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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나라 해안은 단순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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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나라 해안은 단순해질 것"

박근형의 새만금 리포트 <1> 새만금의 간척사

한쪽에서는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기 위한 새만금 간척공사가 진행중이고, 한쪽에서는 새만금 간척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7백리가 넘는 길을 걸으며 3보1배(三步一拜) 기도수행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농지조성이라는 사업목적을 상실했음을 인정했으면서도 아직 이를 대신할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내년 총선 등을 고려한 때문일 것으로 환경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환경전문기자 박근형(전 시민의신문 기자)씨가 중국 유학중임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간척사업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개 과정과 그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방대한 기록 <새만금 리포트>를 기고해 와 연재를 시작한다. 새만금의 새로운 해법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4월22일 '지구의 날'을 시작으로 앞으로 24회에 걸쳐 매일 연재를 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사진> 인공위성 사진

***"앞으로 우리나라에선 리아시스식 해안이 사라질 것입니다"**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매립과 간척이다. 매립은 바닷가에 돌과 흙을 마구 부어 차츰차츰 육지를 넓히는 것이다. 간척은 방조제를 쌓는 것이다. 만이 있고, 이곳에 갯벌이 있다고 치자. 만의 일정 지점을 방조제로 연결한다. 이것도 소규모 작업일 때 연결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업규모가 크면 방조제를 쌓는다는 것이 망망대해에 한 없이 돌과 흙을 버리는 것과 같다.

‘한강에 돌 던지기’라는 속담이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뜻으로 쓴다. 하지만 오늘날 토목기술은 이런 속담을 비웃는다. 한강을 육지로 만드는 것은 누워서 얼음보숭이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땡전’과 더불어 MBC에서 보았던 어느 뉴스를 기억한다. 내 기억에 의하면 당시에도 뉴스용 화면 그래픽은 수준급이었다. “간척사업으로 우리나라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라는 기자의 목소리가 나오자, 우리나라 지도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결국 이렇게 복잡한 리아시스식 해안이 사라지고 모두 단순한 선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뉴스를 기억하면 웃음만 나온다. 이 뉴스가 당시 우리나라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줄도 안 서고, 새치기 하고,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침 뱉던 시절이니 오죽하겠는가.

농림부는 우리나라가 처음 간척한 것이 고려 고종 때라고 말한다. 고종 22년(1235년) 몽고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한 뒤 해상방어용 연안제방을 구축한 것이 시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네덜란드는 선진국이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간척으로 땅을 많이 넓혔다. 즉 간척으로 땅을 많이 넓히는 것은 선진국이 하는 짓이다. 따라서 간척은 좋은 것이다. 이런 논리가 한국사람 머리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네덜란드는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땅이 많다. 따라서 그 사람들이 제방을 쌓아 간척한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생존을 위해 간척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네덜란드가 아니지 않은가.

조선시대에도 갯벌을 농토로 바꾸는 작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규모의 매립이었고, 한반도 생태계에 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점령하면서 약간 달라졌다. 일제는 우리를 철저하게 빨아 먹었다. 그 중 하나가 쌀이었다. 호남평야의 질 좋은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군산에 일본인 거류지를 조성한 일제는 1906년 대한제국 탁지부로 하여금 전문 13개조의 ‘수리조합조례’를 제정, 공포하게 했다. 이에 따라 1908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조합인 옥구서부수리조합이 탄생했다. 농업기반공사는 이 수리조합을 자신들의 모태로 보고 있다.

옥구서부수리조합 이후 여러 수리조합들이 탄생했고 1925년 8월29일 우리나라 최대 수리조합인 동진수리조합이 탄생한다. 오늘날 새만금간척지구와 연접해 있는 곳이다.

일제시대 수리조합은 일본인 지주가 창설한 조합과 한국인 지주가 창설한 조합이 있었다. 처음에는 관개수로 개선과 황무지 개간이 주요 업무였지만, 일제가 1917년 조선공유수면매립법을 공포한 이래 1938년까지 1백78개 지구 갯벌 4만8백77㏊를 매립했다.

그러나 당시 간척사업도 모두 소규모였고, 대규모 간척사업장 8곳도 1천㏊를 넘는 수준이었다. 새만금지구는 4만1백㏊에 이른다.

문경민 새전북신문 정치부장은 ‘새만금 리포트’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일제는 1920년부터 산미증산계획을 실시했고, 특히 전북 서부지역은 식량수탈 핵심지역이었으며, 간석지 개발과 간척을 통한 농경지 확대가 주된 관심사였다. 새만금사업과 같은 대규모 간척사업들이 일제의 잔재라는 일부의 비난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만 간척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자기 나라에서 더 많이 했다. 지금 일본은 갯벌 90%를 매립한 상태다. 산업사회 최첨단을 달리는 나라답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은 수렵시대가 아니고, 농업시대도 아니고, 산업시대도 아닌, 탈산업시대 즉 정보화시대인 것이다.(계속)

***필자 소개**

필자 박근형씨는 2000년 3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시민단체 전문지인 ‘시민의신문’에서 환경전문기자로 3년간 일했다. 박근형씨는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 주요 환경단체를 매일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우리나라 환경문제를 어떻게 쉬운 글로 표현해야 하는가를 고민했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환경분쟁을 직접 목격하면서 세밀한 기록을 작성, 그 외 여러 관공서와 학자들을 직접 면담해서 모은 자료까지,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 자료들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정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자기만의 기록 하나만 남기고 모두 버리기로 결심, 최종 자료정리를 반년간 했다.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기록이 새만금 문제를 집중 정리한 원고다.

3년간 주간지 기자생활 중 자신의 역사기록자 임무에 충실한 박근형씨는 역사 전문가의 길을 갈 것을 결심, 2003년 1월부터 현재 중국 사천대학(四川大學) 역사문화학원 중국현대사 석사연구생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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