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4일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이번 해임건의안은 부당하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결정"이라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장관이 흔들리면 국정수행 원활히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그러나 이로 인해 또다른 대결국면과 국정혼란이 조성돼 국민 불안이 있어서도 안되므로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여야 및 국민들과 대화하고 신중히 고심한 이후에 국정의 중심을 바로 잡아나가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수용 대 거부 가능성은 50 대 50"이라면서 "이번 주 내에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청와대 내부 기류에 대해 "해임건의안이 부당하다는 인식은 모두 같이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오늘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2명이 '대국적 견지에서 국회의 결정을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한나라당을 각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면서 수용해야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민여론 이미 다 나온 것 아니냐"**
노 대통령은 "고심하겠다"는 표현까지 쓰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지만 청와대 참모진 사이에선 일단 '수용 거부' 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인태 정무수석은 4일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수용 거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변함없다"면서 "이런 시위(한총련 시위)가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장관을 자르나. 한나라당이 해임시키라고 다 해임시키면 어느 장관이 제대로 일하겠냐"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민주당, 개혁국민정당, 신당연대 등 정치권 만이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행태에 대해 '댜수당의 횡포'라며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인 것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해임안 통과 전인 지난 1일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해임건의안 통과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47.5%로 "찬성한다"(31.0%)는 응답보다 많았다.
유 수석도 이날 "여론을 봐라. 어제 네티즌들 반응도 그렇고 한나라당이 밀리고 있다"면서 "총선을 앞두고 국민 여론을 봐야하니까 한나라당도 계속 강경 투쟁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완 홍보수석도 "국민여론이 이미 다 나온 것 아니냐"면서 "부당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청와대는 김 장관 해임안 자체도 명분이 부족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만큼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명분으로 '대정부 공세'를 지속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을 감안, 일단 '수용 거부'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조선일보 기고문 보고 "해석개헌 말라" 주장**
그러나 4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2명의 참모들이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해임안을 거부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 부담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역대 어느 정권도 국회에서 통과된 해임안을 거스른 적이 없다"며 청와대를 압박하고, 수용 거부는 정국 경색으로 이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87년 헌법 개정으로 '법적 구속력'을 의미하는 명문화된 규정이 사라진 이후인, 지난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4일 "헌법에 국무위원 해임을 건의토록 한 것은 3권분립 원칙을 지키면서 장관을 불신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면서 "법률가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기본에 대해 딴 해석을 한다면 이는 '해석에 의한 개헌'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이날 오전 상임운영위회의에서 전날 국회에서 표결처리된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해임건의안을 거부하면) 당에선 헌법을 지키기 위해 비상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최 대표의 '해석에 의한 개헌' 주장은 그러나 이날 아침 조선일보에 실린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의 '해임 건의에 거부권은 없다'는 글에서 맨처음 제기된 것이어서, 다시 한번 한나라당의 '조선일보 의존성'을 여실히 드러내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김 석좌교수는 기고문에서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법률을 모르는 대통령과 달리 '해석 개헌'을 하겠다고 하고 법치가 아닌 코드정치를 하겠다고 하고 있어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해석 개헌' 논란에 대해서 "건의는 문자 그대로 권고일 뿐이므로 대통령이 이를 따라야 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해임건의안 수용 여부가 김두관 장관의 거취와 연관된 만큼 이 문제도 충분히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김 장관 본인이 총선 출마 의사를 강하게 밝히고 있는 만큼, 내년 총선서 부산.경남권에서 '개혁신당'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부산 경남(PK)권에서 일 수도 있는 '김두관 동정론'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유 수석은 '5자회담에서 대통령이 수용 거부 입장을 밝히고 이해를 구할 것이냐'는 질문에 "모처럼 야당 대표하고 경제, 민생 얘기하자고 만나는 것인데 이런 것 가지고 얼굴을 붉힐 필요 없다"면서 "대통령이 특별히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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