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오면서 망설임이 많았다. 정말 이 자리에 꼭 나와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그놈의 '배지'들은 저녁에 약속하고 아침에 딴 소리한 적이 너무 많았다. 나는 적어도 그런 것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나왔다. 어렵고 힘든 길 걸어온 분들에게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러분들이 한발 앞에서 해 줄 것이라고 믿고, 말석에서 따라가겠다. 일단 시작하면 뚜벅뚜벅 갈 것이다.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바란다."
10일 저녁 범개혁신당 추진 세력이 개최한 '정치개혁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김부겸 한나라당 의원의 의미심장한 말에 참석자들은 긴 박수로 화답했다. '이번만큼은 같이 가자'는 격려와 응원, 촉구의 메시지가 담긴 박수였다.
<사진: 김부겸>
***'칼바위산'과 '6월항쟁 비디오'**
민주당 신주류가 신당추진안을 당무회의에 기습상정하는 등 신당 추진을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범개혁신당 추진본부, 개혁당 신당추진위, 국민의 힘 등 '외곽에서' 범개혁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단체들이 모인 이날 행사에서는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참가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참석한 의원은 김홍신 의원과 김부겸 의원 등 단 2명. 그러나 두 의원의 발언은 한나라당 개혁파들의 고민의 일단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오래 전부터 탈당 입장을 피력해온 김홍신 의원은 22년간 바위산을 깨고 길을 냈다는 '만도'라는 인물의 '칼바위산'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개혁세력의 결집에 대한 희망의 피력이다.
김 의원은 "이 정신이 대한민국에 살아있다. 이제 정치는 변해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며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여기에 "희망의 길을 놓는 작은 일에 여러분과 함께 뜨겁게 가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여 범개혁신당에 동참할 의사를 선언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던 김부겸 의원은 낮에 봤다는 6월 항쟁 비디오 얘기를 꺼냈다.
비디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김 의원은 "그 때 우리는 왜 그렇게 헌신적이었고, 겁도 없고, 용감했는지. 그 화면에 다 묻어났다. 한열이, 종철이 사진을 보면서 '내가 벌써 이 배지의 단맛에 취했구나. 너무 오래 기득권에 안주했구나'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죄송하다"며 "여러분들의 꿈과 희생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 비판하는 것보다 수습하고 보듬어 안고 가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해 신당 추진에서 주어지는 역할을 수행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사진: 전체>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결단'**
평소 말을 아끼고 신중한 행보를 보인다고 평가받고 있는 김부겸 의원의 이날 발언은 '결심을 굳힌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에 충분했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에게는 '전당대회 이후까지 봐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역할을 찾으려 한다'는 분석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개혁세력 재결집'을 명분으로 적은 수라도 '이탈'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개혁신당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측에서는 재촉의 말을 쏟아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결단'.
김원웅 개혁당 대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선천성 개혁 불능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 "더 이상 무슨 토론이 필요한가. 주저할 수 없다. 국민들이 지쳐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단뿐이다"고 재촉했다.
"행사에 오며 가슴이 답답했다"는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김홍신, 김부겸 의원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범개혁세력의 단일정당을 창출하자"고 역설했다. 이어 배기선 민주당 의원은 "버릴 것을 버리고 털 것을 털며 가자"고 주장했고 유시민 개혁당 의원도 정치인들이 지역주의의 '인질'이 됐다며 "내 가슴을 열고 총탄을 맞아 인질극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도한 범개혁신당 추진운동본부 준미모임 대표격인 박명광 경희대 전 부총장(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은 대회사를 통해 범 개혁신당 논의를 '제2의 6.10항쟁'이라고 규정,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적은 적'과 '많은 동지'가 필요하다"며 "현재 민주당 내에서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우정어린 연대로 답해야 하고, 정치개혁 운동에 동참하려는 한나라당내의 개혁세력들을 따뜻하게 환영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행보와 그들의 결단을 재촉, 압박하고 있는 세력들의 움직임이 정가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말로는 부정하지만 엄존하고 있는 지역주의와 기득권의 현실 위에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이 서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