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병신이다**
눈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지구는 하나의 생명체다. 여기에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으며, 인간도 이 중 한 종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이란 동물은 우주의 기생충에 불과하다.
원래 한겨레는 자연을 단순한 물질로 보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집 앞 감나무에서 감을 딸 때 반드시 몇 개를 남겨두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인가.’
그래서 까치를 위해 감 몇 개를 남겨두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까치밥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자신이 경남 고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집 밑에는 커다란 뱀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렁이 종류였던 모양인데, 더 재미있는 것은 자기 집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집에도 구렁이가 많이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옛 조상들은 자기 집에 사는 구렁이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옛날에 황토와 볏짚으로 만든 초가집에는 쥐가 많았고, 구렁이는 이 쥐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집안의 수호신’이라 부르며 구렁이를 잡지 않았다. 구렁이는 초가집 뿐 아니라 재산 많은 양반가문이 사는 기와집에도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양반들도 자기 집에 사는 구렁이를 잡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천도교(東學)에는 경물사상(敬物思想)이 있다. 물질을 공경한다? 우상숭배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경물사상은 자연친화사상의 극치이며, 동학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우리 겨레가 품었던 심성이다. 이런 사실은 지금도 오랜 세월 타향살이 하다 몇 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먼저 마을을 지키는 나무 앞으로 간다. 버드나무나 은행나무가 주종을 이루는데, 이들은 나무 앞에서 두 번 고개를 숙인다. 다음에는 우물로 간다. 우물 앞에 이르면 공손한 마음가짐으로 또 두 번 고개를 숙인다.
이들은 최소한 몇 백 년 이상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들이어서 주름살로 쭈글쭈글 늙어빠진 자기보다 웃어른이다. 이들에게는 마을 조상들의 애정과 혼이 담겨 있다. 즉 이들에게 예의를 나타내는 것은 옛 조상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타향살이 하다 이제야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문안 올립니다.”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 원래 한국인의 마음씨다.
새만금 갯벌은 한반도의 젖꼭지다. ‘젖 하나 없으면 어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병신이다.
젖도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있다. 이제 여권신장 차원을 떠나 부부가 맞벌이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맞벌이를 해야 하니, 모유를 먹이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한두 달 먹이다 분유를 먹이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인 것 같다.
한 여자가 평생 아기 하나를 낳고 한 달간 젖을 먹인다고 가정한다. 이 젖은 분유로 치면 최상품이므로 가장 비싼 고급 분유 한 달 분량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여성 젖꼭지의 경제성 평가일 것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이렇게 따질 수 있단 말인가. 젖이란 그 외에도 인간사회에 풍요로움을 주지 않는가. 그것은 돈으로 따질 수도 없다. 마치 실수(實數)를 허수(虛數)와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야기가 야해지므로 생략하겠다.
갯벌이 놀라운 것은 젖꼭지이면서 콩팥이기도 하고 간이기도 하고 자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강에서 흘러온 영양염류가 갯벌에 쌓이고 일부가 바다로 빠져나간다. 이 영양염류를 먹고 사는 갯벌생물들이 있다. 또 이들을 먹고 사는 생물이 있고, 이것이 바다생태계를 이룬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노골적으로 설명하겠다. 바다 쪽으로 튀어 나온 지형을 반도라 하고, 안으로 들어간 지형을 만이라 한다. 이 만으로 강물이 흐른다. 그 강물에서 염류가 흘러나가며, 바닥이 언제나 촉촉이 젖어 있다.
이것이 자궁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나무 약간 베어도, 땅에 시멘트 약간 발라도, 갯벌 하나 없애도 그것뿐이라는 생각이다. 자연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연은 매우 민감하다. 이는 내가 3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갯벌이 콩팥이며 간이라는 이야기는 수질정화기능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갯벌은 육상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깨끗하게 바꾼다. 소주를 그냥 대야에 버리면 물이 더러워진다. 그러나 그 소주 한 병을 사람이 다 마시면 소주는 깨끗해진다. 간과 콩팥이 하수종말처리장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나오는 것은 영양염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물질도 많다. 생활폐수, 공업폐수, 축산폐수 등 여러 가지다. 이것들이 일부는 뻘 속으로 스며들면서 깨끗해지고, 갯벌에 살고 있는 조개와 다양한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해서 수질을 개선시킨다. 칼국수에 들어가는 바지락 하나가 하루에 오염된 물 15ℓ를 정화한다. 새만금갯벌 2만㏊는 10만톤 처리 규모 전주하수종말처리장 40개와 같다. 이것을 굳이 돈으로 환산하면 전주하수종말처리장 건설비용이 1백72억원이므로 새만금 갯벌 정화기능은 6천8백80억원이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면 6천8백80억원이 아니라 1조4천억원 이상을 수질개선비로 투입해야 한다. 그래도 더러운 물인 농업용수로 쓸 수 있을까 말까다. 우리나라의 머리 잘 돌아간다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오직 조직을 보전하기 위해, 건설경기를 부양시켜 경제지표를 올리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렇게 잔인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 갯벌은 홍수, 폭풍, 해일을 완화시켜준다. 왜 그런가? 갯벌은 육지와 바다 사이에 놓여 있는 스펀지이기 때문이다. 태풍이나 해일이 다가오면 물이 갯벌 속으로 스며들어 충격을 완화해준다. 이런 갯벌을 없애버리고 방파제로 태풍과 홍수와 해일을 막겠단다. 물론 남근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 옛날 환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병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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