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노조를 설립함에 따라, 재계와 노동계의 관심이 이들의 노조조직화 성공여부에 쏠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현실을 감안했을 때, 조직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국내 제조업 중 최대규모의 사업장임을 감안할 때,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직화가 성공 여부에 따라 사내하청 고용체계가 일반적인 국내 제조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 과연 '노-노갈등'인가?**
우선, 일부 언론의 보도와 같이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설립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올 노조의 집중 사업으로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내세웠고, 조합원의 노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6월 임단협 시기에 이 문제를 이슈화할 예정이었다.
또한 6월에 금속노조로의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산별전환이 이뤄질 경우 비정규직 노조를 현대차노조에 흡수하거나 지회형식으로 조직해 하나의 산별 조직으로 재편하고, 만약 산별전환이 부결될 경우 현재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이 제한돼 있는 노조규약을 개정해 비정규직을 현대차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결국 조합원 투표에서 현대차노조의 산별전환이 부결됐고, 이에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의 조직화 필요성을 선전과 교육을 통해, 내년 초 투표에서 노조규약을 개정한 뒤, 비정규직의 노조가입을 허용할 계획이었다. 따라서 이번 비정규직의 독자 노조 설립을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상황이 급하게 됐다. 당장 현대차가 갤로퍼 등의 모델을 생산하는 제5공장을 7월 중순부터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5공장에 근무하는 5백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은 당장 계약이 해지될 위기로 다급해졌다.
게다가 지난 3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월차를 쓰려하자 노무담당자가 폭행을 휘둘렀고, 이에 입원한 하청노동자레게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테러'가 발생해 노조의 필요성이 급속히 대두됐다.
현재 비정규직노조는 독자적으로 노조를 설립했지만 내년 초 현대차노조의 노조규약 변경이 이뤄지면 현대차노조와 통합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대차노조의 비정규직노조 통합작업은 그리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산별전환이 부결됐듯이 실제 평조합원들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그들이 노조를 설립해 목소리를 키울 경우 불씨가 정규직 노동자에게 튈까봐 걱정하는 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 저임금에 고용불안 이중고**
현재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조원 수는 2만5천여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가운데, 사내 하청 노동자는 1차 하청 노동자는 8천여명 수준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2차, 3차 하청 노동자의 숫자는 정확한 파악이 어려우나, 대략 8백여명 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77% 수준이다. 1년 근속 기준, 정규직은 시급 3천5백원, 하청노동자는 2천7백원 안팎이다. 그러나 상여급과 복리후생 조건을 더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하청노동자의 경우 평균 근속 연수가 2년이 채 안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항상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이들이 사내 작업장에서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작업라인에서 근무하는 하청노동자의 경우, '근속연수'의 차이가 난다 치더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요구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 시스템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사내하청업체들 사이에는 '머리수 따먹기'라는 말이 있다. 사내하청업체는 단순 인력 공급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사측과 인력공급 계약을 많이 확보할수록 이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내하청시스템은 지난 화물연대의 파업에서도 문제가 된 '다단계' 화물운송체계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화주업체가 화물운송을 화물알선업체와 계약을 하고, 다시 알선업체가 화물차 지입차주들에 물량을 넘기듯이,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와 노동력 공급 계약을 맺고, 하청업체는 개별 노동자를 모집해 현대차에 공급하는 것이다.
통상 사내하청업체는 노동력 원청업체와의 계약금 중 80%를 하청노동자 임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화물'이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화물이나 유통 구조와 비슷하게 보면 된다"라고 지적했다.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사내 노동력 공급 업무에 밝은 원청업체 노무관리 간부나 작업장 관리자 출신이 많은 것도 화물 알선업체에 화주업체 물류담당 간부 출신이 많은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98년 대량 정리해고 당시 관리직과 사무직, 현장부서장 들을 줄이면서 이들을 사내하청업체장으로 '발령'을 내렸는데, 사내하청 업체장의 70%가 이런 인력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구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노조는 교섭대상을 현대차로 삼고 있다. 근본적으로 현대차가 하청업체와의 계약조건이 개선돼야 하청업체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화물연대의 파업과정에서 화물연대가 운송료 인상 교섭자리에 화주가 직접 참여하길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중계약구조에서 결국 결정권은 원청업체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 생산비 절감과 고용 유연화를 위해 하청체제 유지해야**
사측이 이러한 사내 하청 시스템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생산비 절감과 고용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측은 정규직 직접 고용에 따른 부담 없이 필요에 따라 인력을 충원 또는 감원할 수 있고, 사내하청인력이 상대적으로 저임금이기 때문에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시장이 수요의 변동이 많고, 신모델 개발과 생산라인의 변경이 잦아 고용시장의 유연화가 생산비 절감의 필수적인 요소다"라고 말하고 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임금절감을 통한 직접 생산비 절감도 대부분 제조업 사업장의 공통적 요구이기도 하다.
***경총, "하청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이다"**
현재 사내 하청 노동자를 보는 시각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설립을 환영한다"라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조업 내의 사내하청 시스템 개혁을 근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아예 비정규직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사내하청노동자는 하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직접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고, 경총도 "하청 근로자들은 기본적으로 하청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로서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규정하며 아예 '비정규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만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비정규직노조 설립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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