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의 결론은?**
나는 시화호가 96년 대재앙을 일으키며 온 국민을 경악시켰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그렇다면 그 뒤 정부는 시화호 사건을 어떻게 매듭지었는가.
한 편의 코메디로 완결지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2월 11일 시화호 용도를 놓고 건설교통부와 농림부,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등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완전 포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래서 시화호를 96년부터 그랬듯이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수호로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시를 회상하면 자꾸 ‘춤추는 대수사선’이라는 일본 영화가 생각난다. 경찰의 고위 간부가 철없는 청소년들에게 유괴 당했다. 그러자 중앙수사대가 해당 경찰서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다.
다음날 형식적 관료주의가 구석진 방에서 벌어진다. 나이 먹은 경찰서 관계자들이 특별수사본부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머리 싸매며 고민하는 것이다. 빨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름이야 특별수사본부로 하건, 특별수사지휘소로 하건, 수사특별본부로 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들은 이름 하나 짓는데 며칠이 걸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시화호가 실패한 사업이라는 결론 내리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 정말 대한민국 코미디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코미디언보다 정치인이 더 웃긴다. 그래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다.
지금도 울화통 치미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관료들이 끊임없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시화호 사업을 시작해 2001년 2월까지 쏟아 부은 돈은 8천3백억원이었다. 그러나 안병우 국무조정실장은 2월 11일 ‘시화호 사업이 실패한 사업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발표’를 하면서도 사업실패, 예산낭비, 환경파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수화 포기로 낭비된 예산 없다”며 “시화호 담수화를 포기해 매립사업비와 토취장 매입에 따른 보상비 등 사업비 5조1900억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였다. 그렇다면 지금 새만금사업을 중단하면 25조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가 큰 것 아닌가.
녹색연합 남호근 부장은 이렇게 논평한다.
“집을 짓기 위해 철골까지 세웠는데 부실공사로 건설을 중지한 채 콘크리트, 단열재, 인테리어 등의 비용을 절약하는 효과를 낳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겁니다. 정부가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해 방조제 60%를 완공해서 이제 그만둘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모순이에요.”
중앙일보 강찬수 기자는 다음날인 2월 12일 정부 관련부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시화호 건설의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 도시관리과의 한 관계자.
“1997년 해수 유통을 시작하면서 시화호 담수화는 당시에 이미 포기한 것이고, 이번 결정은 그것을 재확인한 것뿐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슨 문제제기를 합니까.”
다음은 계획 당시부터 농업용수 필요성 때문에 담수화를 찬성했던 농림부.
“담수화를 위해 방조제를 막은 것은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입니다. 농림부는 방조제 막은 것과 무관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화호 환경영향평가를 맡았던 환경부.
“96년 시화호 건설과 관련한 수질개선사업의 잘못이 감사원 감사에 지적돼 관련 공무원들이 이미 징계를 받았습니다.”
공무원들은 국민 혈세(血稅)가 아까운 줄 모른다. 오직 자기 밥그릇 싸움에만 혈안이다. 지금도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납부한 세금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 오직 자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관료주의는 본질적으로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각 행정부서가 본래 갖고 있는 목적이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표는 ‘예산안을 유지한다’로 바뀐다. 일본 후생노동성 관리였던 미야모토 마사오 박사는 그의 저서 ‘자유를 구속하는 사회’에서 직속상관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적었다.
“일단 예산안에 어떤 항목이 편성되면 그것을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조금 남는다고 해서 큰 문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국민을 위해 좋은 일 아닙니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남은 돈을 돌려주는 것은 금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이 남으면 재무성에 문제의 사업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음 해에 예산 삭감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사업이라도 잃으면 전체 부서 예산이 더 적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담당자 경력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합니다.”
공무원들의 밥그릇 싸움은 시화호 담수화 포기 선언 뒤에도 그치지 않았다. 남북측 간석지 3천3백평 활용방안을 놓고 건교부는 산업단지와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양수산부는 조력발전소, 해양자연사 박물관, 항만 물류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림부는 농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수도권 지정폐기물 매립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시화호도 갖가지 수질대책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질대책이라는 것이 새만금호 수질대책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시화호를 농업용수로 끌어올리기 위해 계획한 수질대책 중 실제로 시행한 것은 42.8%에 불과했다. 1백% 달성해도 물이 썩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무리 수질을 좋게 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도 재원조달이 지연되거나 실제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화호 수질대책이 언제 나왔는가? 놀랍게도 시화호가 썩기 시작한 1996년이었다. 새만금은 1991년부터 공사에 들어갔고, 새만금 수질대책이 나온 것은 8년 뒤인 1999년. 이것만 보아도 새만금 호수를 농업용수로 끌어올리겠다는 주장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좋다. 늦게라도 수질대책을 만들었다. 새만금갯벌을 간척하면 하늘이 대한민국에 내려준 천연 하수종말처리장을 잃어버린다. 백합, 바지락, 맛조개, 가무락, 농발게, 칠게, 농게, 망둥어……셀 수도 없는, 일본 해양학자와 생물학자들이 “어! 이거 우리나라에서는 멸종 위기종인데……”라며 눈물짓는 자연유산을 잃어버린다. 그런 대가를 다 치르면, 비록 구정물이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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