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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정치개혁과 거리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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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여야 모두 정치개혁과 거리 멀어"

<손호철교수 인터뷰> '포퓰리즘은 盧의 양날의 칼"

끊고 맺고가 분명한 '정치논객' 손호철 교수가 독하게 마음먹고 여야 모두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국회 정개특위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가 몇달간 어렵게 마련한 정치개혁안을 당리당략에 따라 마음대로 재단하는 반정치개혁적 현실에 대한 질타다. 아울러 노무현대통령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개혁 대 반개혁 전선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성토했다.

이런 식으로 총선국면이 진행되다가는 정치개혁은커녕 정치공황적 위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도농복합선거구제, 전형적 게리맨더링"**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인 손호철 교수(서강대)는 26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비상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타결은 어렵다"며 "국회의장이 정개협 안을 직권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4당이 정개협 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할 듯한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나 각 당이 당리에 의해 정개협 안을 수정하는 것을 보고 지금은 실망이 더 커졌다"며 "국민적 시각에서 정치개혁을 주도하기보다는 특정 정당의 입맛에 따라 안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손 교수는 우선 야3당이 타협한 지역구 증원 방안과 관련, "야3당이 내놓은 안은 개악일 뿐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축했다. 선거에서 60%에 달하는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을 살리기 위해 정개협이 제안한 비례대표 증원은 거부한 채, 지역구만 늘린 타협안은 밥그릇 챙기기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

손 교수는 이어 여당에 대해서도 "지역구를 지키려고 하는 야당 의원들의 책임이 크지만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혼란의 책임이 있다"며 "자기 당리당략에 맞춰서 (정개협 안에서) 받을만한 것만 받고 못 받을 것은 피하니 한나라당이 자기 유리한대로 끌고 갈 빌미를 줘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요구하는 중대선거구제와 관련, "중대선거구제는 기성정치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카르텔"이라며 "정치신인들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게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세계적으로도 폐기하고 있는 제도"라고 분명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도농복합적 선거구제에 대해선 "전형적인 게리멘더링(당리당략에 따른 선거구 개편)"이라며 "게다가 책임총리제를 조건으로 내세웠는데, 돈 놓고 돈 먹기가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손 교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당들이 약속한 대로 정개협 안을 수용하는 것"이라며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개협이 현실정치까지 수렴해서 종합적으로 제시한 것이 소선거구제 유지라면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그은 대치선이 개혁을 위한 것인가"**

손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을 표했다. 그는 "김진표 장관으로 대표되는 관료들이 하는 보수적 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며 "우리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현실주의자 노무현이 대통령선거 기간동안 개혁적인 인사로 비춰졌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예컨대 자주를 말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세계 힘의 구조와 미국의 힘을 알면서 자주를 말하는 방식과 무식하고 용감해서 미국의 힘을 모르고 자주를 말하는 방식이 있는데, 노 대통령은 후자의 경우"라며 "잘 몰라서 자주와 반미를 외치다가 막상 대통령이 돼서 미국의 힘을 느끼게 되니까 방향을 돌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 교수는 이어 "개혁적 정부는 내용은 급진적이면서 그 형식을 부드럽게 해야 적을 많이 만들지 않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노 대통령식 개혁은 내용은 보수적인데 형식이 급진적이라 쓸데없는 적을 많이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노 대통령은 과거의 진보적인 이미지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그 때문이 아니라 정책이 원칙 없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라며 "어차피 보수로 갈 바에야 헷갈리지나 않게 겉도 보수로 가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손 교수는 또 노 대통령이 노사모의 총선 지원을 호소한 발언 등과 관련, "일종의 대치선을 명확히 해 대치선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결집하는 전투적 리더십인데, 이는 야당지도자로서는 적합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개혁을 위해서 개혁과 반개혁 간의 대치선을 명확히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현재 대통령의 대치선이 그러한 기능을 하느냐"며 "노동문제, 부안문제, NEIS, 이라크 파병 등 모든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거기서 대통령이 그은 대치선이 과연 개혁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노 대통령은 아집과 자신을 둘러싼 내부 논리구조에 빠져 민심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소수파였던 과거를 털어내고 좀 더 열린 자세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국정을 풀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다음은 손호철 교수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이다.

***"야3당 안은 개악, 도농복합선거구제도 게리멘더링"**

프레시안: 선거법 협상 전망이 밝지 않다. 해결방법이 없겠나.

손호철: 당장 총선 결과와 연관돼 있는 문제라 쉽게 해결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다. '부패정치 추방과 정치개혁 실현을 위한 비상시국회의'가 지적했듯이 가장 빠른 방법은 정당들이 이전에 약속했던 대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의 안을 수용하는 것이다. 정개협을 발족시킨 것은 국회의장이었다. 정개협은 명목상으로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자문기관 성격이었지만 국민적 합의체로서의 성격도 있었다.

지금은 국회의장이 수동적으로 있을 것이 아니라 4당 대표를 모아놓고 정개협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거나 정개협 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때다. 이런 비상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타결은 어렵다. 기존 정치권의 안이 아니라 정개협의 안을 갖고 4당을 설득하고 받아들이도록 의장이 직권상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내년 총선의 룰을 정하는 것인데 당사자들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모순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손호철: 그렇다. 정치개혁이 정치권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냐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국회가 그 권한을 갖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개협을 구성한 것은 절충적 방식이었다. 정개협이 구성됐고, 대선자금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높고, 헌재에서 전국구제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등 정치권에 대한 정치개혁 압박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4당이 정개협의 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할 듯 해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나 각 당이 당리에 의해 정개협의 안을 수정하는 것을 보고 지금은 실망이 더 커졌다.

프레시안: 의원정수와 관련해 정개협은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안인데, 당초부터 정치권 이해관계상 수용될지는 의문이었다.

손호철: 어떤 안이든 실현 가능성이 고려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개혁은 정치 개혁의 대상들이 정치개혁의 주체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래서 국민적 시각에서 정치개혁을 주도하기보다는 특정 정당의 입맛에 따라 안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정개협 안은 정치권의 입김과 시민단체의 요구를 적당히 섞은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시민단체나 정치개혁연대가 지향하던 의원 구성은 비례대표 1백50명, 지역구의원 1백50명을 뽑는 일대일 독일식 정당구조였다. 개인적으로 정개협 안이 지역구 의원대 비례대표를 각각 1백50명씩 뽑자고 주장했어야 이후 정치권이 협상해서 지역구 2백명, 비례 1백명 정도의 타협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타협적인 안으로 시작하니 밀린 것이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의 의미는 선거제도의 핵심인 표의 등가성을 살리고, 사표를 죽이자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현재 선거제도에서 전체 투표한 표의 60퍼센트 정도가 사표일 것이다. 대략 40퍼센트 정도 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고 나머지가 60퍼센트를 나누어 먹고 떨어지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 가장 옳은 방식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석 비율을 반반으로 하면 국회의원 의석수를 1백석 이상 줄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타협적으로 지역에 따라 1대 4에 가까운 유권자 수 차이를 1대 3 이하로 줄여 인구 하한선과 상한선을 12만~36만 정도로 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없어지는 선거구가 생겨 지역구 의석은 자연스럽게 1백99석이 될 수 있다.

정개협 안에서도 국회의원 정수는 2백72석에서 2백99명으로 늘어난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를 늘리고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채택된 것이다. 일정정도 비례대표를 늘리는 데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의원수가 늘어나는 데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해 주리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야 3당의 타협안처럼 비례대표는 그냥 두고 지역구만 늘이는 방식은 말이 안 된다. 최악의 경우는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의원 정수를 동결하는 방안이 차라리 낫다. 그러나 야 3당이 지금 내놓은 안은 개악일 뿐 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밥그릇 챙기기다. 비례대표 비율을 줄이고 있는 셈이 아닌가.

프레시안: 비례대표를 추천하는 공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례대표만 늘인다고 정치개혁에 큰 도움이 되겠는가.

손호철: 지역구도 마찬가지지만 전국구 후보들의 명단 작성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가 선행돼야 함은 자명하다. 비례대표를 늘린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물론 정치개혁은 아니다. 정당 민주화에 따른 비례 대표 명부 작성의 민주화가 먼저 보장돼야 한다.

프레시안: 그런면에선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는 중대선거구제도 정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은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손호철: 우선은 지역구를 지키려고 하는 야당 의원들의 책임이 크지만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에도 혼란의 책임이 있다. 정개협 안이 나오면 힘을 실어줘서 통과되도록 해 줘야 하는데 여당도 자기 당리당략에 맞춰서 받을 만한 것만 받고 못 받을 것은 피하고 하니 한나라당이 자기 유리한대로 끌고 갈 빌미를 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중대선거구제는 기성정치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카르텔이다.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그 효과도 의심받는 게 사실이다. 정치신인들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게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세계적으로 폐기하고 있는 제도다. 열린우리당이 오늘 타협적으로 도농복합적 선거구제를 얘기했는데, 이것도 전형적인 게리멘더링이다. 게다가 책임총리제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나. 돈 놓고 돈 먹기가 아니냐.

프레시안: 노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에 너무 강하게 집착하기 때문 아니겠나.

손호철: 충분히 이해가 된다. 기성정치에서 노 대통령만큼 지역주의와 싸운 사람도 없었다. 중대선거구제가 있었더라면 노 대통령도 쉽게 국회 진출할 수 있었으니 집착하는 이유는 알겠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정개협이나 시민사회 사람들이 지역주의의 문제점을 모르겠나. 그러나 다 현실정치까지 수렴해서 종합적으로 나온 방안이 소선거구제 유지라면 존중해 줘야한다.

***"정치자금 원안보다도 개악"**

프레시안: 정개협이 주장한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로 가면 효과가 있겠나.

손호철: 물론 시민단체 안에서도 정개협 안을 두고 의견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를 정하는 정당명부를 전국권으로 할지 권역별로 할지에 대해 단체마다 의견이 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전국 단위로 하자는 정개협의 안이 더 나은 것 같다.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할 경우 소외된 그룹의 사람들을 상위권에 올리기가 힘들어 진다. 정치신인이나 신생 정당에서의 정계진출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이다. 비례대표가 총 4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어느 정당이 전국에서 5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고 하면 비례대표 2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권역별로 할 경우 각 권역마다 소수점 이하의 지지를 받았을 테니 한 석도 건지지 못하게 된다.

프레시안: 정개협 안 중 선거법 협상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지만 정치자금 투명화라든지 핵심사항은 대부분 후퇴했다.

손호철: 하도 많은 얘기들이 밀려나와서 다시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 상황이기 하지만 선관위 권한 축소 문제 같은 것은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의 반발이 워낙 심해 원안대로 돌아갔다.

정치자금부문은 원안보다 개악된 측면이 있다. 선거운동에 대한 얘기도 그렇다. 선거운동은 다른 나라처럼 선거운동 기간을 두지 않고 완전히 푸는 방식이 고려돼야 한다. 기존 방식은 정치신인에게 너무 불리하다. 기존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원의 경우는 선거운동하기가 여러 방면에서 훨씬 유리하고 정치 신인들은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선거운동이 가능한 상화에서 신인들의 정계진출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렵다.

프레시안: 어쨌든 지금대로라면 총선에서 지역주의 극복은 기대하기 어려워보인다.

손호철: 나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아주 비관적으로 봐서 이번 총선이 최악의 지역주의 선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 역시 낙관적이지는 않다. 지역주의 극복은 제도에 의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중대선거구제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

프레시안: 정공법이란 무얼 말하나.

손호철: 정치를 잘 해서 각 정당이 이념적, 정책적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을 선출할 수 있는 근거가 지역의 차이가 아니라 정책의 차이가 될 수 있도록 정당이 차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정치개혁을 위해서 낙선운동까지 할건가.

손호철: 시민단체 핵심적인 사람들끼리 모여 '부패정치 추방과 정치개혁 실현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시국회의)를 구성했다. 언론의 관심이 낙선운동 부분이라 기자회견 끝나고 나오는 자리에서 일부 구성원들이 낙선운동 계획이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 개인의 견해이지 시국회의 조직의 견해는 아니다.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조직도 있고 긍정적인 운동으로 나가서 지지운동을 하겠다는 조직도 있다. 어떤 조직은 직접 정치참여로 나가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시국회의 차원에서는 낙선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개인적으로는 총선에 어떻게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손호철: 개인적으로는 부정부패를 해결하는 관건은 시스템이라고 본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이번 불법 대선자금 공방에서 빠져있고 공세의 칼을 쥐고 있지만 과연 민주당과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 비해 깨끗한 당인가. 그렇지 않다. 단지 당시에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를 2000년 총선으로 넓혀 가면 오히려 민주당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한광옥, 권노갑, 박지원 등 김대중 정권 실세들이 죄다 감옥에 가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의 부패정치인과 비부패정치인을 나누는 작업이 의미가 있는가 회의가 든다.

따라서 낙선운동이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에 부정적이었던 이유중 하나가 낙선의 기준을 부정부패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부정부패 더 큰 중요한 문제가 많다. 부정부패인사들은 낙선돼야 하고 반인권, 반노동 인사들은 당선돼도 되는가. 후보의 청렴도를 강조하다 보니 정책적 측면이 죽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깨끗한 사람을 뽑아놔도 새로운 부패의 길로 가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방법으로 낙선운동보다 더 간단한 것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서 부정부패 인사들은 사면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사면권을 제한하고 그 사람들 공직후보에 출마 못하도록 규정하면 더 이상 낙선운동 필요 없어진다. 문제를 제도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진표로 상징되는 보수적 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

프레시안: 참여정부 집권 1년이 돼가는데,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해 달라.

손호철: 이 역시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당정분리, 검찰권의 독립 등 일정하게 긍정적인 기능을 한 부분들이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개혁 부분도 정권 초기에 힘이 있었을 때, 빨리 했으면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는데 미루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그 외 노동, 복지, 대외정책, 대미관계 등 온갖 곳에서 사실 실망스럽다. 노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의 주류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사람만 바뀌었지 내용은 주류에 편입된 것이라고 본다.

2기 내각은 관료중심으로 코드정치를 벗어났다고 보수언론들이 칭찬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사실 코드정치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코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개혁이라는 목적을 위해 개혁적 코드를 가진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책이 보수지향이면 개혁적 인사가 왜 필요하겠나.

지금까지의 보수적 정책 기조를 보면 2기 내각이 관료 위주로 가는 것은 어찌보면 정상이다. 윤덕홍 장관이 개혁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NEIS 문제를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면 어떤 개혁적 인사가 필요했겠나. 차라리 보수적인 이상주 전 장관 같은 사람이 해도 되는데. 고영구 국정원장, 테러방지법 그렇게 할 바에야 왜 기용했나. 정형근 의원 앉혀놨어도 똑같지 않았겠나.

지금 노 정권의 기조에서는 김진표 장관으로 상징되는 관료들이 하는 보수적 정책이 노무현 정부 정체성을 상징한다. 나는 이 기조가 원래 노 대통령의 성격이었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현실주의자 노무현이 선거기간 동안 개혁적인 인사로 비춰졌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자주를 말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세계 힘의 구조와 미국의 힘을 알면서 자주를 말하는 방식과 무식하고 용감해서 미국의 힘을 모르고 자주를 말하는 방식이 있다. 노 대통령은 후자의 경우였던 것 같다. 잘 몰라서 자주를, 반미를 외치다가 막상 대통령이 돼서 미국의 힘을 느끼게 되니까 방향을 돌린 것이다.

원래 개혁적인 정부는 내용은 급진적이면서도 그 형식을 부드럽게 해 가는 것이다. 그래야 적을 많이 안 만들고 추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식 개혁은 내용은 보수적인데 형식이 급진적이라 쓸데없는 적을 많이 만들었다.

프레시안: 2기 내각에 대해서도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손호철: 개혁적 코드에 맞춰서 인사를 하고 실제 개혁을 해하는 방법이 있다. 반대로 보수적인 정책일 펼치려면 겉도 보수로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전자지만 어차피 보수로 갈 바에야 헷갈리지나 않게 겉도 보수로 가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노무현 정부는 개혁정부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인가.

손호철: 노 대통령은 세상을 몰라서 개혁적이었던 것이다. 노동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나. 대기업 노조를 '노동귀족'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 돼서 다양한 것을 보고 나니 과거 친노동자적 생각이 바뀐 것이다.

프레시안: 김대중 정부와 비교하자면 어떤가.

손호철: 그런 의미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엄청난 내공이 있는 사람이다. 김 전 대통령은 감옥에 오래 있는 동안 책을 많이 읽어 정책에 깊이가 있어도 급격한 변화를 만들지 않았으나 노 대통령은 급격한 변화를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IMF 환난 시절 김대중 대통령도 반노동적인 정책을 많이 펼쳤으나 '노동귀족'이니 하는 과격한 발언을 하진 않았다. 노동자 편이라고 믿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노동자들 죽어 나가는데 '죽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식의 강경론을 펼치니 국민적 반감만 커지고 있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은 정치철학부터가 비교가 안되는 사람이었다.

***"盧, 아집에 빠져 민심에서 이탈했다"**

프레시안: 노무현 정부가 개혁정부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겠나.

손호철: 결국은 초심으로 돌아가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에 관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대통령이 아직 마이너러티 멘탈러티(Minority Mentality 비주류 정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비판을 수용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자신이 과거의 진보적인 이미지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은 진보적인 이미지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정책상의 원칙이 없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노 대통령은 아집과 자신을 둘러싼 내부 논리구조에 빠져 민심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항상 소수파에 속해왔고 소수파로서 승리해왔다. 그러니 누가 비판을 하면 과거의 개인적 경험이 먼저 살아나 '과거에도 나를 공격하더니 또 그런다. 너희들이 비판해 왔지만 결국은 내가 이겼다'하는 방어본능이 먼저 작용한다. 비판이 오면 수용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보호본능, 방어본능이 작용하는 것이다. 소수파였던 과거를 털어내고 좀 더 열린 자세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국정을 풀어가는 자세 필요하다.

또한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해 나가야 한다. 안정적으로 운영을 해 나가려면 제도의 기능을 살려 나가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시스템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즉흥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어 혼란 자초하고 있다.

프레시안: 노 대통령은 얼마 전 노사모에게 총선에 다시 한 번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 재신임 발언도 그렇지만 정국 타개 방식으로 친위부대나 국민과의 직거래를 선호하는 것 같다.

손호철: 소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고 말 하는 방식인데 노 대통령의 장점이자 단점인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대치선을 명확히 해 대치선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결집하는 전투적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투적 리더십은 야당 지도자로서는 적합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또 노 대통령이 대치선을 긋는 이유도 모르겠다. 개혁을 위해서 개혁과 반개혁 간의 대치선을 명확히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현재 대통령의 대치선이 그러한 기능을 하는가. 노동문제, 부안문제, NEIS, 이라크 파병 등 모든 문제가 불거나오고 있지만 거기서 대통령이 그은 대치선이 과연 개혁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프레시안: 이르긴 하지만 내년 총선을 전망하자면.

손호철: 한국정치는 너무 가변적이기 때문에 지금 뭐라고 얘기하기가 시기상조라고 본다. 선거구제 등 게임의 룰이 어떻게 될지, 대선 비자금 문제는 어떻게 될지, 특검에서 비리가 정말 나올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결국 연합을 할지 등등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있다. 지역바람이 불 것인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중심으로 수도권 바람이 일 것인가, 표 쏠림현상이 어디로 일어날 것인가 등등 결론 내릴 수 없는 것들이 허다하다.

프레시안: 대통령 재신임 문제는 총선과 연계시키는 쪽인 것 같은데.

손호철: 이미 헌법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났으니 정치적, 상징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다.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하고 재신임 묻는 편이 바람직하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서 권고할 만한 방향은 아니다. 우선은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 끝나봐야 알겠고, 대선자금 검찰조사가 끝나면 민주당도 특검을 준비하고 있으니. 재신임이 총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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