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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검', 그리고 광활한 역사의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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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검', 그리고 광활한 역사의 들판

김민웅의 세상읽기 <131>

도대체가 서극 감독의 연출력과 상상력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무척 주목이 됩니다. 청조 말엽 중국의 새로운 민족적 의지를 표상하고 있는 작품 '황비홍' 이후 서극의 주된 관심은, 중국의 정사(正史)에 뿌리를 두고 이뤄내야 할 한족(漢族)의 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과 중국, 그리고 홍콩 영화계가 합작한 <칠검(七劒)>은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예리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서극의 <칠검>을 보면, 대나무 숲의 검술로 눈을 끌었던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臥虎藏龍)>이나 현란한 칼춤과 북의 만남으로 관객을 압도했던 장예모 감독의 <연인(戀人)>, 또는 역시 장 감독의 <영웅(英雄)>이 보여주었던 싸늘한 정통 검법 장면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격렬한 시대와, 그 역사의 파고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자들의 웅장한 기세, 그리고 각기 다른 몸과 영혼이 통하듯 하나가 되는 무기의 절묘한 미학을 열정적으로 뿜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홍콩 영화계에서 성장한 서극 감독이 자신의 내면에 채워져야 할 중국적 혼에 대한 열망을 추구하면서, 이를 화면에 옮기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개인사의 측면에서 그 집요함에 놀라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서극'이 과연 '서극'다울 수 있는 까닭은 그가 그러한 갈망을 광활한 역사의 무대에서 펼쳐나가는 노력을 진혀 후퇴시키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때는 1660년경, 명과 청의 교체기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 명조의 몰락한 장수 풍화연성은 돈을 받고 용병의 역을 자임하면서 만주족이 세운 청조의 미래에 장애가 된다고 여겨지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맙니다. 청조에 저항하는 자들의 무장해제를 위해 국법으로 금무령(禁武令)이 내려지고, 이에 불복하는 자들이나 이에 따라 무장을 푼 자들 모두가 구별 없이 야만적으로 학살당하고 맙니다.

이에 과거 한때 명의 사형집행인이자 무술의 고수인 부청주가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나서게 되고, 당대의 최대 검술가 회명의 제자들을 규합해 '칠검'의 위력으로 풍화연성과 대결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현란한 대목은 천산의 신기를 품은 검들이 이들 검술의 달인 하나하나에 어울리는 능력으로 백성들을 지켜내고, 결국에는 청조의 중심으로 진격할 것이 암시되면서 '칠검'이 상징하는 한족의 새로운 위업에 대한 열정을 토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상상력 풍부한 촬영 기법은 물론이고 장면 장면마다 드러나는 절정고수들의 움직임은 앞서 언급했던 영화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고, 로마시대 검투사를 다룬 <글레디에이터(Gladiator)>나 아더 왕의 명검 이야기인 <엑스칼리버(Excalibur>와도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문화적 탁월함이 눈에 띕니다. 물론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의 과제와, 새로운 유형의 중화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의 착잡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영화가 내놓은 시대극 <형사>나 <혈의 누>와는 그 다루는 역사적 상황의 규모나 사고의 범위가 뚜렷하게 비교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호흡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거침없이 산맥을 타고 넘는 기세와, 장강을 단숨에 건너는 의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려는 치열한 구도의 과정, 그리고 혼란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그대로 뛰어드는 매력적인 영웅의 면모 등등이 풍부하게 담겨진 영화를 보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의 문화적 심성은 색다른 즐거움과 상상력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의 정치나 사회가 요즈음 너무 졸렬해지고 왜소하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서극의 영화가 반어법적으로 일깨우고 있는 한 충격의 파편인 듯 싶습니다. <역도산>이라는 태산의 힘을 가진 영웅조차 일본 야쿠자의 졸개에 의해 치졸하고 허무하게 죽는 위인으로 만들어버린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함께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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