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연예인들 망가지니까 재미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연예인들 망가지니까 재미있나?

김유주의 방송산책<20> '엽기'의 부활

약 2년전으로 기억된다. 우리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엽기’였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의 엽기 사이트에서부터 만화 영화 광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된 엽기.잔혹문화를 방송이 그대로 안방에 실어 날랐다.

배위에 뜨거운 밥과 계란프라이를 올려놓고 커피를 쏟아 붇는가 하면, 촛농을 떨어뜨리기도 했고, 엽기 레스토랑에선 기이한 퓨전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생미꾸라지를 넣은 붕어 아이스크림, 치약으로 버무린 사과 샐러드, 산낙지를 통째로 넣은 햄버거 등. 생각만해도 메스껍고 역겨운 음식들을 만들어 남김없이 먹는 대결을 벌이기도 했고, 출연자들이 가스활명수에 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마요네즈를 듬뿍넣은 비빈 자장면과 밥을 묻힌 커다란 비계덩어리를 억지로 먹다가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또 한술 더 떠서, 목욕탕의 철수세미, 타일청소용 솔, 사포, 심지어 대패로 몸을 밀어주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물엿으로 머리를 감겨주고 향수대신 후추를 온몸에 뿌리고 콩기름으로 몸을 마사지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제작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엽기문화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황당한 상황을 현실속에 재현해 보려는 제작의도도 있다면서 좀더 자극적인 내용을 원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TV가 엽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어서 오늘은 이 방송에서 ‘건강주스’라는 엽기음료를 마시고, 내일은 다른 방송에서 ‘벌떡’을 물고 오만상을 구기며 괴로워했고, 이런 모습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오만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혐오 프로그램은 방송위원회로부터 무거운 제재를 받았었다.

한편 편당 억대의 제작비를 들이는 방송광고 CF의 경우, 예쁘고 환상적인 장면 연출에만 목을 매고 있는 광고들이 이같이 기막힌 엽기적인 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역설의 미학’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광고가 그리는 세상은 언제나 휴머니즘과 평화가 가득 차 있다. 엽기 광고는 이와같은 위선적인 휴머니즘의 탈을 벗고 우리들 내면에 깃든 잔혹함을 탐닉하는 본능회귀의 모습이라고도 평한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엽기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젊은 감각과 온가족의 문화채널’이라는 기치를 내건 공영방송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그맨 유재석, 이혁재, 강병규 등이 플로어 바닥에 누운 채 투명한 관을 타고 내려오는 음식들이 입에 닿을 때마나 놀라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 음식들을 입안에 넣고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는지, 또는 그것이 무엇인지 맞추는 것이다.

그동안 이 프로에 등장한 것은 살아있는 미꾸라지, 수십개의 다리가 달린 지네, 귀뚜라미 등이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러한 해프닝에 대해 시청자들은 “아무리 개그맨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을 강제로 먹일 수 있습니까?” “이런 천한 3류가 아니면 웃길 수 없다니 공영방송이 맞습니까?”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송의 엽기적 변질은 시청률 경쟁에 의한 소재의 빈곤과 저질화된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자극적인 소재채택이라는 파행적이고 편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방송의 횡포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이쯤되면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TV에 ‘엽기상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