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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김성수 옹호하며 '위키피디아' 베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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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김성수 옹호하며 '위키피디아' 베꼈나

위키피디아에서 잘못 서술한 부분, 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일부분이 위키피디아의 내용과 동일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위키피디아는 누리꾼이라면 누구나 내용을 편집할 수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이라 내용의 신뢰성을 완전히 보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문제가 된 것은 교과서의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 부분. 이 부분은 학계에서 친일파로 꼽히는 김성수를 미화했다는 반박이 제기되며 이미 한 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마저도 위키피디아의 김성수 항목과 흡사하다는 것.

위키피디아를 보면 "1940년 8월 10일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1945년 8·15 광복 때까지 칩거, 은거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 이후 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또한 일제가 주는 작위 역시 거절하였다"고 나와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 부분을 "1940년 8월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사주인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광복 때까지 은거하였다. 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하였다"고 서술했다.

김성수의 표절행적에 대한 논문을 썼던 장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문장이 다른 것은 교과서 체제에 맞게 바꾼 것일 뿐이고 기본적으로도 아이디어나 서술의 순서가 똑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했다"는 부분에서 이러한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성수가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제안을 거절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조선 귀족'과는 무관하다"며 "위키피디아 작성자가, '귀족원' 이라니까 그냥 '귀족 작위'라고 생각하고 쓴 것 같다. 이 잘못된 부분을 (교과서 집필진이) 그대로 가져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위키피디아가 잘못 실은 사진 설명 글이 교학사 교과서에도 똑같이 실려 있다. 위키피디아는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 매일신보 사진에 대해 "1943년 8월 5일자 매일신보 사설란에 인촌 김성수 명의로 게재된 글. 그러나 이는 매일신보 기자 김병규가 벌인 명의도용 등 관련해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을 달았다.

교학사 교과서는 "1943년 총독부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보 사설란에 김성수 명의로 징병에 찬성하는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는 글이 실렸다. 물론 이 글은 매일신보의 김병규 기자가 명의를 도용하여 쓴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서술했다.

장신 연구원은 "김성수가 <매일신보>에 직접 쓴 글이라고 알려진 것은 두 개다. 하나는 8월 5일 자 이른바 '문약의 고질'이고 다른 하나는 11월 6일 자의 학병 지원 관련 글"이라며 "<매일신보> 김병규 기자가 대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글은 11월 6일 자 글"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키피디아에서 해당 설명글을 작성한 사람이 혼동한 것 같은데,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그 잘못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며 "관련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교과서를 서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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