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상 교사다. 또박또박한 서울말씨에 거꾸로 책을 놓고도 중요한 곳엔 밑줄을 긋고 별표까지 치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여느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과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하고, 학생들에게 의미 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들다는 평범한 교사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뿐만 아니라 십수년간의 교직생활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이다. 서울 소재 학교를 마다하고 굳이 지방학교를 찾아 내려간 것 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돌연 사직서를 내던지고 막노동판을 전전하기도 했던 이력이 그렇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터를 닦았다는 ‘간디학교’를 거쳐 지금은 오는 9월 분당에 개교예정인 또 하나의 대안학교 ‘이우학교’에서 과학 과목을 담당한 최영준 선생님이 바로 그다.
전교조와 교장단 갈등이니, NEIS를 둘러싼 공방이니 하며 어느해보다 무겁게 내려앉은 올해 스승의 날 아침 그를 만났다. 평탄치 않았던 그의 이력과는 달리 “인터뷰가 자신을 미화하거나 신성화할까봐 걱정”이라는 수줍음이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가르침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
“교사로서 중요한 부분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이건 참 소중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소중하냐하면 이건 두려워해야 할 정도로 소중한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남의 인생을 말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계는 망가지면 다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건 남의 인생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또 한 가지는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이 된다. 교사 초창기 생활을 돌아보면,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고 아이들이 관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선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교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의 다른 말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교사가 아닌가 싶다.”
그가 말하는 교직 생활의 철학은 한마디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다. 전교조가 결성되던 89년 천직처럼 생각했던 교직을 떠난 이유도 동료 교사들에게나 학생들에게 인생에 있어서 옳은 것, 중요한 것, 참된 것에 대해서는 이중적 가치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걸 실천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교단을 떠나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짓기도 했다. 막노동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을 떠돌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다시 교단에 섰다. 학교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나 사회적 안정을 보장했지만, ‘교실 붕괴’라는 현실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무기력을 함께 느끼게 했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택했다. 받고 있던 월급의 50% 수준에 불과했으나 ‘간디학교’에선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고 ‘주연배우’가 아닌 학생들의 ‘보조자’로서 마음껏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안학교 내에서도 이상과 현실은 있었다. 교육적 ‘이상’ 만으론 내부의 부실한 행정이나 학교운영 시스템을 극복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 교사가 행복한 학교가 되기를”**
“획일성의 반대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이라는 말의 내부적인 개념은 사람에 대한 존경이다. 각 사람의 잠재력, 가치가 존중되는 것이다. 수학을 못하지만 등산을 잘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이건 듣기 좋은 이론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곪아터진 공교육의 문제가 이런 현상을 빚었다. 공교육의 질이라는 것은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질이 너무 낮다. 반대가 무엇이겠나.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시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적으로건 정서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우학교에서 생각하는 것도 이 두 가지의 실현이다. 대안학교를 부적응 학생의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대단히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는 부적응아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우리 공교육에 대한 대안이다. 다시 말해 저수준과 획일성에 대해 다양성과 질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추상적 답변은 지극히 조심했다. 그러나 “보수성을 띄고 근대문화를 고집하는 거의 하나 남은 유일한 섬”이라고 말한 우리나라 학교 현실만큼은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가질 수 있도록, 왜 사는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어떻게 사는지를 알게 한다면 전인교육과 입시라는 두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상과 현실에 대한 욕심, 좋은 교육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이우학교’의 개교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선 아이들이 행복하고 더불어 교사들이 행복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게 그의 포부다. “내 자식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돼야 한다”는 각오로.
이우학교와 그의 ‘실험’을 지켜보며 내년 스승의 날엔 그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가 달려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두려울 정도로 소중한 일”**
프레시안 : 스승의 날인데 가르쳤던 학생들에게서 인사는 좀 받았나.
최영준 : 아직 전혀 못 받았다.(웃음)
프레시안 : 80년대 후반 교편을 잡은 걸로 알고있다. 십수년이 지났는데, 언제가 교사로서 가장 보람이 느껴지나.
최영준 : 지금은 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실제로 학생들과 접하지 않는 시기다. 교사로서는 학생들과 접하는 모든 시기가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과 만났던 모든 시기는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가 있었다.
프레시안 : 반대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최영준 : 힘들다는 의미는 구분을 해야겠다. 외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89년도 전교조가 처음 생겼을 때는 외적인 문제로 대단히 힘들었다.
내적으로 힘들었던 때는 내가 학생들에게 의미가 없는 존재일 때, 다시 말하자면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도무지 도와줄 수가 없고 삶이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느꼈을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요즘 교실붕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전라남도 소도시에서 교편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참 무기력한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교실붕괴가 TV 뉴스에서만 나오는 대도시의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일이 정감을 느껴야 될 지방 소도시에서까지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더 이상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척 힘들었다.
실제로 내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게 없고, 단지 월급장이일 뿐이다라는 고민 때문에 대안학교로 옮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일반학교에도 있었고 대안학교에도 몸담았던 그런 교사생활을 통해서 나름대로 가진 교육자로서의 덕목이랄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교육철학이 있다면.
최영준 : 그런 거창한 것은 전혀 없다. 내가 가르친다는 게 뭐다라고 정의를 내릴 처지가 아닌 것 같다.
단지 교사로서 중요한 부분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이건 참 소중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소중하냐하면 이건 두려워해야 할 정도로 소중한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남의 인생을 말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계는 망가지면 다시 만들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건 남의 인생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교사도 하나의 직업이지만 이건 상당히 소중하고 두려움을 가져야 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의사라는 직업이 월급이 많이 보장되는 직업이라기보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존귀한 직업인 것과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는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이 된다. 교사 초창기 생활을 돌아보면,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고 아이들이 관객이었던 것 같다. “너희가 이렇게 잘 가르치는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고 내 덕분에 출세를 할 수도 있다”는 의식 말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선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교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의 다른 말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교사가 아닌가 싶다.
***“내 꿈을 걸었던 곳에서 월급장이로 전락할 수는 없었다”**
프레시안 : 초창기 교직 생활은 과도할 정도의 자신감을 가졌었다고 했는데, 그 당시 이력을 보면 서울학교를 마다하고 지방학교에 간다던지, 잘 다니던 학교에 돌연 사직서를 낸 대목이 눈에 띈다. 그땐 어떤 심경으로 그랬나.
최영준 :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때는 중요한 일에 대한 진실성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옳은 것에 대해서 적당히 해석하는 것 같다. 우리가 윤리 시간에 가르치는 대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내가 교육을 하면서 그 당시 종교적 문제라든가 교단의 갈등이 있었을 때 정말 이것이 옳은 일이고 당위성이 있다면 그에 대한 분명한 행동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교단을 떠난 부분도 이것이 동료 교사들에게나 학생들에게 인생에 있어서 옳은 것, 중요한 것, 참된 것에 대해서는 이중적 가치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걸 실천해 보이고 싶었다.
프레시안 : 당시 교단의 갈등이라면 전교조가 결성되던 시기인데, 교단을 떠난 게 그것과도 관련이 좀 있는 것인가.
최영준 : 특별한 관련이라기보다는, 당시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많은 동료교사들이 해직됐었다. 나도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진실됨의 표현이었다는 생각이다.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존경할만한 많은 분들이 교단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결혼을 막 해서 꼬마가 막 태어난 시기였다. 참 두려웠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아빠는 89년에 뭐했어요. 그때 좋으신 선생님들은 다 떠났다는데요”라고 물어볼 것만 같았다.
나 자신도 사회에서 편하고 안락하게 사는 문제와 올바르게 사는 것 사이에서 분명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데, 아이가 그런 질문을 던질 것을 생각하면 하물며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내가 서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프레시안 : 그렇게 교단을 떠나서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최영준 : 우스갯소리로 도를 몇 년 닦다 하산했다. 처음에 교사직을 그만둘 때는 다시는 선생 안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두고 나선 남 밑에서 농사도 짓고 했는데, 도저히 먹고 살수가 없더라. 그래서 한 겨울에 하산을 했다. 막노동판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어떤 학교 선생 모집 공고에서 집을 주겠다는 걸 봤다. 집사람이 둘째아이도 가졌고 당시엔 우리가 떠돌이처럼 살았는데, 집을 준다고 하니까 가보자 해서 갔다.
이런 인터뷰에선 나라는 사람이 아주 완벽하게 묘사가 돼야하고 존경할만한 일관된 길을 걸은 사람으로 보여야 하겠지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못된다. 두 번째 교편생활은 단지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 생각엔 (교사 생활을) 오래 하겠는가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그 학교 이사장하고 면담을 하는데, 그 분께서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조금 하다가 그만둘 것이라면 우린 당신보다 못한 사람을 뽑는게 오히려 낫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2년은 반드시 근무를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엔 무려 8년이 돼버렸다.
먹고살기 위해서 배운 일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 지식을 판 것이다. 하지만 교직이라는 건 내가 젊었을 때 꿈을 걸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먹고살겠다는 이유로 다시 섰을 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선생의 길을 걷는 것 같다.
프레시안 : 겸손한 표현이다. 교직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학교가 자신을 부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영준 : 그런 당위성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나 자신이 이 일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려고 과를 선택했을 때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하나는 공대에 가서 뭘 만들고 싶기도 했고, 다른 하나는 사범대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를 선택하려 했다. 결국은 사범대를 선택했다. 당시엔 사범대가 공대보다 점수가 낮았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실망을 하긴 했지만. 나로선 어른들의 말을 거스른 첫 선택이었다. 비록 어렸을 때 선택이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천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지만 “공대는 물건을 만지는 것이지만 사대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내 인생에 더욱 가치롭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내 삶의 방향이라는 것이 사람과 같이 사는 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일반학교에서 8년이나 잘 적응해 생활하다가 대안학교 쪽으로 눈을 돌린 계기는 무언가. 일반적인 생각으론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모험을 건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최영준 : 교실붕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데 교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삶과 꿈을 걸었던 곳에서 내가 월급장이로 전락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정 돈을 벌겠다면, 차라기 연구소에 들어가서 기계나 물건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가 잘 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곳, 그리고 내가 잘 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보자는 곳이 대안학교였다. 만약 교육자로서 이 시대에서 무기력을 느끼지 않았다면 계속 있었을지도 모른다. 월급이나 사회적 안정보다도 훨씬 내 마음을 짓누르는 강한 고통이었다.
프레시안 : 그렇게 택한 간디학교 생활은 어땠나.
최영준 : 너무 좋았다. 내가 간디학교 면접을 보러갔을 때 교장 선생님이 월급을 많이 줄 수 없다고 하더라. 내가 당시 받고 있던 월급의 50%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때 내 말이 “급여 문제는 나만 먹고사는 게 아니라 가족이 먹고 사는 것이니까 가족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고 그날 돌아와서 가족들하고 회의를 했다. 애들 엄마가 “아빠가 지금 학교생활을 너무 힘들어 한다. 새로 직장을 옮기면 아빠가 행복해 할 것 같다. 하지만 아빠 월급이 줄어서 너희들 피아노 레슨도 못받는다”고 했더니, 우리 꼬마가 “아빠가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겠느냐”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고상한 철학자의 말도 아니고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가 한 말이지만 그것은 아직까지 내겐 빚이다. 거꾸로 보자면 자식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이고, 이웃이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행복한 것은 극단적으로 보면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빚을 안고 간디학교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간디학교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즐거웠다. 경제적으론 어려웠지만 정말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고, 내가 무대의 주연배우가 아니라 보조자로서 마음껏 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이우학교와는 어떤 계기로 인연이 닿은 것인가.
최영준 : 간디학교에 처음 갔을 때는 평범한 교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안학교에서 선도적이라는 간디학교도 내부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엉망이었다. 행정적인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고, 수업도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상황이 어려웠으면 이런 곳이 대안으로 떠오를 정도일까 하고 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간디학교에서 참 열심히 일했다. 그냥 애들만 가르치는 교사였던 내가 간디에선 교육행정가로 변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교육행정을 따로 공부한 바는 없지만, 사람들이 이걸 바라보고 우리나라에 자유로운 학교가 있다고 생각할텐데 이걸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생각해보면 하루에 잠을 서너시간 밖에 안 잤던 것 같다. 그렇게 한 2년을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대안학교의 행정, 운영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컨설턴트가 된 것 같았다.
물론 간디 학교에서도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교육적 이상을 실현해야 하는데 거기에도 다시 현실과 이상이 있더라. 마치 일반학교의 이상이 대안학교라면, 대안학교 내에서도 이상과 현실이 있었다는 말이다. 거기서도 나는 이상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런 현실을 이상에 맞추기 위해서 꽤 노력했던 것 같다. 이건 간디학교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상과 현실에 대한 나의 욕심이었다. 좋은 교육에 대한 애착이었던 것 같다.
이우학교에 온 것도 새로 시작하는 곳이니까 제대로 된 곳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서로가 마음이 맞아서 오게 된 것이다.
***“학교는 근대문화를 고집하는 유일한 섬”**
프레시안 : 이우학교에선 평교사인가.
최영준 : 과학을 담당하는 평교사이기도 하고 지금 설립 단계이기 때문에 학교 설립에 필요한 교육 시스템을 짜는 일에도 관여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우학교 교육 시스템에 관해서 조금 설명해 달라. 다른 대안학교와 다른 점 등.
최영준 : 간디학교의 장점은 학교 문화에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는 이중적 구조다. 정직이라는 덕목에 대해서도 겉에서 하는 말과 실제가 틀리다. 아이들은 정직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느낌이 없다. 그런데 간디학교는 그것이 거의 일치한다. 정직, 사람, 가난, 겸손 이런 부분에 있어 물론 그 이상에 접근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다른 용어를 쓸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간디학교를 칭찬할 때 그런 표현을 한다. 내가 경험한 직장 중에서 유일하게 직원회의 시간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던 곳이라고.
그런 간디학교 문화의 장점을 기반으로 해서 이우학교에선 교육의 질과 시스템을 더욱 보강하려 했다. 소위 대안이라고 했을 때 대안이라는 용어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럼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안학교라고 하면 아직까지 사람들은 부적응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이다. 어느 한 두명의 아이가 학교를 뛰쳐나왔다면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1년에 6만명이라는 아이들이 학교를 나오고 있다. 말이 6만명이지 수십개의 학교가 한해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에 대한 시설을 마련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흔히들 사람들은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를 두 가지로 진단한다. 하나는 획일성이다. 누구나 대학을 위해서 한 줄로 선다. 획일성 안엔 무엇이 있나. 강제성이다. 교복이니 두발이니 하는 것에서 사람의 개성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획일성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획일성의 반대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이라는 말의 내부적인 개념은 사람에 대한 존경이다. 각 사람의 잠재력, 가치가 존중되는 것이다. 수학을 못하지만 등산을 잘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이건 듣기 좋은 이론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곪아터진 공교육의 문제가 이런 현상을 빚었다. 공교육의 질이라는 것은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질이 너무 낮다. 반대가 무엇이겠나.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시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적으로건 정서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우학교에서 생각하는 것도 이 두 가지의 실현이다. 대안학교를 부적응 학생의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대단히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는 부적응아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우리 공교육에 대한 대안이다. 다시말해 저수준과 획일성에 대해 다양성과 질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다양성의 측면에서 많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전교생이 각자 시간표가 다를 수 있는 개인별 맞춤 시간표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2부터는 모든 학생들이 다른 시간표를 가질 수 있다. 자연계 인문계 억지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우학교는 계열을 정해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수업을 들으면 그것이 모아져서 자신의 계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1백명이 모두 같고 1명이 다르더라도 그 1명을 위한 수업이 시스템으로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시뮬레이션이 다 돼있다. 이것은 이미 7차 교육과정에서 그렇게 하도록 돼있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실제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학교가 거의 없다. 문제는 교육 시스템을 고치려는 주체들의 마음가짐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고통을 느낀다. 이런 현실을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자들은 무책임하다고 할 정도로 화가 난다.
그리고 학생들 담임제도 우리는 아이들이 담임을 선택하도록 했다. 담임이 조회 종례하고 생활기록부 쓰고 통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학생의 학사와 진로를 상담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학생들이 시간표 선택을 잘못하면 어긋날 수도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이드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지도교사제를 도입했다. 한 교사당 8명 정도의 학생을 맡게 되는데, 그 교사는 담당 학생에 대해선 진로와 현재의 삶, 학습, 교우관계 등에 대해서 늘 고민을 하게 된다.
저수준의 교육에 대한 시스템도 우리는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건 못하는 학생이건 교육 현장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사가 강의를 할 때 중간 정도에 맞춰서 한다고 하지 않나. 중간정도라는 것은 평균적으로 적당하다는 것이지 아무도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의 탐구력을 기르는 것에 목적을 둔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법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린 수업이전 단계와 수업단계를 나눈다. 수업 이전 단계에선 온라인 시스템으로 학습처방을 준다. 인터넷을 통해 충분하게 아이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교육의 감을 잡고, 아이들의 준비 정도에 따라서 수업단계의 수위를 맞춘다. 학생들도 공부 방식을 개별적으로 할 수 있고 선생님들도 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해야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프레시안 : 얘기가 자연스럽게 대안학교로 넘어갔는데, 공교육 붕괴에 관한 말들이 많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고 해결책이 무엇인가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최영준 : 평범한 선에서 얘기를 하자면, 근대 문화와 현대 문화의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어떤 분들은 붕괴할 건 붕괴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다. 학교의 출생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학교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근대의 표상이다. 학교라는 대중교육기관이 도입된 지는 인류역사상 2백년밖에 안된다. 그 배경은 근대화와 동시에 진행됐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말하듯이 지식기반 사회라고 말하지 않나. 왜 학교만은 그것을 안보나. 세상에 학교만큼 변화가 안 되는 곳이 있을까 싶다. 아직도 교문에서 아이들을 잡고 있는 곳이 군대 교도소 말고 또 있나 싶다. 그런 면에서 교실 붕괴는 근대 문화와 현대문화라는 문화의 충돌이다. 보수성을 띄고 근대문화를 고집하는 거의 하나 남은 유일한 섬이 학교다. 이제는 판단해야 한다. 학교는 근대문화를 고집해야 하는 곳인지, 학교도 문화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하는 곳인지. 그에 대한 의사결정만 하면 해결책은 단순하다. 무엇이겠나. 변화해야 한다. 내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공교육에, 일반학교에 만성화된 문제가 있다면 그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정상적인 수순 아닌가. 대안학교가 일정정도 자극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최영준 : 물론이다. 개선, 개혁의 주체는 항상 당사자여야 한다. 현재 공교육 내에서도 많은 선생님들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우학교와 제도권 학교를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우학교도 법적 인가를 받은 제도권 학교이니까. 하나의 제도권 학교로서 발을 한발 먼저 내딛었다고 생각을 해달라. 요즘 문제가 되는 교사 인사, 교장 직선제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모델을 제시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우리도 공교육 중의 제도권 학교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모범을 보이자는 의미가 크다. 교만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한발 앞선 일로 생각을 한다.
프레시안 : 대안학교가 추구하는 바가 듣기엔 참 좋지만, 학부모나 학생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좁다. 솔직히 대안학교는 등록금도 좀 비싸고 해서 대안학교라는 것이 아직까진 질 높은 교육을 추구할 수 있는 특수층들이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부적응 학생들의 집합소’라고 말한 부분과는 반대급부적인 문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영준 : 대안학교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귀족 학교에서부터 부적을 학생들의 학교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하기에 지금까지의 스펙트럼에서 대안학교가 극단에 위치한 것도 이해를 해줬으면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공교육, 제도권 학교가 전근대의 극단에 서 있었고, 그로부터 탈출을 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강한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학교에서 지식위주의 교육만 한다는 것의 반대급부로 어느 극단적인 학교는 지방 산골짝에서 파묻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저수준의 교육이 문제가 되니까 귀족학교가 틈새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대안학교가 나온지도 5년이 됐다. 이제 원 위치를 찾아야 한다. 중간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우학교는 후대 사람들이 뉴트럴한(중간적인) 학교로 자리잡은 곳으로 후대 사람들이 교육사적으로 평가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이 이우학교가 모든 대안학교보다 좋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초기 대안학교 극단적인 모습이 없었다면 이우학교가 나올 수 없었다는 뜻이다. 앞선 대안학교의 수준이 조금은 열악했다 하더라도 그런 시도가 있었기에 이정도 까지 온 것이다. 역사적 시기적으로 이우학교가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에 한빛고 사태 같은 걸 보면서 대안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또 한번 나빠진 것 같다.
최영준 : 한빛고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립학교에서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나타났던 문제가 대안학교에서도 나온 것이다. 문제가 만성화되다 보니까 대학에서도 터지고 일반학교에서도 터지고 대안학교에서도 터진 것이다.
프레시안 : 입시라는 제도교육 과정의 큰 벽을 대안학교가 넘을 수 있을지도 관건 아니겠나.
최영준 : 우리사회에서 입시와 전인교육은 두 마리 토끼다. 그러나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으면 대안이 될 수 없다. 처음엔 이것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이유는 봉사하기 위함에 있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봉사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를 바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선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린 입시명문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마리 토끼는 절대 상충되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조금 더 민감한 질문을 하자면, 최근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어떻게 보는지.
최영준 : 내가 답변하기엔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다. 이건 참 큰 틀에서 말해야 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아주 작은 현상적인 부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내 자식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돼야 한다”**
프레시안 : 큰 뜻을 가지고 왔는데, 이우학교에서 꼭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최영준 : 학교가 행복한 곳이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더불어 교사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학교, 교사, 그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흔히들 학교를 지역사회의 센터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학교가 행복하면 지역사회가 행복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하는 교육에 대한 작업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대단히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공동체의 배타성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의 다양성과 행복을 위해 노력을 하는데도 아이들이 자신만 안다든가 하면 안된다. 우리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회적 책무성을 갖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 내에 엘리트적 배타성을 갖는다면 그건 실패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한발 앞서 한다고는 하지만 우월감을 갖는다면 실패다. 배타성에 대한 한계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 ‘스승’ 이라는 말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 속에는 존경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느낌인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극복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최영준 : 존경이라는 의미가 인격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교사라는 직업이 존경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면 인격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인격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정직’이라는 단어를 선생이 쓸 때는 아이들이 ‘정직’이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가 피부에 꽂힐 수 있어야 한다. 교과에 있어서도 어려운 물리현상을 설명하더라도 선생님이 며칠을 고민해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야 선생님의 노력과 땀을 아이들이 알아 줄 것이다. 교사지위 확보 법이니 월급이니 하는 것과 존경은 별개의 문제다.
프레시안 : 스승의 날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스승이나 교육의 모델로 삼고 있는 분이 있나.
최영준 : 없다. 이건 내가 교만해서라기보다 막연히 단편적인 글이나 현상으로 존경한다 안한다를 쉽게 말하기 어렵다. 내가 이 길을 갈 때 까지는 어떤 낭만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할 수 없다. 내가 낭만적으로 합리성과 이성에서 어긋났을 때 그에 대한 파장은 아이들이 감당해야 한다. 함부로 누구를 존경한다고 말하기엔 현실이 너무 두렵다.
프레시안 : 자녀교육은 어떤가. 흔히들 남 가르치는 사람들도 자기 자식 교육은 어렵다던데.
최영준 : 어렵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인격이니 뭐니 하다가도 집에 가선 쉽게 화도 낸다. 아이가 나를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야단을 치면서 비교육적이라고 생각 하는 순간 교육이 뭔가를 늘 고민하게 된다.
프레시안 : 대안학교에 입학시킬 생각은 없나.
최영준 : 내 자식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의 꿈의 정직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자식의 장래를 가지고 장난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우학교가 9월에 개교를 한다. 2년 있으면 우리 아이들도 이우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또래가 되는데, 나는 이 학교가 아니다 싶으면 보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동안 열심히 할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학교이지만 냉철하게 판단을 하겠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 이우학교와 선생님의 노력에 성과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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