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소장파 의원 11명은 4일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의 투신자살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 정 의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특검이 필연적으로 이런 결과를 빚게 되리란 것 왜 몰랐냐”고 말했다.
***“슬픔 속에서 분노 느껴”**
김영환 김희선 배기운 송석찬 심재권 이호웅 임종석 전갑길 정범구 정철기 조한천 의원의 명의로 낸 이날 성명서에서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었던 정 의장이 “평화를 진척시켰다”며 “정 의장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냉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와 냉전 수구세력들에 대한 경고다”고 말했다.
성명에서는 이어 “북한을 평화적 방법으로 변화시키려 했던 대북송금을 특검으로 몰아갔다”며 “(정 의장의) 노력과 성과는 훼손당했고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성명에서는 또 “슬픔속에서 분노를 느낀다”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희생과 노력을 누가 사법적 잣대로 단죄하려 했냐”고 대북송금 특검이 정 의장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충격속에 신.구주류 해석 시각차**
여야는 이날 하루 종일 정몽헌 의장의 죽음에 따른 여론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심하는 분위기였다.
민주당은 이날 정 의장의 사망 소식에 깊은 충격에 빠진 채 대북경제협력 사업과 남북관계 및 국내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대북경협 사업이 차질없이 수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대철 대표는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애도하고 “정 회장의 타계는 우리 경제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크나큰 손실로,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사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개성공단 착공식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정 의장과 동승했던 이창복 의원은 “정 회장이 내게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했다”고 전하고 “경협에 대해 우리 사회의 우려섞인 시각이 많았고 북쪽에서도 정씨 일가의 헌신적인 사업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자살 배경을 추정했다.
한편 이날 열린 민주당 당무회의에서는 구주류의 김경천 이원이 “정 의장의 죽음은 특검때문”이라고 주장했다가 신주류측 의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특검 수용을 놓고 갈등했던 신.구주류가 정 의장의 죽음에 대한 해석에서 또다시 부딪힌 것이다.
김 의원은 “특검이 정 회장을 죽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발언을 정확히 해달라”고 제동을 걸었으나 김 의원은 거듭 “특검이 죽였지 누가 죽였냐”고 주장했다. 이에 정 대표는 “공개적으로 나가면 안되니 없던 것으로 하자”고 진화했다.
***한나라, 금강산관광 입장 정리 고심**
정 의장의 투신자살을 놓고 “무슨 말못할 사연이 많았길래 목숨마저 끊어야 했는지 그 이유와 경위가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해 빈축을 샀던 한나라당도 애도의 뜻을 거듭 표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벌어질 정국 변화와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검에 대한 압박감이 정 의장의 자살을 불러일으켰다는 시각에도 불구, “대북송금 특검이 제대로 안돼 한 기업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더욱 철저한 진상조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그동안 견지해 왔던 금강산광광 중단 또는 현금지원 반대 당론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됐던 금강산 사업은 남북관계의 현상유지 차원에서 불가피한 사업으로 굳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을 당내에서도 인정하고 있고, 자본 잠식상태인 현대아산이 사업을 중단하게 될 경우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자못 크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이같은 당 안팎의 견해와 여론을 의식, “대북현금지원이 안된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금강산 사업에 대한 입장은 전체 상황을 봐가면서 공론화해야 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민주당 의원들이 발표한 공동성명 전문.
***더이상 냉전에 휘몰린 안쓰러운 죽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했던 정몽헌 회장의 자살 소식을 접했습니다. 충격과 슬픔 속에서 삼가 故 정몽헌 회장의 명목을 빕니다.
그분은 남북화해협력의 큰 발자취를 남겼던 故 정주영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평화를 진척시켰습니다. 국민들이 금강산을 오가고, 남북의 이산가족이 만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과 경의선 착공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이런 노력과 성과들은 훼손당했고 명예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북한을 평화적 방법으로 변화시키려했던 대북송금을, 법률적 잣대가 아니라 민족화해의 잣대, 한반도 평화의 잣대, 그리고 역사의 잣대로 판단되어야 할 평화비용을 특검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슬픔 속에서도 분노를 느낍니다. 누가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희생과 노력을 사법적 잣대로 단죄하려 했단 말입니까! 특검이 필연적으로 이런 결과를 빚게 되리란 걸 왜 몰랐단 말입니까!
그분의 죽음은 자살이 아닙니다. 여전히 냉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냉전수구세력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고인은 자신의 유골을 금강산에 뿌려달라고 했습니다. 고인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이제 우리도 민족화해의 길, 평화의 길로 더욱 매진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3년 8월 4일
김영환, 김희선, 배기운, 송석찬, 심재권, 이호웅, 임종석, 전갑길, 정범구, 정철기, 조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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