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은 그 기본이 순환론적 사고방식이며, 필자 역시 음양오행을 통해 역사의 순환과 세계사의 전개를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서구 내지는 이슬람 역사 방면에서 순환론적 사고를 전개한 두 사람의 위대한 학자가 있는 바, 그들은 '서구의 몰락'을 쓴 독일의 슈펭글러와 이슬람권의 위대한 사상가인 이븐 할둔이다.
이븐 할둔은 이른바 '균형의 순환(circle of equity)'라는 것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설명했는데 먼저 그 내용을 소개한다.
* 군대가 없이는 군주권이 있을 수 없다.
* 재화가 없이는 군대가 있을 수 없다.
* 재화는 농민이 생산한다.
* 술탄은 정의로서 농민을 보호한다.
* 정의는 화합을 필요로 한다.
* 세상은 조화로운 정원이며 국가는 그 담장이다.
* 국가를 버티는 기둥은 율법이다.
* 군주권이 없이는 율법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하나의 원형으로 구성되어 각 부분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슬(chain)을 구성한다. (이슬람 문명사, 버나드 루이스 엮음, 김호동 번역, 이론과 실천 사 간행, 316 쪽)
이 균형의 순환이 말하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며, 술탄의 기능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 잘 머무를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마치 동아시아의 정명론(正名論)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정명론의 주장을 이븐 할둔은 균형의 순환이라는 논리를 통해 모든 이가 제 자리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이에 군주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븐 할둔은 14 세기의 인물로서,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아에서 출생하였다. 여러 이슬람 나라들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내다가 나이 마흔이 넘자, 알제리의 오랑 지방의 한 마을에 칩거하면서 '이바르의 책: Kitab al-ꡐIbar'이라는 제목의 세계사를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앞서의 역사서들이 사건의 단순한 나열이나 연대기에 머물렀던 것에 반해 역사가 변하는 어떤 원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했기에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책의 서두에 있는 'Muqaddimah', 즉 '역사 서설'에서 사회의 형성과 변화의 사정 ․법칙을 고찰하였고, 문화사의 근본적인 여러 문제에 해답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으로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인간 사회를 유목민과 도시 정주민으로 분류하고, 사막이라는 자연 환경에서 강한 단결 정신을 지닌 유목민들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다시 말해서 사치 생활로 나약해진 도시에 침입하여 왕조를 건설한 소박한 정복 유목민들의 우수성을 역설했으며 정복 유목민들이 도시 생활로 문명화되어 다시금 새로운 유목민에 의하여 정복 교체된다는 특이한 역사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균형의 순환도 이러한 주장의 일부이며, 그는 또 국가를 한 인간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노동이 사회의 성장과 자본 축적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경제학의 원조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보다 무려 4 백년 앞서 제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븐 할둔의 사상을 계승한 이슬람 학자로서 유명한 이는 나이마(Naima)라는 사람이다. 그는 오스만 터키가 솨망의 길을 가고 있을 때, 역사의 인체적 비유와 순환적 역사관을 강조하면서 그 처방을 제시했다.
인체적 비유란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신체의 각 장기와 같아서, 나라의 재상은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는 군인을 점액에 비유하고, 문관을 혈액에, 상인을 황담즙에, 농민을 흑담즙에 비유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상황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은 점액과 흑담즙, 즉 군인과 농민인데 점액은 통제하기가 매우 힘들고 지나치면 영양실조를 불러온다고 보았다.
흑담즙이 위장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신체의 균형이 깨어지듯이 농민으로부터의 세금이 군인들에 의해 쓰여져 국고로 들어오지 못하면 국가는 병들게 된다고 했다.
나이마는 이어서 처방법도 제시하였다. 우선 지출을 줄임으로써 수입과 균형을 맞추어야 하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 봉급은 제때에 지불되어야 한다. 군인들의 방자함은 제거되어야 하며 군대는 사기를 되찾아야 한다. 지방 행정 역시 농민들에게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공정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술탄은 항상 명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백성들이 그를 경외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이마의 계획은 단순하였지만, 대단히 효과가 있었고 오스만 제국은 다시 한번 강성해질 수 있었다.
나이마는 또 순환적 역사관과 인체적 비유를 더욱 발전시켜 한 국가의 생명을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 발전 그리고 노쇠 과정에 비유하여 다섯 단계로 나누었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음양오행의 단계 구분과 일치하고 있다.
그가 설정한 단계는 영웅적인 창건의 시대, 왕조와 관리들에 의한 확립의 시대, 안정과 평온의 시대, 만족과 포만의 시대, 마지막으로 해체의 시대였는데 이는 정확하게 오행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의미하는 바와 일치한다.
목은 생겨남과 출발이고, 화는 발전이며, 토는 성숙이고, 금은 결실이며, 수는 해체 또는 소멸이기 때문이다. 즉 나이마가 설정한 단계는 오행의 각 단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순환적 세계관을 수학의 형식으로 표현하면 정현파(正弦波), 즉 사인 곡선이 된다. 또 사인 곡선은 시간의 진행 방향에 따라 위상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기에 사인 곡선은 근본적으로 원운동이고 원운동이란 결국 순환을 말한다.
이븐 할둔이나 나이마의 역사관은 훗날 20 세기에 와서 슈펭글러에 의해 또 다시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여러 문명의 발전과정에는 유사점이 있다고 보고 정치 ․경제 ․종교 ․예술 ․과학 등 모든 사상(事象)으로 문명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사회가 문명사에서 어떠한 단계에 이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역사학자들인 나이마나 할둔의 생각, 즉 문명을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고 모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문명도 발생 ․성장 ․노쇠 ․사멸의 과정을 밟는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슈펭글러는 자신의 생각을 문명의 흥망에 관한 학문인 문화형태학이라 하고, 이를 근거로 서양문명의 몰락을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서구의 몰락'에서 강조한 것은 순환적 역사관을 인정하는 가운데, 인간의 주체 의지를 강조한 것인데 이는 결국 고대 그리스 비극과 일맥상통하는 세계관이다.
할둔이나 나이마로부터 슈펭글러에게 이어진 문명의 고찰 방법은 훗날 문명을 '도전과 응전'으로 파악한 토인비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 순환론에 있어 가장 정밀한 이론체계를 만들어낸 동아시아 세계에는 순환론적 역사관을 표방했던 인물은 없었던 것일까?
물론 있었다, 다만 오행적 역사관이 아니라 주역의 사고관, 음양과 사상(四象)을 통해 세계의 순환을 설명했던 이가 있는데, 소옹(邵雍)이란 사람이다. 흔히들 소강절로 더 잘 알려진 소옹은 중국 송대의 역학자로서 주염계와 같은 시대 인물이다.
천문, 역수를 배웠으며, 벼슬을 사양하고 일생을 평민으로 지냈던 그는 자치통감을 저술한 사마광과 친교했다. 주자는 소옹을 주염계, 정명도, 정이천 등과 함께 도학의 중심인물로서 간주하기도 했었다. 그의 역사관은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까지 서구나 이슬람 세계에서 순환적 역사관을 지녔던 이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음양오행과 일치하는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세상을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가지 힘과 네 가지 원소로서 설명했던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글은 사실 그 글의 속편에 해당된다.
하지만 음양오행과 서구적 사고관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점도 있다. 이 점에 대해 다음 글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