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연일 국민들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고 있다.
노 대통령은 23일 교정대상 수상자 및 교정기관장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지금까지 남을 위해 열심히 도와줬는데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경우, 또 그 사람이 고마워하지 않고 트집을 잡고 배신할 경우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쏟은 정성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돌아올 때 어떻게 이겨내는지 모두에게 질문으로 던져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한총련의 5.18 행사장에서의 시위 및 전교조 연가투쟁 등과 관련,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했다.
이튿날인 2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무원노조 파업찬반 투표 강행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는 약속과 신의를 지키면서 해왔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무원 노조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대선 당시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 시민단체, 개혁성향 인사들이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기존 반대세력보다 더 격렬하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선 것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것이다.
***수평적 리더십, 탈권위주의적 화법?**
문제는 이같은 현상을 대하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 측의 시각에 있다.
<청와대 브리핑> 23일자엔 다소 뜬금없이 "소탈함에서 묻어나는 '수평적 리더십'"이란 글이 2면에 실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편안한 사람'이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대로 '대화하기 편안한 상대(easy man to talk)'다"로 시작되는 이 글에서는 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화법'에 대한 예찬이 담겨 있다.
브리핑은 지난 22일 재외공관장 부부 동반 만찬에서 노 대통령이 "오늘 자유롭게 담소하는 것을 보니 제가 만만하게 보였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해 웃음꽃을 피운 뒤 "지도자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시스템과 매뉴얼만 있으면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이런 민주주의를 한번 해보려는 게 제 소망"이라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이어 "이게 잘 안된다"면서 "국외에서 볼 때 '한국이 개판이구나' 생각이 들어도 이런 민주주의 한번 하자는 게 내 소망"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발언도 그렇지만 "한국이 개판이구나"라는 발언도 '탈권위주의적 화법'만이라고 봐주기엔 무리가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오해"?**
브리핑은 또 지난 21일 화물연대 파업이나 한총련의 5.18 행사장에서의 시위에 대한 정부의 강경입장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대해 '오해에 대한 오해'라고 규정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노 대통령의 원칙은 변한 것이 없다"면서 '우리 편인 줄 알았다는데 아니다'라는 말은 원칙을 중요시해 편들기에 인색한 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오해'라는 게 브리핑의 설명이다.
브리핑만을 놓고 보면 정말 청와대측이 노 대통령의 '변신'에 대한 비판이 일부 국민들의 '오해'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같은 의심은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인 22일 청와대 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의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문 실장은 이 자리에서 주위 사람들의 참견에 몰고가던 당나귀를 결국 머리에 이고 갔다는 이솝 우화를 예로 들면서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문제 제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되 왜곡된 사실관계는 적극 나서서 시정하고 국정홍보에 대해서는 보다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의 혼란에 대해 '이유기(離乳期)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배신'에 분노하기에 앞서 원인 찾아야**
이같은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식이야말로 국민들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싶다. 또 지지자들의 트집잡기와 배신에 분노하기에 앞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 등 사회경제적 갈등에 대한 해법, NEIS에 대한 전교조의 집단반발, 한미정상회담 이후 급변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미동맹 및 남북관계, 아파트값 폭등에 대한 빈부격차 심화...이런 굵직굵직한 현안들에 있어 같을 줄 알았던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의 급속한 '변신'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물론 지지자만의 대통령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와 요구가 좌절될 수도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토록 '대화'와 '토론'을 강조하는 노 대통령 자신이 한미관계, 대북관계 등 민족적 명운이 담긴 중요한 사안 등에 대한 입장 변화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 없이 지지자들이 무조건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 정책의 신뢰성,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즉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라는 게 재미언론인인 김민웅 목사가 22일 한 강연에서 한 지적이다.
내달 4일이면 노 대통령은 취임 1백일을 맞는다. 각 언론에서 취임 1백일을 맞아 노 대통령의 지지율 조사를 할 것이다. 최근 취임 두 달을 맞아 벌인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60%대에 불과했다. 취임 초 김대중 전대통령, 김영삼 전대통령이 80%대의 지지율을 보였던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치다. 게다가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 한가지만으로도 적잖은 지지율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현재의 난국은 일부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오해'나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대통령이 서운함을 토로한다거나 보좌관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루바삐 '문제의 근원'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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