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여 개의 가게가 밀집한 수산시장에서 일본산 수산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텅 비어버린 시장은, 이미 소비자들의 '방사능 공포'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수산물 전체로 번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소비자의 공포는 곧 상인에게 생계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상인들은 "이렇게 장사가 안된 적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일본산이고 국내산이고 간에 바다에서 나는 것은 아예 안 먹으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하루 세끼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
변산수산 주인 신일옥(여·57) 씨는 대합, 모시조개 등을 팔고 있다. 대부분 국내산이지만 수산시장에 오는 사람 자체가 없으니 장사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작년 이맘때에 비해 매출이 60% 정도 줄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삼시 세끼는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국회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량진 수산시장의 경우 판매량이 14%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인들 사이에선 매출이 최소한 절반은 줄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부건꽃게 주인 정식연(여·60) 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추석 대목인데 사람이 하나도 없고 예전 평일만 못하다"며 "게는 일본 방사능과 아무 상관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판매하는 킹크랩은 노르웨이·미국산이고 대게는 캐나다·러시아 산이다.
▲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정치인들 줄지어 방문하지만…"차라리 일본산 전면 수입 금지해달라"
지난 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수산시장을 방문한 데 이어 이날 여야 지도부도 수산시장을 찾았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신 씨는 "의원들이 온다고 하면 더 골 아프다"고 말했다. 정 씨 역시 "시장이 원래 시끌벅적하고 좀 더럽기도 하고 그런 건데 정치인들 온다고 하면 아침부터 사람들이 나와서 청소하라고 난리다. 며칠 전 국무총리가 왔다 갔지만 손님 하나 없다"고 털어놨다.
조개류를 파는 박모(여·60) 씨도 정치인들의 방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아침부터 의원들 온다고 난리였는데, 어디 의원들이 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층 더 냉담한 반응도 있었다. 20년 동안 장사를 해온 김모(남·48) 씨는 "정치인의 의례적인 제스처 아니냐"며 "정부가 국민에게 수산물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조치를 취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년 동안 노르웨이산 연어와 국내산 전어·민어 등을 판매해왔다. 지난 7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로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그는 "차라리 일본산 수산물을 전면 수입 금지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부가 자꾸 일본산이 안전하다는 식으로만 하니까 국민들이 아예 수산물을 다 안 먹어버리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국민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과 정의당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가운데 96.6%가 '일본산 수입 식품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반면 정 총리는 SNS상에 방사능 식품과 관련한 글이 퍼지는 것에 대해, "악의적으로 괴담을 조작, 유포하는 행위를 추적해 처벌함으로써 (괴담이) 근절되도록 해달라"(8월 2일. 국가정책조정회의)고 관계기관에 지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진숙 장관은 한술 더 떠 이날 열린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방사능 오염 수산물은) 과학적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현재로서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무사태평 정부에 소비자들은 냉담…"높으신 분들은 악수만"
이렇듯 정부가 무사태평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탓에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여론이 악화하자 부랴부랴 9일부터 후쿠시마 현 주변 8개 현에서 나오는 모든 수산물을 수입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소비자의 마음은 돌아선지 오래다. 수산시장에 손님이 너무 없어 인터뷰할 소비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 자체가, 소비자들의 얼어붙은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종종 수산시장을 찾는다는 황용순(여·62) 씨는 "가족들도 생선을 먹지 말자고 하는 탓에 생선을 통 먹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는 좀 괜찮은가 싶어서 한번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추석 대목 이 시간이면 사람이 북적북적해야 하는데 너무 한산하다. 와서 봐도 별로 살 마음은 안 든다"고 귀띔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박모(여·34) 씨 역시 "애 엄마들은 차라리 고기 먹이지 생선이나 조개는 안 먹인다. 그래도 추석이니까 와봤다"며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기만 했다.
34년 동안 갈치, 오징어 등을 판매해온 조성실(남·72) 씨는 이런 손님들을 보며 "와도 다들 쓱 보기만 하지 사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어젯밤 10시부터 가족들과 교대해가며 지금(정오)까지 문을 열고 있는데 오징어 10마리 팔았다"며 "너무 답답해서 손님들한테 '방사능 없다고 내가 거짓말하는 거면 경찰에다 고소하라'고 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같은 시간, 여야 지도부는 수산시장을 한 바퀴 돌며 상인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 씨에게 의원들이 왔다고 전해주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총리 같은 높은 사람이 와도 호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도 못 건다. 악수만 겨우 한다. 시찰하면 상인, 농군 같은 사람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야지 그런 이야기는 안 듣고 돌아보기만 하는 게 높으신 분들의 무게인 것인지…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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