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위당직자의 입에서 내각제 개헌 발언이 또 나왔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20일 "내년 총선 전에 내각제에 대한 각 당의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선패배 후 한나라당 지도부에선 종종 '원론적 견해'라는 전제로 내각제 개헌론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이날 김 총장이 내각제 개헌의 파트너로 민주당 구주류를 지칭함으로써 여권 분열을 겨냥하는 동시에 총선후 정계개편을 겨냥한 '두마리 토끼잡기'식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총선전에 개헌논의 진행될 수 있을 것"**
김 총장은 이날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 모두 50% 가까운 득표를 기록했지만 그 결과는 올 오어 낫팅(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이었다"며 "이런 점 때문에 더 이상 이런식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여야 내부에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쪽 모두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의 출범 초기라 말을 안 할뿐이지 국민의 지지에 따라 권력을 분점하는 내각제로 가자는데 내부적 공감대를 가진 분들이 많다"며 "의원들의 후원회 행사에서 민주당 구주류들을 만나보면 우리끼리 하면 동서화합이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하곤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이어 "우리는 영국이나 일본처럼 상징적 의미의 왕이 없으므로 독일이나 프랑스식의 이원집정부제적 내각제가 바람직할 것"이라며 "내년 총선전에 내각제에 대한 각 당의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일 총장의 두마리 토끼잡기**
김 총장이 말한 "여야의 공감대"란 내각제가 당론인 자민련은 물론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민주당 구주류를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박상천 최고위원 정균환 총무 등 민주당 구주류는 이미 지난해 대선 당시부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박 최고위원은 지난달 24일 "궁극적으로 내정은 국회 다수파에서 선출하는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통일 외교 국방을 맡는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한다"며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민련 이인제 총재권한대행도 지난달 30일 민주당 구주류와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고 분권형 권력구조를 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면 어느 누구와도 힘을 합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해 개헌을 매개로 한 구주류와의 연대의사를 보였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도 지난주 대전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주류에게 제휴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이같은 일련의 발언은 민주당 신당 논란이 결국 분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진 시점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요컨대 김영일 총장 발언은 민주당 분열을 겨냥한 동시에, 내년 총선후 새판짜기를 의중에 두고 나온 발언이 아니냐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여기에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내년 총선이후 다수당에 내각구성권을 주는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발언까지 계산에 넣은 발언으로 해석가능하다.
***서청원 '내각 접수' 구상과 일맥상통**
김영일 총장 발언은 한나라당 대표경선 투표일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 나왔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대목이다.
경선 주자들 가운데 김 총장의 개헌 구상에 근접해 있는 후보는 서청원과 김덕룡 후보다.
그 중 김덕룡 후보의 이원집정부제 구상은 시기와 내용면에서 다소 추상적인 반면, 총선 승리를 통해 내각을 접수하고 개헌을 공론화시키겠다고 공약한 서청원 후보의 구상은 김 총장의 발언과 상당 부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박빙의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예민한 상황에 나온 김 총장 발언은 직간접적으로 서 후보에게 보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만약 서 후보가 한나라당의 새 대표가 될 경우 '한나라당발(發) 개헌' 구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정치권 전반의 상황과 맞물려 시기적으로, 내용적으로 민감한 대목을 건드린 김 총장의 이날 발언이 향후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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