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년전인 지난 2002 월드컵 4강신화를 창조한 태극전사들은 대부분 대회직전 펼쳐진 세계최강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도 29일 스포츠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월드컵 4강신화를 가능케 했던 요소는 많이 있지만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통해 얻은 선수들의 자신감은 한국 대표팀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월드컵기술분석관을 지낸 얀 룰프스는 월드컵 1주년을 맞아 쓴 <6월 이야기>(중앙 M&B간)라는 저서에서 프랑스와의 평가전에 관한 비화를 비롯한 흥미로운 월드컵 뒷 얘기를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여긴 겁쟁이들만 모인 것 같군”**
저자는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실전에 대비한 훈련계획을 발표한 이후 벌어진 이용수 기술위원장과 히딩크 감독간의 의미심장한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월드컵을 5일 앞둔 시점에서 세계 최강팀(프랑스)과 경기를 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참패한다면 이후 월드컵의 전 일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정몽준 회장 역시 회의적이십니다. 너무 위험 부담이 큰 일이니 좀 더 약한 상대를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히딩크 감독에게 제안했다.
히딩크는 혼잣말로 “여긴 겁쟁이들만 모인 것 같군”이라며 “이 박사님, 유럽에는 더 약한 팀이 없습니다. 한국은 프랑스 같은 상대와 경기를 갖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벨기에나 슬로베니아나 아일랜드가 한국을 5대0으로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사람들은 겁쟁이들입니다. 정상급 팀과 갖는 모든 경기가 다 중요합니다. 그것이 두렵다면 우리는 짐을 싸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낫겠습니다”라고 맞받아 쳤다.
모험적인 성향이 강하고 ‘공격축구’를 지향하는 네덜란드 출신감독 히딩크는 세계최강팀과 맞붙는 것을 두려워 하는 축구협회 관계자들을 설득시켰고 결국 이 경기가 한국대표팀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저자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연장전에 대해 “몸 전체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느낌이었다. 서든데스제는 스포츠 경기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 그리고 승리와 패배의 차이가 그토록 작은 것이다. 이탈리아가 공격을 할 때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감독은 감정을 누르지 못한 이탈리아 기자들에게 이탈리아 같은 축구 강국이 한국 같은 약체 팀에 패했다는 사실이 물론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이탈리아 팀의 당혹감을 이해했고 그런 감정들이 패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밝히며 “히딩크는 '그러나 이탈리아 팀이 심판 판정에 계속 집착한다면 그들은 정말 형편없는 패자일 겁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모레노 주심이 토티에게 두 번째 경고를 준 것은 실수였고 그것이 우리 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며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이 적어도 두 번의 고의적인 팔꿈치 공격을 한국 선수들에게 가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중 하나는 한국 수비수 김태영이 당한 것이었는데 모레노 주심은 그 두 번의 고의적 가격에 대해 레드 카드를 줄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저자는 “두 번째 골을 넣지 못한 이탈리아 팀 자신이 그 패배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트라파토니 감독의 미흡한 지도력과 비에리의 결정적인 실수로 2002년 6월 18일은 그들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카날 플뤼스에서 히딩크와 공동해설을 한 인연으로 대한축구협회에서 기술관으로 일했던 얀 룰프스는 머리글에서 “이 책은 외국에서 영입된 히딩크라는 감독이 한국과 네덜란드, 미국 출신의 코칭 스태프들을 지휘했던 일년 반 동안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어낸 과정이다"라며 "나는 한국인들의 가치 기준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러한 경험들은 이곳 네덜란드로 돌아와 생활하는 지금도 나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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