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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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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07>

운명에 관한 술자리정담 (1)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주고받았던 얘기들이다. 얘기 중에 필자가 운명을 연구하는 사람이고 보니 '운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가 오가게 되었다. 얘기 내용들이 제법 흥미로웠기에 이 자리를 빌어 두 번에 나누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친구#A: 그 동안 자네가 말하는 운명이란 것은 일종의 조수와 간만, 즉 the ebb and the flow를 말하는 것인가? 그 같은 순환과 주기를 말하는 것이냐 말이지.

필자: 그렇다네, 사람의 일에는 분명히 밀물과 썰물이 있어서 그것이 어떤 주기를 가지고 있지.

친구#B: 그런 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일이 안 될 때는 제 아무리 노력해도 별 소용이 없겠구먼....

필자: 자네는 과연 그런 주기, 즉 일이 안 되는 주기에 들어섰다고 해도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가고자 하는 길을 그럼, 가지 않을 셈인가? 오히려 내가 반문하고 싶네. 그 길이 자네가 진정으로 가고자 하는 길이라면 행운과 불운에 상관없이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친구#A: 운명을 연구하는 자네가 오히려 그런 말을 하니, 흥미가 있어서 하는 얘기인데 그러면 자네는 무슨 목적으로 운명을 연구하고 있는 것인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앞으로 나가면 될 일이지 말이야.

필자: 맞는 말이야, 세상일은 하고픈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잘 안되면 될 때까지 진지하게 노력하면 되는 것일세. 하지만 내가 운명을 연구하는 것은 그 목적이 약간 다른데 있다네. 먼저 사람의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보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동양에서는 명(命)이라 한다네.

그 명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어. 성향 외에도 그 사람의 체질과 건강, 기호, 방향성 등등 실로 많은 것을 태어난 생년월일시는 말해주고 있거든.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운명을 연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친구#B: 좋아, 그렇다면 태어난 시각이 그 사람의 그처럼 많은 것을 결정하고 있다면, 왜 그런 것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그리고 운명이란 것 역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부터 좀 얘기해 보게나.

필자: 운명이란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점부터 지적하고 싶네. 영어에서 운명이란 단어와 가장 유사한 어휘는 destiny 가 될 거야. 그리고 신의 예정이란 뜻을 지닌 providence 가 있지. 그런데 이런 어휘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미리 예정되어 있고 결정지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주 강하게 풍기고 있네.

하지만 운명이란 말은 그런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네. 사실 운명이란 말 자체도 약간 문제가 있어. 흔히들 '국가의 명운을 걸고', 뭐 이런 식의 말을 쓰곤 하는데 명운이라 하면 약간 거창하고 비장하며, 운명이라 하면 그 의미가 보통으로 생각들 하지만 원래 명운이란 말이 맞는 말이야.

왜 그런가 하면 우리가 태어날 때, 즉 생년월일시를 네 기둥, 사주라 하고 여덟 글자라 팔자라 하지만 이 팔자가 말해주는 것, 다시 말해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것을 명(命)이라 하고,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것을 운(運)이라 한다네.

가령 오늘이 기축(己丑)일이라면 날의 운, 즉 일운이 되고 이 달이 기미(己未)월, 년이 계미(癸未)년이니 월운은 기미이고, 년운은 계미년이 되는 것이지. 이처럼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음양오행을 운이라 한다네. 운이란 운동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움직인다는 뜻이고, 태어날 때 주어진 명, 즉 고유의 색깔과는 달리 외부에서 만나는 환경과도 같은 것일세.

명운이란 말은 그렇기에 그 말속에 고정적인 것, 즉 결정지어진 요소들과 외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환경적 요소들을 함께 아우르는 말이라네. 다시 말해서 명운이란 필연과 우연을 함께 지칭하는 어휘일세.

그런데, 어떻게 해서 태어난 생년월일시가 그 사람의 그런 고유한 성향들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신기하고 신비할 따름이라네. 묻지 말게나, 나도 모르니 말이야. 다만 앞서간 사람들이 태어난 시각을 통해 그런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을 밝혀놓았으니 사실 그 분들이 대단한 사람들이지.

친구#A: 자네 말이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나 노력 같은 것은 운명, 아니 명운과 관련해서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도 궁금하네.

필자: 세상에 노력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네. 물론 로또에 당첨되거나 유산을 물려받는 일도 있지만 그것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것이지. 월드컵 4강이 주어진 것인가, 아니지, 그것은 우리의 노력과 홈그라운드라는 이점, 그리고 시운이 맞아떨어진 것이지 노력이 없었다면 홈그라운드나 시운도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물론 사람의 태어난 시각, 즉 사주를 보면 이 사람에게 그런 주어지는 운, 문자 그대로 행운이 있겠는가 하는 것도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은 모두 우리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세. 그리고 사주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방면에 재주가 있는지, 그리고 노력하는 성격인지를 알 수 있는 걸세.

친구#B: 그러면 명과 운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지도 궁금하군 그래. 얘기 좀 해 보게나.

필자: 타고난 사주, 즉 명을 보고 다음에 운을 보는 것인데 그 방식은 이런 식이야. 잘 들어보게.

가령 어떤 이의 명을 보니 사람의 그릇이 크고 재운도 왕성한데, 노력이 부족하다면 그것만으로는 결코 치부를 할 수 없다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만나는 운을 보게 되는데 운에서 이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는 운을 만나게 된다면 분명 그 시점에 가서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지.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운을 만나지 못하고 인생을 보낸다면 그 그릇이 아까울 따름이지. 선천적으로 부지런함이 부족하고 다시 열심히 움직이는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

또 이런 사람도 있다네. 그릇은 작으나 재욕은 크고 부지런함도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릇이 커지는 운에 가서 치부할 수 있는 것이지.

이처럼 사람이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구비하고 태어나는 이는 실로 드물다네. 스케일, 즉 그릇도 있고 부지런하며 욕망도 큰 자는 분명 대성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네. 과거 정주영씨 같은 사람이 그런 명운을 타고 난 사람이지만, 그런 분도 결국 중년에 왕성한 운을 만나서야 재벌로 성공할 수 있었지.

반면 이런 사람도 있다네, 재주와 근기, 욕망을 다 갖추었지만 만나는 운이 계속 그 반대로 가는 운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노력과 목표에 대한 질긴 추구를 통해 반드시 어느 정도는 소망하는 바를 이룬다네. 앞서 얘기했듯이 환경이 어려워도 뜻이 굳고 의지가 강한 자는 노력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소망하는 전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법이지. 명운을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네.

친구#B: 그렇다면 다시 묻겠는데, 나 역시 뜻을 크게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

필자: (웃으면서) 물론 그렇지. 자네가 큰 뜻을 품고 끝까지 불퇴전의 용기와 의지를 가진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어디 한 번 해보시게나.

그런데 말이지, 뭐뭐 한다면 뭐뭐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가정법은 문자 그대로 가정을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게나. 이런 술자리니까 그런 호기(豪氣)담긴 말을 하지만, 정작 실천에 옮길 수 있냐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네. 말로야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이 말일세.

어떤 이는 뜻을 품으면 정말 실천에 옮겨서 끝까지 추구하는 이가 있는 가 하면, 어떤 이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인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의지가 강하고 스케일이 큰 사람의 팔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팔자는 다르게 생겨 먹었다네.

친구#A: 자네는 왜 이런 분야에 발을 들어놓게 되었는지 그 점도 궁금하군, 얘기 좀 해보게나.

필자: 처음에는 미신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궁금해서 시작한 것일세. 그간 무수히 마음이 오갔지만, 한 십 년 되니까 여기에 더욱 대단한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 그래서 손에서 놓지 않았지. 20 년이 되니까 또 다른 눈을 얻게 되고, 이 음양오행이란 것이 결코 얼버무리는 논리구조가 아니란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네.

하지만 지금도 음양오행이 움직여 가는 모습에 대해 여전히 연구할 점이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네. 궁극의 경지는 어떤 것인지 하는 것이 여전히 흥미롭고 궁금할 뿐이라네.

친구#B: 그런데 말일세, 음양오행의 메카니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힘의 근원 말이야.

필자: 나는 음양오행을 무슨 대우주의 원리라고 여기지는 않는다네. 다만 이 지구상에서 작동하는 기의 흐름이란 것만은 확신하고 있지. 다시 말해서 음양오행의 변화 원리가 지구를 떠난 다른 천체나 태양계적인 규모에서 적용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현재 나로서는 검증이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얘기야.

음양오행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자전축에서 23.5도가 기울어져 있기에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네. 만일 지구가 기울어져 있지 않다면 공전 궤도상에서 계절의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일세. 오로지 축이 경사져 있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자전이 없다면 낮과 밤이 존재하지 않겠지.

낮과 밤, 계절의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음양이고 오행인데, 이 원리가 지구를 벗어난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작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변화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파동의 모습을 지닌다네. 바로 삼각함수에서 말하는 사인 곡선이 기본 원리인데, 다만 그 모습이 복잡한 양태를 보이는 것은 년의 파동과 월의 파동, 일의 파동, 시의 파동이 서로 간섭하기도 하고 회절하기도 하며, 때로는 공명을 이루고 때로는 상쇄되기도 하기에 그런 것일세.

사주란 기본적으로 네 개의 파동에 대한 출발점이 주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일세. 그러나 네 개의 고유한 파동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운에 따라 다시 무수한 파동들이 섞여들기에 예측이라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 되는 것일세.

같은 사주, 즉 같은 파동 함수를 지녔다 하더라도 태어난 곳과 주변 환경, 그것들 역시 고유의 파동을 지니고 있기에 사람의 일을 100%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네.

내가 연구하는 것도 따라서 100% 정확한 예측보다는 얼마나 근사치에 가까워질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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