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태규 명리학 <11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태규 명리학 <115>

문화의 치열한 충돌 현장에서

우리나라만큼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물론 필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왔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겪는 일들과 그 정서에 대해 소상히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사회가 겪어온 변화는 그 폭과 깊이에 있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음양오행을 비롯하여 유불선이라는 동아시아 문화에 뿌리를 둔 우리가 격렬한 변화의 틀 속에서 또 다른 문화와 관습들이 마구 들어오다 보니 도처에서 사정없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굉음들로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기로 하자.

얼마 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다.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거라면 으레 지하철 공사의 장은 “이 모두 본인이 부덕한 소치로서...”라는 말로서 운을 뗀 다음에 사고 경위와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의견을 밝히곤 했었다.

일단 전체를 관장하는 장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나서 이런 저런 소견을 밝히는 것이 관례였는데, 요즘에 와서는 그것이 좀 변했다. 사실 변해도 아주 많이 변하고 있다. 주로 이런 식이다.

그같은 사과의 언사는 최대한 간략하게 넘어가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여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식의 말이 더욱 일반화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단체장으로서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부 가능 단위에서 뭔가 잘못이 있었기에 더욱 철저히 관리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줄여 말하면 ‘나는 별 책임이 없소’ 라는 얘기다.

도덕적인 관점, 예의와 양심이라는 차원에서 예전에 비하면 질이 많이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가 이런 염치없는 사람들로 변하고 있을까? 이 글은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자, 좀 더 들어가면 우리의 전통 문화, 좀 더 파고들면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 문화와 흑이 아니면 백이 되어야 하는 이분법 적인 서구 문화간의 치열한 충돌이 그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게 될 것이다.

단체장의 언사가 예전에 비해 질이 떨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문화와 정서가 급속히 서구화되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예전 같으면 단체장 자신이 부덕한 것이 우선적 원인이라는 말을 했고, 국민들도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단체장의 덕성을 고려하여 긍정적인 이해 자세를 보였다. 그래도 진정 바른 단체장이라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었다. 또 그런 단체장은 일단은 물러나지만, 나중에 본인에게 사실상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조사과정에서 확인되게 되면 재기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졌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그런 예의와 인품을 구비한 단체장도 드물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처음부터 맹렬한 비난의 십자 포화를 가하기 시작한다. 사고 난지 하루가 가기 전에 벌서 인재(人災)라는 말이 실리기 시작한다. 충분한 조사는커녕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인재라고 단정지은 뒤, 그 단체와 단체장을 향한 비난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단체장이 잘 못 되었다거나, 언론이 잘 못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 모두 원래의 우리 방식이 아니라 서구적인 사고로 우리가 변해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현실이고 관행화 되다 보니 단체장이 내심 책임을 통감한다 하더라도 섣불리 그런 본인의 부덕이니 잘못이니 하는 말로 운을 떼기가 두려운 것이다. 자칫 스스로 바보가 되는 우를 범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더더욱 최근에는 인터넷이 있어 네티즌들이 울분에 북받쳐 사건이나 사고의 진실보다는 일단 맹렬한 비난부터 쏟아지는 형국이니 그 누가 함부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

‘도의적 책임’이라 말해도 사람들 귀에 들릴 때는 ‘도의적’ 이라는 단어는 간 곳이 없고, ‘음, 책임을 통감해, 지 죄를 지가 아는구먼’하고 무조건 잘못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미 인과 예를 바탕으로 하는 실로 고급스런 우리의 오랜 문화적 정서는 간 곳이 없고, 성급한 흑백논리가 큰 소리로 판을 주도하는 것이다.

서구 문화는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책임 소재를 명증하게 가려내는 것을 정의(justice)로 여긴다. 아울러 잘못이 있다고 확인되거나 유죄가 판결에 의해 내려질 때까지는 어디까지나 무죄로 추정되는 법문화-그 밑바탕에는 오랜 서구적 전통이 담겨있다-로 인해 민사든 형사든 본인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 여기에는 발뺌을 위한 거짓말도 포함된다-하는 것은 어떤 도덕적 비난도 듣지 않으며 당연한 당사자의 권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서구화되어 가고 있지만, 서구 문화의 진수 내지는 핵심은 아직 우리 사회에 이식되지 않았으며,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식이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문화의 외면을 이루는 제도나 틀은 옮겨다 놓으면 되지만, 그 문화를 형성시킨 정서는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고 있기에 쉽사리 옮겨올 수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 세계의 법의식은 서구의 날카로운 법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법보다 인과 예가 더 우선한다는 생각을 지녀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송사라 하면 어디까지나 당사자간의 예의에 입각한 합의나 양보를 종용하여 왔고, 형사 건이라면 ‘네 죄를 네가 알지 않느냐’ 식의 양심과 도덕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하여 왔던 것이다.

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 그 분야를 총괄하거나 책임지고 있는 장이 부덕의 소치를 운운하는 것은 겉멋을 떨기 위함이 아니며, 그 말이 관행으로 된 데에는 실로 여러 천년에 걸치는 문화적 배경이 담겨 있다.

그 배경은 음양오행에서 찾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늘의 이치(天理)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리 내지는 천도(天道)란 개념이 우리 속에 있었기에,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 책임자는 그렇게 일이 된 것에 대해 하늘(천리 또는 천도)이 징조를 나타낸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정작 책임의 세세한 소재가 어디에 있든 간에 자신의 소관 분야에서 징조가 나타났다는 것은 결국 책임자인 자신이 뭔가 잘 못 다스린 것-오늘날 말로 관리가 잘못 된 것이기에 그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사상이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동아시아 사상은 사물이 있은 즉 거기에 이치나 법칙이 있다는 생각(有物卽有則)에 바탕하고 있으며, 잘못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거기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하늘의 이치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고, 천리를 존중하여 순리로 하면 생존하고 역리로 하면 멸망한다는 논리를 정립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일이 발생하면, 책임자는 스스로 근신하고 삼가는 자세를 통해 본인의 부덕을 씻어내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 ‘이 모두 본인이 부덕한 소치로서’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이유였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는 관념적 차원의 일이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 엄연히 존재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간단히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1994년에 성수대교가 붕괴된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과거 30년간 우리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밟으면서 지니게 된 졸속 행정이나 성급한 기질에 대한 경고였고, 그 이후 그같은 사고는 불식되지 않고 바로 저번의 대구 지하철 사고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반드시 하늘의 뜻을 빌지 않아도 좋다. 우리 사회 전체가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은 취약점, 즉 졸속한 처리나 마무리, 안전 불감증 등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사고가 났을 때 더러는 국정을 책임 진 대통령이 나서서 유감을 표명하거나, 큰비가 올 때 국무회의를 열어 민방위 복장-사실 청와대 회의에서 그런 복장을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과거 가뭄이 들었을 때, 나랏님이 먼저 자신의 행동거지를 근신하고 기우제에 임하는 것과 동일한 문화적 맥락이기에 결코 허례허식이 아니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워낙 급변하다보니 우리 사회의 경우, 문화적 계승에 있어서도 심한 단층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농경 사회였다. 그것이 70년대부터 공업화로 들어갔고, 80년대 말이 되자 이미 우리 사회는 산업 사회로 완전 탈바꿈해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00년이 되자 이미 정보화 사회 내지는 탈공업화 사회의 모습이 완연해졌다.

아니, 무슨 세상이 이처럼 그 변화가 요란하기도 하단 말인가, 이처럼. 필자의 나이 아직 쉰도 되지 않았건만 세상이 두 번씩이나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살았다 생각하니 실로 기가 막힐 법도 하지 않은가.

오늘날 발랄한 20대 젊은이들을 놓고 얘기해 보자. 당신들의 할아버지는 예전에 주로 농사를 지었고, 당신들의 아버지는 도회로 나가 학교를 다닌 후 기업체에 들어가 샐러리맨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으며, 당신들이 일할 직장은 주로 컴퓨터를 만지면서 일하게 될 것이다.

농경에서 산업으로, 산업에서 정보사회로의 변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당신, 이 세 세대가 모두 다른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문화란 획일화되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지만, 우리의 경우 짧은 시간 내에 변화가 너무 크다보니 이질적인 문화와 정서들이 들어와 미처 우리의 것으로 수용될 시간도 없이 그저 여기저기서 마구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국민은 탄력이 있고 문화적 수용성이 충분하여 역량을 갖춘 민족이지만, 워낙 변화가 심하다 보니 일정 부분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60대의 사고와 40대의 사고, 그리고 20대의 사고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괴리가 존재함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물이란 보기에 따라, 대동소이(大同小異)할 수도 있고 그 차이점을 강조할 수도 있는 법이지만, 오늘이라는 이 역동적인 시간에서 이질적 문화를 수용해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그리 편치는 않아 보인다 하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