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는 6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삼성전자 주식 매각을 요구하는 두번째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참여연대는 '공직은 신뢰없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두번째 공개서한에서 진 장관이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부응하여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은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팀장이 작성한 공개서한 전문. 편집자
***공직은 신뢰 없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진대제 장관님께
참여연대가 진 장관님께 8만여주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과 스톡옵션(stock option) 의 매각을 요청한 것에 대해 이러저러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의 주장에 공감을 나타내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찬반 양론 모두 경청할만한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어찌됐든 고위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가 본격적인 공론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내내 별다른 언급을 안 하셨던 진 장관님께서도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답변을 주셨습니다.
장관님의 답변 내용은 국회 상임위에서 밝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진 장관께서 최근 KT주식 54주를 매각하셨고 그 이유가 이해충돌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밝히신 것은 장관님께서도 참여연대와 인식을 같이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장관님의 이 같은 결단과 선택은 분명 높이 평가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와 달리 삼성전자 주식은 직무와의 연관성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매각이 아닌 신탁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현행제도하에서는 진 장관님이 주식을 매각해야 할 어떤 법적인 의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진 장관께서는 어쩌면 이 문제와 관련해 가능한 모든 외관상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참여연대의 요구가 '지나치다'라고 반발하기도 합니다. 특히 공직사회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외관상의 조치'이라고 표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진 장관님이 밝힌 '신탁'은 실재(實在)와 내용에 있어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이미 지난 서신에서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해충돌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오해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그 동안 제기된 반론에 대한 제 의견을 밝히는 것으로 서신을 대신하겠습니다.
먼저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구체적인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그 가능성만으로 이를 문제삼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입니다. 공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불만일 겁니다. 그러나 권한이 많은 고위공직자일수록 부패의 가능성도 높아지며 따라서 규제와 책임 역시 이에 비례해서 커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해충돌은 적어도 부패의 가능성이 내재된 부분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이를 예방하자는 취지입니다.
이해충돌을 규제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공직(公職)이 국민의 신탁(信託)이라는 데 있습니다. 신탁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공직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 우려가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 해도 공직을 맡길 수 없습니다. 실제 이해충돌이 발생해도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진 장관께서 결코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장관직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산 등에 연연하시는 분이었다면 공직에 진출하지 않고 삼성전자 사장으로서 충분히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 장관께서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한 의식적이든 아니든 간에 공적 결정이 공익이외의 무엇인가에 의해 이끌리게 될 위험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민이 장관님의 직무수행에 부당한 행위가 있을 것으로 추단할 수 있으며 이같은 상황마저도 피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이해충돌을 규제하는 것은 국민과 공직자간의 신뢰원칙이 본질인 것입니다.
또 다른 오해는 이해충돌 문제와 직무연관성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장관님께서도 KT와 정통부 업무는 직무관련성이 높기 때문에 매각이라는 방법을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의 주가는 주로 반도체에 의해 좌우되며 상대적으로 정통부장관의 직무와는 연관성이 떨어지므로 매각이 아닌 신탁으로도 이해충돌을 회피할 수 있다라고 밝히셨습니다.
삼성전자 주가와 정통부 업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비단 장관님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더군요.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다. 회사가치도 정부의 정책결정 요인보다는 시장요인에 의해 지배적으로 좌우된다'고 분석하더군요. 정보통신부 직원 역시 '정보통신부 정책이 삼성전자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이런 주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같은 분석과 주장에 근거해 진 장관님은 직무관련성의 정도에 따라 매각 혹은 신탁을 선택적으로 결정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누차 말씀드렸지만 단말기 보조금 정책 등 정통부 업무와 삼성전자 주가 사이의 구체적 인과관계는 자명한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덜하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이해충돌은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해충돌은 공직을 이용한 사익추구의 가능성이 많은가 적은가 혹은 직무관련성이 높은가 낮은가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본질입니다. 따라서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에도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적다고 해서 이를 규제하거나 회피할 수단이 달라지거나 강도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편 "공직자도 한사람의 자연인으로서 경제행위를 누릴 자유가 있다. 이를 공직자라는 이유로 제한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현저하고도 중대한 권리제한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법률적으로도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 매우 엄격한 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주식 매각 요구가 본질적인 재산권 침해인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참여연대는 주식을 소각하라거나 장관직 수행 이전에 획득한 재산상의 이익까지를 박탈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주식을 매각하라는 주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또한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모든 이익추구행위 자체를 금지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해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재산에 한해서 공직자로서 재직하는 동안만이라도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 드린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공익을 위한 사익의 불가피한 제한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직 우리에겐 이해충돌을 규제할 제도가 충분치 않습니다. 참여연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 참여연대는 지난 수년 전부터 공직자윤리법에 이해충돌을 규제할 법 조항을 신설할 것을 주장해 왔습니다. 추후에도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제도가 존재했다면 참여연대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도 마땅히 주식을 매각해야 했을 것입니다.
장관님께서는 이해충돌을 규제할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취지의 답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도화 이전이라도 장관님께서 공직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공직자에 대한 국민신뢰에 부응하고자 한다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거하지 않는 한 장관님의 정책결정이 아무리 정당하고 공정했다하더라도 이에 대한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장관님의 결단을 기대하겠습니다.
2003년 05월 06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팀장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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