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타자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양키즈)와 시계추 타법의 이치로(시애틀)의 메이저리그 첫 맞대결은 싱겁게 끝이났다. 29일(현지시간) 양키스타디움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이치로와 마쓰이는 일본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7회초 이치로는 절묘한 번트안타를 성공시켜 팀 승리에 일조했고 마쓰이는 0대6으로 뒤지던 9회말 시애틀의 하세가와에게 중전 안타를 뽑아내는 데 그쳤다.
한편 경기가 펼쳐진 양키스타디움에는 1백여명의 일본취재진이 몰려 마쓰이와 이치로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새삼 느끼게 해줬다. 또한 MLB 공식사이트와 뉴욕 타임즈 등 미국의 주요언론들도 일본인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대결을 앞다퉈 보도했다.
참고로 이치로와 마쓰이는 1996년 일본시리즈 결승에서 맞붙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치로가 이끄는 오릭스가 마쓰이가 활약한 요미우리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대조적 스타일의 마쓰이와 이치로**
미국 언론이 마쓰이와 이치로의 맞대결에 많은 관심을 보인 이유는 국제화된 메이저리그를 과시하려는 숨은 의도도 있지만 두 선수의 상반된 성격과 플레이스타일을 흥미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마쓰이와 이치로는 플레이스타일과 성격이 대조적이다. 마쓰이는 홈런타자이며 이치로는 공을 맞추는 재주가 뛰어난 교타자이다. 수비력에 있어서는 이치로가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이치로는 우익수로서 강한 어깨와 민첩성을 지니고 있으며 마쓰이는 강견은 아니지만 송구동작이 빠르다고 평가된다.
마쓰이는 세이료 고교시절에 엄청난 파워를 과시하며 60개의 홈런을 쳐낸 괴력의 타자였다. 1992년 고시엔(甲子園)대회 준결승에서 마쓰이가 홈런 3개를 뽑아내자 결승에서 만난 메이토쿠 고교 감독은 마쓰이를 다섯 번이나 고의사구로 내보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마쓰이는 파워에 선구안까지 갖추며 이치로가 빠진 일본프로야구의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한편 고교시절 투수로도 활약했던 이치로는 감각적인 타격과 스피드로 약체이던 오릭스 블루웨이브를 일본시리즈 정상까지 올려 놓은 스타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이치로는 교타자로 통하지만 일본무대에서는 장타력도 인정받았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하는 뉴욕 양키즈 소속의 마쓰이는 언론에게 호의적 태도를 보이며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치로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취재기자 가운데 단 한 명하고만 대화를 했던 이치로는 일본프로야구 홈런왕 마쓰이가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자신에게 몰렸던 취재진이 마쓰이에게 옮겨가자 "이제야 정상적인 분위기가 됐다"며 만족해 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야구전문가들은 일본프로야구에서 7번이나 퍼시픽리그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메이저리그에 오자마자 AL 신인왕과 MVP를 거머쥔 이치로를 천재타자라고 칭송한다. 하지만 정작 이치로는 "마쓰이가 진정한 천재타자이고 자신은 그 자리에 가기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마쓰이,이치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따른 일본프로야구의 득실**
일본에서 마쓰이와 이치로는 그냥 야구선수가 아니라 국가적 영웅이다. 지난해 마쓰이가 뉴욕 양키즈에 입단했다는 소식에 일본프로야구계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됐다. 메이저리그에 일본출신 슈퍼스타가 뛴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일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간판인 마쓰이의 메이저리그 행은 일본프로야구로서는 큰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오래 전부터 일본은 메이저리그 매니아층이 형성돼 있었지만 이는 야구팬들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5년 NL 신인왕을 차지한 노모 히데오 투수 등장이후 계속되는 일본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일본 야구팬들의 관심은 메이저리그로 점점 모아지고 있는 추세다.
마쓰이의 뉴욕 양키즈 데뷔게임의 일본내 시청률은 당초 예상한 15%보다는 낮은 11%로 집계됐지만, 이 게임이 일본시간으로 아침 일찍 방송된 점을 생각하면 높은 수치였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만 집중했던 팬들은 이제 마쓰이 출전경기에 따라 TV 채널을 옮기고 있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요미우리 게임의 시청률은 하락했으며 일본프로야구 전체 관중수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일본인들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늘었을 뿐이다.
'홈런왕'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는 "이치로나 마쓰이 같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일본의 야구꿈나무들은 이들을 뒤따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될 것이며 일시적으로 일본프로야구의 인기가 하락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일본야구의 수준이 향상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프로야구는 이미 FA 자격을 획득한 세이부 라이온즈의 유격수 마쓰이 가즈오를 또 다시 메이저리그로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루능력과 파워, 정교함을 두루갖춘 스위치 타자 마쓰이 가즈오는 아트 하우(뉴욕 메츠 감독), 벅 쇼월터(텍사스 감독)등으로부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일본의 신세대 스타다.
내년 한국프로야구의 상징인 이승엽(삼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화 된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프로야구의 인기하락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켜 볼 수 없는 입장이다.
물론 왕정치의 말처럼 국내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한국프로야구 발전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하지만 어느덧 청년기를 맞이한 한국프로야구가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지 못한다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야구팬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한국프로야구의 중,장기 프로젝트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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