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4일 “네덜란드식 노사관계의 화합정신을 모델로 삼아 새로운 노사관계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협의 수준의 노조 경영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실장은 1일 노사관계는 ‘네덜란드식 모델’로 가야 한다고 밝히고, 3일 다시 ‘네덜란드 모델’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교감이 있었음을 강조한데 이어 4일 다시 ‘네덜란드 모델’을 강조해 14일 골격이 드러날 예정인 청와대의 노사관계 개혁 정책이 결국 네덜란드 모델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해졌다.
***청와대 이정우실장, 네덜란드 모델 거듭 강조**
이실장은 4일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수십년간 누적된 노사간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며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투명경영, 책임경영을 해야 하며 결정권은 사측이 지니되 노측의 목소리를 듣고 수정해 나가는 협의 수준의 경영참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실장은 또 “냉철한 영미식 노사모델보다는 화합을 추구하는 네덜란드식 노사모델이 우리나라에 맞는 부분이 많다”며 “노사문화 미성숙으로 네덜란드식 모델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그 정신을 모델로 삼아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4일 오전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노사관계와 관련 “기업도 투명성 제고 등, 자기 혁신에 힘써야 한다”면서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개혁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해, 청와대 정책실 노동개혁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준비중인 새 노사관계 개혁 방안에 대해 사(使)측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 한국에서의 실현 가능성은?**
이에 청와대 정책실 노동개혁 TF팀이 구상하고 있는 네덜란드 모델의 도입이 어느 수준까지 이뤄질 것이며, 한국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첫째, 현재 민주노총의 탈퇴로 유명무실화된 노사정위원회의 기능 강화를 예상할 수 있다. 이실장이 밝힌 네덜란드 모델은 유럽식 조합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사회경제이사회(SER; Social & Economic Counsil)라는 강력한 노-사-정 합의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있다.
SER는 한국의 노사정위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SER는 정부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돼 있고, 사회ㆍ경제ㆍ노동 등 거의 전분야에 대한 연구와 협의가 이뤄진다. SER에서 합의된 사안은 정부에서 아직 거부된 적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다.
국내에서도 97년 IMF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노사정위원회’를 세워 이러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었으나, IMF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만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고, 주5일근무제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민주노총이 탈퇴한 상태이다.
민주노총은 기본적으로 사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와 노사간의 힘이 불균형적인 상태에서 노사정위는 일방적인 노조의 희생만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사정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재계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재계는 노사정위에서 경영권과 관련된 협상은 논의를 꺼내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입장이고, 정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기 보다는 자율적인 시장기능에 맡기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노사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정위의 기능 강화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 5월 노사정위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사정위에 대통령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라고 밝힌 적도 있고, 인수위 시절부터 줄 곧 ‘사회적 힘의 균형’, ‘통합적 노사관계’,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왔다.
***노사정위 기능강화가 주요 골자 이룰 듯**
따라서 노사정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의 권한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현재 노동분야에 국한돼 있는 노사정위 의제를 확대하고 사회 각 분야별 연구기능을 확충해 전문적인 정책 생산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사정위에서의 합의된 사안이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사정위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 국회나 정부에서 거부할 수 없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사-정 합의체로서의 네덜란드 모델에 대한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재계와 일부 언론이 지적하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미성숙에 대한 지적도 타당성이 있다. 유럽연합상공회의소에서도 “한국의 노사문화는 지나치게 대립적인 것 같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는 자칫 소모적인 논쟁만 불러일으키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없다고 해서 대화와 타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타협’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고 노사정위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인상 억제, 비정규직 문제 해결 효과 기대할 수 있나**
둘째, 정부가 청년실업대란 등으로 회자되는 실업률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네덜란드 모델을 해법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은 임금 동결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적은 파트타임 노동자일 뿐 정규직에 비해 전혀 차별을 받지 않는다. 적게 일하고 적게 받는 대신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갖게 되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목표로 한 네덜란드 모델이 한국에서 노동자들로부터 수용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우선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확보돼 있지 않다. 네덜란드와 같이 교육, 주택, 의료 분야의 사회보장 체계가 갖춰진 곳에서 임금의 감소는 ‘삶의 질’의 후퇴 선에서 노동자들의 선택이 가능하지만,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에서의 임금 감소는 곧 ‘생존권의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고용불안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고용상태에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기 위해 초과근로와 연장근로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은 정부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임금감소 부분을 세금감면의 형태로 보전하고 각종 사회적 안정망의 확충에도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사-정, 갈등과 대립에서 대화와 화합으로**
이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네덜란드 모델은 노-사-정 간의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을 종식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책임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노조에 대해 비정규직 보호를 등한시 한다고 비난했던 사실들을 미뤄봤을 때, 노사정위에서 임금동결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대기업노조의 양보를 얻어내고 반대급부로 제도적 개선을 통한 비정규직 보호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그리고 노조의 경영참여 등은 이날 노무현 대통령과 이정우 실장이 언급한 대로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조의 사용자 감시선에서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직까지는 ‘네덜란드 모델’과 관련해 노동정책의 개혁방향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네덜란드 모델이 ‘사회적 합의’를 최우선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실행한 정책이므로, 청와대도 노-사-정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준의 개혁정책을 내놔야 한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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