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원로 지식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원로들의 고언이 쏟아졌다.
노대통령은 5일 원로지식인 13인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하며 고언을 청해 들었다. 이같은 원로지식인들과 만남은 최근 노대통령이 비판여론을 수렴하는 쪽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한층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투병 파병은 절대로 안된다"**
이날 원로지식인들은 노 대통령에게 이라크 추가파병, 남북 정책, 새만금 문제 등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정치는 역사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라며 "이라크는 의료, 건설 지원을 원하지 전투 부대를 원치 않는다. 긴 눈으로 보고 역사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백낙청 시민방송 이사장은 "베트남 당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상황이 빠르게 변해 모술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고 비전투병을 보내도 위험할 수도 있다"며 파병 자체에 부정적 견해를 제시했다. 백 이사장은 "비전투병도 안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잘 고려해 결정했으면 좋겠다. 전투병도 아니고 미국과 관계도 깨지지 않도록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새만금 공사도 중단해야"**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은 "파병은 문화사적 흐름을 읽고 판단해 달라. 힘으로 푸는 시대가 지났고 지혜로 푸는 시대가 도래했다. 군대를 보내는 것은 힘으로 하겠다는 것이다"며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장 총장은 또 "새만금 문제도 10년후 흐름을 생각해보면 분명하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이돈명 변호사는 "국내문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고 잘 풀려가고 있다고 본다. 국내문제나 재신임 문제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남북관계에 신경 써달라"고 각별히 당부했다. 이 변호사는 "남북관계가 가까워지고 실질적으로 풀려가는 방향으로 자리잡는 게 참여정부의 큰 공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인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북한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북한정권에 대한 지원은 상당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면서 "북한의 실상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대처해나가는 지도력을 발휘해 달라"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신경써 줄 것을 당부했다.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도 "북측에 돈을 주는 게 문제라면 독일의 경우는 퍼준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동독에 돈을 줬다. 북한이 덜 가난해야 통일부담이 덜 하다"고 말했다.
***한완상 "감옥은 들어갈 때 기분 나쁘고 나올때 좋은데 청와대는 그 반대"**
한완상 한성대 총장은 "참여정부가 평화번영정책 펴면서 햇볕정책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을 강조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며 "한미동맹 민족공조 모두 강화되는 청사진이 설득력이 있다. 윈-윈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총장은 또 "청와대와 감옥이 다른 점은 감옥은 들어갈 때 기분 나쁘고 나올 때 좋은데 청와대는 들어갈 때 기분 좋지만 나올 때 나쁘다는 것"이라며 "늘 감옥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만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 총장은 또 "대통령이 솔직하고 겸손한 점이 돋보이는데 권위주의는 청산하되 권위는 세워 달라"고 덧붙였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묻혀 개혁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며 "개혁이 지속돼야 하는 점을 분명히 밝혀달라"고 지적했다.
또 박성래 한국외대 교수는 "언론과 좋은 관계를 가져나가는 것에 대해 좋다. 지지자와 비판을 모두 아우르는 대통령이 돼 달라"고 말했으며, 유창우 영남대 명예교수도 "보수적 생각을 가진 사람 만나서 적극적으로 토론하면서 오해 없도록 이해시켜야 한다"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을 주문했다.
***盧, "구태와 잘못된 관행을 깨끗히 청산하겠다"**
이같은 원로들의 고언에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찬 인사말에서 “제가 잘 될 때는 여러 어르신이 안 보이고 제가 어려울때는 어르신들 생각이 난다”며 “길게 보면 역사이고 짧게 보면 정국인데 그것이 국내외로 얽혀있고 또 때로는 먹고 사는 일도 걱정해야 한다. 여러가지 인데 편안하게 말씀해 달라”고 원로들의 기탄없는 조언을 부탁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저도 이 상황이 부담스런 혼란으로 끝날 것인지 새로운 질서 창조를 위한 진통이 될지...내 희망은 후자지만 어떻게 굴러갈지 걱정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원로들의 조언을 들은 뒤 노 대통령은 조선시대 태종이 세종 시대를 열은 기반을 닦은 것을 언급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와서 보니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다. 새 시대 첫차가 아니라 구시대 막차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새시대로 안내하는 다리가 되겠다. 구태와 잘못된 관행을 깨끗하게 청산해 다음 후배가 다시는 흙탕길을 걷지 않도록 하겠다. 그래서 다음 정권은 더욱 잘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엔 모든 문제가 대통령 결단으로 이뤄졌으나 이젠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만들어 결과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프로세스엔 동의하도록 신뢰와 권위를 높이려 한다"며 "합의되고 결정된 것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 "참여정부 들어 권력과 언론 관계에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며 "브리핑 제도가 진전되고 있고 언론을 대하는 공무원 자세도 서로 조심하는 관계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감정적 요소를 누그러뜨리고 합리적 긴장 관계로 갈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위상이 정립되고 있다고 본다"며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언론과의 관계를 가져갈 것"이라고 말해 재차 언론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오찬은 낮 12시부터 1시55분까지 1백15분간 차분하면서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윤태영 대변인이 전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