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파’는 좌냐 우냐, 남이냐 북이냐의 양분법 속에 설자리를 잃고 현대사에서 가장 비참하게 생을 마친 양심적 지사들의 이름이다.
식민시대와 해방정국, 6.25로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이들은 친미적인 이승만 세력이나 그에게 빌붙은 친일파들의 극우노선을 비판했고,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극좌 정치노선을 따르지도 않았다.
그 댓가는 ‘기회주의적 친공산주의자’라는 우익의 매도와 ‘회색적 기회주의자’라는 좌익의 비판이었다. 분단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좌우의 이념논리를 기저에 둔 남북의 현대사는 좀처럼 이들의 가치를 주목하지 않는다.
***‘중간파’ 9인의 비극적 생애**
김재명씨가 쓴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도서출판 선인)’은 현대사의 ‘주변인’으로 전락한 9인의 중간파 인물들의 삶을 복원한 평전이다.
6.25 전쟁 와중에 북으로 간 김규식 장건상 안재홍 원세훈 조소앙 조완구, 반(反) 이승만 노선을 걷다 극심한 가난 속에 쓸쓸히 눈을 감은 김창숙 김성숙 유림의 생애는 좌우의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된 모든 ‘중간파’들의 묘비명이다. 이들은 모두 30년 안팎의 긴 세월동안 항일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해방 후에는 좌우 이념 대립의 복판에서 양쪽으로부터 모두 배척받은 인물들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80년대 중반부터 현역 기자로 일하면서 발표했던 글을 재정리한 것이다. 발품을 들여 수집한 문헌자료와 주변인들의 증언 등은 사학계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귀중한 자료로 손색이 없다.
역사의 지류에 배치된 개인이 아니라, 9인의 치열했던 개인사를 통해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서술 방식은 과거 속에서 현재를 부단하게 반추토록 하는 생동감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추구했던 민족분단의 극복이라는 이상, 그들이 풀려고 고심했던 현실적 과제는 21세기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상이자 과제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이 현시대의 또 다른 화두인 것을 떠올리면 오로지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살다간 이들의 생애가 역사를 관통하는 지고의 가치로 평가될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남는다. 이들이 추구했던 좌우합작을 통한 민족통일론 역시 역사적 상황에선 현실화되기 어려웠던 ‘이상주의’로 읽혀지는 느낌이 있다.
따라서 이들 ‘중간파’들의 비참했던 생애를 따라간 끝에 “우리 사회에 참된 좌우익은 있었는가” 하는 또 다른 이념 우선적인 의심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이 저자의 의도에 대한 무례한 오독은 아닐 성 싶다.
저자 김재명씨는 경향신문사, 중앙일보사 기자로 일했고 극좌 극우의 편향성 지양과 분단극복에 대한 관심으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현재 뉴욕시립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프레시안에 ‘김재명의 뉴욕통신’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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