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출근해 가장 먼저 혹은 유일하게 읽는 글이었습니다. 조급하게 시작하려는 아침을 늦추고 가다듬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히 무어라 평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ID 엄마)
"전 김지하선생의 아들뻘대는 사람입니다...사람들은 연약한 한 인간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더욱 더 외로웠겠죠. 이 회고록을 읽으며 부족하나마 선생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ID 푸른바위)
"하루하루 이곳에 들어와 찾던 글이 앞으로 없다니 많이 허전할 것입니다. 앞으로 젊은이들이 아니 나이 어린 학생들이 볼수 있는 글도 기대합니다...프레시안은 김지하 회상 대타로 마음이 허전하게 빈 독자들에게 책임을 지시길 바랍니다." (ID 마당 민)
"선생님은 좋은 어른이십니다. 일산사는 희섭이 편에 연락 주시면 겨울에 잡아놓은 잘 익은 홍어한마리 들고 올라가겠습니다. 애쓰셨습니다. 건강하십시오." (ID 윤건)
지난 6월 30일. 315회로 끝을 맺은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에는 연재의 끝을 아쉬워하고 김 시인의 건강을 걱정하고 그를 '모시는(侍)' 글들이 줄을 이었다. 프레시안이 창간됐던 2001년 9월 24일부터 약 1년 9개월 동안 김 시인의 글로 하루를 열었던 마니아 독자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진: 책표지>
***"흰 그늘은 내 미학과 시의 총괄 테마"**
극소수나마 그날 '커밍아웃'한 독자들과, 그날까지도 침묵했던 수많은 마니아들과, 회고록의 막내림을 아쉬워하는 모든 사람들, 또 아직은 인터넷으로 글읽기가 힘겨운 사람들을 위한 대체재가 나왔다. 책으로 나온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1-3권. 학고재 刊)이다.
"나는 나의 회고록을 나 자신과 사실을 중심으로 고백하는 살벌한 자서전으로 쓰고 싶지 않다. 어떤 의미가 생성되는 문학적 탐색으로 밀고 가고자 한다. 그것만이 온갖 형태의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봉인된 내 삶의 깊은 시간의 비밀이 변화 속에서 참으로 스스로 개봉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회고록을 쓰는 마음가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지괴(志怪)소설을 방불케 하는 어린 시절의 회상, 꿈과 환상 때로는 기괴한 이문(異聞)들로 채워진 후반부를 읽다보면 김 시인의 그같은 뜻이 이미 성공적으로 관철됐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연대기적 사실의 건조한 나열이자 자기 연민에 빠져 버리는 여느 회고록과는 달리 이 책 <흰 그늘의 길>은 기이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한편의 서사시이다.
김 시인의 오랫 벗인 조동일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의 작가라도 지어낼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라며 "지하가 지금껏 남긴 작품들 중에 가장 큰 업적"이라고 치하했다.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 테마가 되었다...흰 그늘은 생명문화운동의 새 구호다. 그리고 내 삶이요 죽음, 즉 나의 시다."(3권 269쪽)
"나의 생애가 '모로 누운 돌부처'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실패한 부처, 벌판에 버려져 잊힌 돌부처라고 해서 그 조성할때의 깊고 큰 원(願)이 '모심(侍)'이어서는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성공이냐 실패냐는 이제 거의 내 심중에도 안중에도 없다. 오직 내가 '모시느냐, 안 모시느냐'만 있을 뿐이다. '흰 그늘'이다. 이것이 나의 '실패학'이다."(작가의 말)
왜 회고록 제목이 '모로 누운 돌부처'가 아니라 '흰 그늘'인지에 대한 김 시인의 말이다.
<사진: 출판기념회>
***조동일 교수, "이제 긴장 풀고, 어깨 힘 빼고 살아라"**
한편 11일 오후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출판기념회에는 김 시인의 부인 김영주 여사를 비롯, 백기완 시인, 고은 시인, 박형규 목사, 김근태 민주당 의원, 정연주 KBS 사장 등이 참석해 출간을 축하했다.
이날 모임은 '윗사람'들의 축사 한마디를 듣는 여느 출판기념회와는 달리 김 시인의 '아우들'로부터 축하와 '충고'를 듣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조동일 교수는 "지하한테 평소 경전 원문(시)만 쓰지 주석(산문, 강연)은 왜 다느냐고 따졌다"면서 "그런데 이번 회고록을 읽어보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써도 돼는 시대가 왔고 그 놀라운 기억력이 남아 있을 때 쓰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의 회고록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모질게 살아온 민족의 현대사의 기록"이라면서 "이제는 긴장을 풀고, 어깨에 힘을 빼고, 목청을 낮추고 시로 말해라"고 덧붙였다.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은 30년전 장준하 출판기념회에서 술에 취한채로 파격적인 축사를 했던 김 시인을 회고하며 "김 시인의 끊임없는 청년정신 때문에 나도 이끌려 간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70년대 일본에서 김지하 구명운동을 주도했던 미아타 마리에 씨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2년 전 연재 시작 당시를 회고하는 이근성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프레시안 창간에 큰 기대를 걸었던 김 시인이 뭔가 기여할 게 없을까 궁리하다가 당시 준비중이던 회고록을 연재하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얘기해왔다"며 "회고록은 신영복 교수의 고전강독과 함께 고급 정론지를 지향하는 프레시안의 격을 높여주는 데에 기여했다"고 사의를 표했다.
프레시안의 역사와 함께 했지만 책 출간 때문에 이제는 기사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는 김지하 회고록. 이제는 책으로 나온 그의 '흰 그늘의 길'을 따라가 보는 것은 김지하의 삶만큼이나 극적인 우리 현대사를 재발견하는 새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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