돼왔다. 박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공약'은, 기초노령연금 수급자를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이었다.
18대 대선 당시 60대 이상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20.8%(842만8748명)를 차지했다. 21.8%(881만3045명)를 차지하는 40대의 뒤를 이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지지율은 72.3%(방송3사, 코리아리서치, 미디어리서치, TNS 출구조사 결과)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이 지지율이 박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공약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는지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발상이, 대선 기간 내내 박 대통령이 내세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부합하는 대표 공약으로 등장했음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 스스로 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에 대해 수차례 발언했음은 물론이다. 후보로서 대한노인회를 방문했을 당시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을 도입하게 되면 연금을 내시지 않더라도 월 20만 원 정도 보장을 받으실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공약집에 담긴 기초노령연금 인상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초노령연금은 급여 수준(2012년 9만4600원)이 너무 낮아 일생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애쓰신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음. (중략)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 지급."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16일에 열린 3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도 기초노령연금은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기초노령연금이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이때 나온 발언은 아래와 같다.
문재인 : 노인 빈곤율을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시절에 2008년도 총선 때 '어르신들의 기초노령연금을 9만 원에서 36만 원으로 3배를 높이겠다' 그렇게 공약했었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한 푼도 안 올리지 않았나. 우리 민주통합당이 지속적으로 요구를 했는데 끝내 반대하지 않았나? 다시 선거 때가 되니까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올리겠다'고 공약을 하시는데 그랬으면 새누리당 정부 때 진즉 올렸어야 하지 않았나.
박근혜 : 기초노령연금과 관련해선 저도 그 당시에 '이것을 2배 정도 올려야 하지 않느냐'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기초노령연금이 아니라 그것을 국민연금 체제에 포함을 시켜서 그렇게 되면 비용도 줄일 수 있고. 기초연금은 65세(이상) 모든 국민들에게 다 드릴 수가 있고 그 위에 소득비례연금으로 해서 생활이 될 수 있도록 그거는 이제 국민연금을 낸 분들이 보탤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더 완벽한 노인소득보장을 저는 이번에 공약했다. 오래전부터 주장을 해 온 거고 꼭 실시를 하려고 했는데, 지난 정부에서 제가 보건복지위에서 주장을 해도 잘 안 됐다. 그래서 뜻을 이루지 못한 건데 이번에 제가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꼭 이것은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선이 끝날 때까지 박 대통령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이때부터 이미 기초노령연금 공약의 파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 지난해 11월 5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이심 대한노인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재원 부족 논란에…"국민연금 가입 못 한 분들에게 20만 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시기부터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생겼다. 새누리당은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이행하는 데 4년간 14조6672억 원이 필요하다고 계산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인수위 업무 보고를 통해 한 해에만 7조~9조 원이 필요하다고 전한 것. 매년 복지부가 추산한 최소 금액인 7조 원이 들어간다고 단순계산해도, 4년 동안 28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재원이 부족하다는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1월 1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에 편입, 기초연금화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제도가 완비되고 재원이 마련되면 내년(2014년)부터 하게 될 것"이라고 슬쩍 말을 바꿨다.
취임을 앞두고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 대통령도 당의 말을 반복했다. 박 대통령은 1월 28일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민연금에 가입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에게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깔아주고,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는 분들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기초 부분(균등 부분)이 20만 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 재정으로 채워주는 방식"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하겠다"
결국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주겠다던 공약을 철회한 것이다. 대신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 노인에 대한 선별적 복지로 전환한 셈이다.
여론 부글부글…"어른에게 언어유희하느냐"
오는 26일 발표될 예정인 정부 예산안에는 65세 이상 노인의 70~80%가 지급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액은, 소득이나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bu***는 "무조건 20만 원 드린다는 공약이 아니었다"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발언에 대해 "어르신들을 어리석게 보고 조삼모사식 언어유희가 시작되고 있는 듯"이라고 꼬집었다.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교수 역시 트위터(@histopian)에 "기초노령연금 거짓말 공약은 대통령이 했는데, 복지부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한다는군요. 무슨 '넘버3'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대통령의 책임지는 방식이 조폭두목과 같으면 나라 수준도 '넘버3'가 되는 거죠"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 역시 트위터에 "검찰개혁도 물 건너가고 20만 원 기초노령연금지급도 물거품되고…이제 이탓은 누구에게 돌린런지요"라고 우려했다. 무소속 송호창 의원은 "'신뢰와 원칙'을 걸고 국민의 마음 얻었습니다. 경제민주화 공약포기에 이어 이제는 복지공약까지 포기하시렵니까?"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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