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시티 윤창렬 대표의 로비 의혹이 연일 파문이다. 언론의 집요한 관심은 민주당 정대철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도대체 얼마나 받았느냐에 쏟아진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한 최대 희생자는 누가 뭐래도 굿모닝시티의 부도로 인해 3천4백76억원의 계약금을 몽땅 날린 3천여명의 투자자들이다.
이들 중엔 수십년간 피땀흘려 번 돈을 몽땅 투자한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경비원이 있고, 군부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 보상금에 빚까지 보태 투자한 70대 할머니, 명예퇴직 당한 남편의 퇴직금을 투자한 주부도 있다.
아이러니한 대목은 지금 물 만난 고기마냥 윤창렬 로비의혹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언론이 불과 몇 달 전까지만해도 굿모닝시티와 윤씨에 대한 극찬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자자들 중엔 이같은 언론 보도를 접하고 투자를 마음먹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4일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MBC 미디어비평’은 이를 고발하며 반성과 자숙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이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낸 언론사는 없다. 각 언론이 지난날 어떻게 윤씨와 굿모닝시티 ‘신화 만들기’에 앞장섰는지, 대표적인 언론보도 사례를 게재한다.<편집자>
***“굿모닝 시티 윤창열 대표 '목수 신화'-무일푼 상경·고학 초대형 패션몰 사장으로”(한국일보 2002년 3월 13일자)**
어린 목수의 꿈은 ‘사장님’ 이었다. 소박하게도 조그만 목공소를 운영하는 사장님. 손 때 꼬질꼬질하던 그 어린목수가 목공소 사장, 개발업체 사장을 거쳐 이제 초대형 패션몰 사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굿모닝시티 윤창열(尹彰烈ㆍ48) 대표는 전북 익산에서 소작농이었던 부모의 1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너무 가난해서 1년에 돼지고기 한 번 구경하는 것도 힘들었다”는 그가 목수일을 배우겠다고 인천으로 올라온 것은 13세가 되던1967년. “중학교입시에서 180명중 3등으로 장학생에 뽑혔지만 당장 집안의 생계를 도와야 했어요.”
외삼촌 밑에서 목공 일을 잠시 배운 뒤 서울로 홀로 상경한 그는 말 그대로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다.
“이를 악물고 일을 했죠. 한 10년간 악착같이 일하고 보니 모은돈이 적지 않더라구요.” 그는 모은 돈으로 고향 땅 2만여평을 사들였다. “소작농으로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어서” 였다.
어려서 놓았던 펜을 다시 잡은 것은 그 때부터. 공부에 매진한 지 1년만인 79년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 이듬해 고등학교 검정고시합격, 83년 연세대 중문과 입학 등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대학 졸업 후 다시 ‘본업’에 복귀한 그가 발을 내디딘 사업은 하천복개공사를 하는 개발회사.20억원을 투자했지만 곧 문을 닫아야 했다.
그렇게 좌절과 재기를 반복하기를 몇 차례. 96년 현재 굿모닝시티의 전신이 된 한동토건이라는 회사를인수하면서 확실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성공 비결이요? 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멀었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낸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그가 벌이고 있는 사업은 패션몰의 중심지 동대문에 대지 2,370평, 연건평 2만9,000평의 초대형 패션몰을 세우는 것.2004년 개장 예정으로 1월초부터 분양에 들어갔는데 벌써 60% 이상 분양이 이뤄지는 등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목포, 울산,진주, 대전 등에도 차례차례 굿모닝시티 패션몰 분양을 시작할 계획.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개념 유통 네트워크를 갖춘 초현대식 쇼핑몰을 선보이겠다”고 자신하는 그가 어떤 신화를 다시 만들어낼 지 자못 궁금하다.
***윤창열 굿모닝시티회장 “파산직전 인수 ㈜한양 2년내 정상화”(대한매일 2003년 1월 22일자)**
지난해 서울 동대문(을지로 6가)에서 대형 패션몰을 개발,분양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유통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부동산디벨로퍼가 이번에는 ㈜한양을 인수,주목을 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동대문에 연 건평 3만평 규모의 상가를 개발,분양한 ㈜굿모닝시티 윤창열(尹彰烈·사진·49)회장.
과거 국내외 건설 현장을 주름잡던 한양을 인수,기분이 들떠있을 것 같은 윤회장은 그러나 “한양을 인수하면서 괜한 오해를 사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굿모닝시티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이 낸 분양대금이 한양 인수자금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작은 부동산 개발회사가 총 자산가치 2650억원 규모의 회사를 인수한 것을 두고 ‘미꾸라지가 용을 잡아먹었다.’는 식으로 치부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윤 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런 오해는 금방 풀린다.우선 1조원에 가까운 굿모닝시티 분양대금은 시공사인 동양메이저건설과 공동 관리,한 푼도 마음대로 빼낼 수 없도록 했다.분양대금은 공사비와 관리비 등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한양 인수에 들어간 100억원 정도는 개인 재산과 사채를 동원했다고 윤회장은 설명했다.
‘고래가 새우를 잡아먹듯이’한양을 인수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잘못됐다고 말한다.한양의 자산규모는 겉으로 2600억원 규모다.그러나 법원으로부터 파산 절차를 밟던 회사여서 자산가치 등에 대한 실사는 엄격했다.10개 등 보유 부동산 가치 1350억원,현금 800억원,나머지는 2005년까지 시공 중인 공사대금으로 들어올 돈이다.
상가 등은 리모델링을 해 굿모닝시티 상가 브랜드를 붙여 임차인에게 분양하거나 매각해 인수대금으로 쓸 계획이다.나머지는 2005년까지 공사 대금을 받아 인수대금을 내면 된다.
윤회장은 “전국에서 유통시설을 개발하다 보니 건설업체가 필요했을 뿐 겉으로 드러나는 한양의 가치를 보고 인수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한양이 갖고 있는 상가는 ‘갯벌에 묻혀있는 진주’였다.”고 말했다.부동산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윤회장은 1∼2년 뒤 한양이 정상화되면 제대로 된 건설사로 키우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이를 위해 전국 20여 곳에 지을 굿모닝시티 상가의 시공을 한양에 맡기는 동시에 부동산 개발과 해외 건설공사를 적극 꾀할 계획이다.
그는 동대문에 제2의 굿모닝시티 상가 개발을 추진 중이다.최근 부지 매입을 마무리 짓고 사업 구상 중이다.상가 개발 방식도 바꿨다.분양대금을 안전하게 지키고 공사를 일찍 마치는 동시에 유통상권 활성화를 위해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로 유명한 한미피슨스에 사업 전반을 맡겼다.
전국 30여 곳에서 땅주인과 상인들로부터 상가를 개발하자는 제안도 받았다.일산,광주,울산 등의 사업은 어느 정도 구체화됐다.
***건설사 (주)한양 인수한 굿모닝시티 윤창렬회장 "대박신화 이을 큰그림 만들것"(동아일보 2003년 1월 21일자)**
신생 부동산 개발회사 굿모닝시티는 1980년대 국내 건설업계의 대표 주자였던 ㈜한양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20일 발표했다.
굿모닝시티 윤창렬(尹彰烈·48·사진) 회장은 “주 채권자인 대한주택공사와 총 매각대금 2308억원에 한양을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면서 “이번 주 중에 모든 채권단의 동의를 받아 한양의 파산 폐지를 법원에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1994년 파산한 한양은 다음달 말부터 주인이 바뀌어 정상영업이 시작된다.
윤 회장은 작년 서울 동대문의 초대형 복합테마쇼핑몰 ‘굿모닝시티’를 분양하면서 7억원으로 1조원을 번 입지전적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남대문에서 오랫동안 상가 임대사업을 시작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대문에 극장과 위락시설 도매상가로 구성된 테마쇼핑몰을 분양해 한 달 만에 100% 분양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것. 굿모닝시티의 ‘전설’은 이제 대기업 인수라는 ‘신화(神話)’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윤 회장의 화려한 현재 모습 뒤에는 죽기보다 더 힘든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180명 가운데 3등을 했어요. 그런데 등록금이 없더라고요. 전북 익산에서 무작정 상경해야 했지요. 그때 목공일을 시작했습니다.”
16세 때 직접 목공소를 차리기도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남의 밑에서 일하기를 13년. 어느 정도 모은 돈으로 독서실, 하천 복개공사를 하는 개발 회사 등을 차렸지만 하는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삶이 힘들어 3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은 그를 강철보다 더 단단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윤 회장은 “사는 것도 어려운데 죽는 것은 더 힘들었다”면서 “이제부터는 큰돈은 물론 큰 인생을 그릴 작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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