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에 반대를 주장했던 프랑스와 독일의 수뇌부들이 연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슈뢰더 독일총리는 블레어 영국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등, 이라크 전후복구사업의 관건을 쥐고 있는 미국-영국과의 화해무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유럽 반전국들의 추파에 미국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교활한 '족제비들의 축'"이라고 비아냥대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의 전화는 철저히 사업적인 것"**
15일 지난 2월7일이후 부시와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한 시라크는 이날 20분간의 통화에서 "이라크의 무장해제, 경제재제조치, 과도정부, 석유, 전후복구사업과 같은 이슈에 관해 사안별로 실리적인 입장을 취하겠다"는 말을 부시에게 전했다.
시라크의 대변인은 "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것은 도덕적 원칙과 국제법에 따랐던 것"이라고 해명하며 "UN이 이라크 재건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종전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섰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대변인은 또 "시라크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준 용기와 후세인 독재정권의 붕괴를 환영한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완벽한 고개숙임이다.
그러나 미국의 시라크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시라크 대통령의 전화는 '사업적인 것'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으며, 몇몇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미국과 프랑스의 화해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앞으로 수 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에겐 미국과의 관계개선 반드시 필요"**
15일 하노버에서는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영국의 블레어 총리와 1시간 넘게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슈뢰더 총리는 "비록 국가간 입장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로 이런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며 "독일에게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며 우리는 공조체제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뢰더는 또"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에 대한 UN의 역할을 핵심적 역할 또는 중심적 역할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용어의 선택일 따름이며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은) 외교적으로 세부사항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밝히는등 저자세로 일관했다.
외교가에서는 프랑스, 독일 수뇌부의 이같은 저자세가 이라크전에서 압승한 미국이 앞으로 '포스트 이라크'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 프랑스, 독일 등에 대해 가혹한 정치,외교,경제적 보복을 펼칠 것이며, 이 과정에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도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매파, "프•독•러는 '족제비들의 축'"**
16일자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지금까지 독일, 프랑스, 러시아는 이라크 복구사업을 UN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최근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이며 그 예로 "지난 주 50억파운드에 달하는 이라크의 채무 가운데 일부를 포기하겠다는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성명"을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주말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시라크 대통령, 슈뢰더 수상등과 3자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3국의 합의점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텔레그라프는 이라크 복구사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독일,프랑스, 러시아 정상의 실리외교에 대한 미국 보수강경파들의 입장도 전했다.
텔레그라프는 "미국 보수강경파들은 반전을 주장하다 전후복구사업의 '떡고물'을 챙기기 위해 프랑스,독일,러시아가 실리주의로 입장을 바꾸었다는 이유로 이들을'(교활한) 족제비들의 축(axis of weasel)'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한때 '평화의 축'이라 불리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수뇌부의 카멜레온적 변신으로 인해 졸지에 '족제비들의 축'으로 전락하는 양상이다.
과연 이라크전에 반대해 2차대전후 최대규모의 반전집회를 벌였던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이런 수뇌부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씁쓸한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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